살려 주세요!

“빨리 내려 오세요! 어서요! 아래 층에서 아내가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아래층으로 내달아간다. 여보, 어디 다쳤어, 무슨 일이야? 여기 보세요. 어디야 아무 것도 없는데……여기에요. 여기요. 아내가 가리키는 곳은 마루 한쪽 구석이다. 거기에 새끼 참새 한 마리가 동그마니 엎드려 있다.

아니 애는 왜 여기 엎드려 있어. 가까이 다가 가서 살피니 눈을 반쯤 감은 새끼 참새이다. 이 녀석이 퍼걸러(Pergola) 천장에서 갑자기 뚝 떨어졌단다. 아하 아마도 마루의 통 유리에 세차게 부딪쳤나 보다.

작은 몸집을 살피고 손으로 쓰다듬어 주니 가만히 있다. 손으로 살짝 집어서 손바닥에 올려 놓는다. 작은 몸집의 울림이 손바닥에 전해 온다. 눈은 반쯤 뜬 채로 미동도 없다. 아마도 유리에 세차게 부딪칠 때의 충격이 컸나 보다.

여보, 얘가 살짝 기절한 모양이야. 양지 바른 곳에 잠시 두면 깨어 날 거야. 양지 마른 곳에 놓아둔 새끼 참새는 여전히 미동도 없다. 아니 이 녀석을 봐라. 미동도 아니하고 눈을 반쯤 감고 있던 새끼 참새의 눈이 깜빡인다. 좌우를 둘러 본다. 아마도 여기가 어디인가를 확인하나 보다. 핫핫핫!! 정신이 돌아 오나 보네.

그 작은 머리가 유리창에 쾅! 하고 부딪치는 순간에 작은 참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이고, 난 이제 죽었다. 짹 소리도 못하고 죽었다고 했겠지. 참새 살려! 하는 소리도 못하고 마루에 떨어진 것이다.

잠시 동안 사방을 둘러 보던 새끼 참새는 마당을 향하여 냅다 날아 오른다. 아이구 살았다.‘죽었다가 살았네’짧은 시간에 삶과 죽음을 넘나들던 새끼 참새를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세상재물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신다. 하나는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이야기이다(16:1~13).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으로 친구를 사귄다. 주인의 재산으로 자신이 생색을 낸다. 주인 입장에서 보면 참 어이가 없다. 세상 말로 엿 장사 맘대로다.

예수님은 부정적인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부당한 방법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청지기의 미래에 대한 준비를 칭찬 하신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올인하는 그의 태도를 칭찬하신다.

예수님은 돈이나 돈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가르치신다. 탐욕(욕심)은 우리를 파멸(지옥)로 이끄는 무서운 죄악이기 때문이다. 탐심(욕심)은 모든 범죄의 원인이 된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돈(물질)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돈 자체에 의지할 것인가 이는 돈의 노예이다. 아니면 돈을 주시는 하나님께 의지할 것인가 이 때는 돈을 관리하는 자이다. 두 가지의 결정권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하나님을 섬기면 재물은 선하게 쓰인다. 돈을 섬길 때는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한다.‘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누가복음16: 13). 두고 두고 기억할 만한 말씀이다.

다른 하나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이다(누가복음16: 19~31).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생과 사를 통하여 내세의 삶을 조명한다.

내세의 삶은 이생의 삶과 관련이 있다. 내세의 삶은 이생의 삶과 단절된 것이 아니다. 내세의 삶은 이생의 삶에서 비롯된다. 두 사람의 상반된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빛나는 교훈이 있다.

부자는 이생에서 자기가 가진 재물을 자신의 사치와 안락을 위하여 질펀하게 사용한다. 그는 자기 집 문 앞에 있는 거지의 궁핍과 딱한 사정에 대해서는 전혀 마음을 주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것을 질타한다. 부자는 거지 나사로의 궁핍함을 외면했다. 부자는 춥고 배고픈 거지 나사로의 형편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가난한 자에 대한 외면이 죄이다. 가난한 자의 눈물과 애통함에 눈과 귀를 막는 것이 죄이다. 이것이 부자의 적극적인 죄라는 것이다.

재물이 부자를 소유하는 것이 끔직한 저주이다. 이와 같은 상태와 조건에서 재물은 부자를 강퍅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 부자에게 주신 고귀한 능력마저도 마비 시킨다. 하나님께 열중하고 있는 사람의 재물은 축복이다. 그가 관리하는 재물은 이웃들에게 동정심을 표시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에 목마른 고픈 연말연시이다. 온돌방의 아랫목 같은 따뜻함이 그립다. 무언가 사랑에 주린 마음들이 사랑의 손길을 기다린다. 날마다 혼밥에 고독을 곰 씹는 독거어르신들에 집중해 봄은 어떠한가?

육신의 질병에 무장해제된 환자들의 돌봄도 성탄의 멋진 선물이다. 젊어서의 패기와 자존감은 전당포에 저당 잡힌 양로원 어르신들에게도 환한 웃음을 드리자. 세상의 거친 파고에 허우적대는 솔로 맘들의 얼굴을 사랑과 격려로 환히 밝힘도 멋진 성탄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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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만
춘천교대와 단국대 사범대 졸업. 26년 간 교사. 예장(합동)에서 뉴질랜드 선교사로 파송 받아 밀알선교단 4-6대 단장으로 13년째 섬기며, 월드 사랑의선물나눔운동에서 정부의 보조와 지원이 닿지 않는 가정 및 작은 공동체에 후원의 손길 펴면서 지난해 1월부터 5메콩.어린이돕기로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후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