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사역은 맡겨진 일 감당하는 것

첫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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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한 목사도, 이론적으로 박식한 신학자도 아니다. 그저 목회자의 길을 사명으로 알고 한국과 이곳 뉴질랜드에서 목회자로 살아가고 있다.

젊은 시절, 하나님에 대한 갈증으로 시작한 신학과 27여 년의 목회는 눈에 보이는 성공(?) 에서 이제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작은 자에 대한 관심, 그리고 교회 밖에 있는 이들에게도 눈을 돌리는 목회자로의 변모를 소원하며 나아가는 여정에 있다고 생각된다.

크라이스트처치에는 1995년 6월 도착하여 현재 3번째 교회에서 섬기고 있으니 참 지조(?) 없는 목사이기도 하다.

첫 풀타임 목회는 한국의 조그만 섬 말도에서 시작되었다. 초년생 총각 전도사의 어설픈 목회는 많은 시행착오와 무지를 드러낸 시간들이었고, 이어진 도시 교회 부목사 사역과 뉴질랜드에서 교육 목사, 그리고 교회를 개척하여 담임 목회자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시간들 가운데 자랑거리보다는 부끄러워 숨기고 싶은 모습들이 더 많고, 잊어 주었으면 싶은 순간들 또한 수두룩하다. 하여 지면을 통해 12회 동안 나눌 나의 목회 이야기는 신학적 단상이나, 목회 성공담보다는 여전히 황량한 이민자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삶에서 부딪치는 모든 일들을 믿음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함께 고난을 견디어 나아가는 이민 목회자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책임자의 모험
얼마 전 뉴질랜드에서도 상영된 한국 영화 <히말라야>를 보게 되었다. 히말라야는 8,848m의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8,000m의 봉우리 14개가 모여 있는 산맥으로‘세계의 지붕’이라 불린다.

영화 <히말라야>는 산 아래에서 하나였고, 또 다른 가족이었던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는 해발 8,750 미터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Death Zone을 오른 동료 산악인들의 가슴 뜨거운 여정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1985년 히말라야에 처음 오른 이래 22년 동안 38번의 도전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2005년, 등반 중 생을 마감한 후배 대원의 시신을 찾기 위해 휴먼 원정대를 꾸려 히말라야로 떠난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의 실제 주인공 엄홍길 등반 대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인연과 인간의 존엄성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휴먼원정대는 정상 도전도 아니고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 것이다. 모두가 동료를 위해 나섰고 시신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휴머니즘의 과정을 담았기에 생명의 가치, 죽음을 넘어선 약속을 지키는 게 정말 소중한 것이구나 하는 공감을 했으면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명의 존엄성, 약속과 인연의 소중함을 간직했으면 한다. 춥고 삭막한 세상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깊은 정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고소(高所) 증세이다. 에베레스트(8848m) 정상에 서면 산소 포화 도가 대략 60%로 뚝 떨어져서 서 있기만 해도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그런 위험한 곳을 개인의 야망이 아니라 함께 했던 동료의 시신을 방치할 수 없어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오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지는 자로 부르셨다. 주변에서 혼자 사는 분들이 자기만 관리하면 사는 것이 쉬울 듯 한데 오히려 그렇지 못함을 보게 된다.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 때론 부담이지만 그 책임감이 그 사람을 있게 한다. 내가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 인해 살아갈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책임감(責任感)의 사전적 의미는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영어에서는 책임감(responsibility)을 당신이 어떻게 반응 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Response -Ability)이라고 한다. 책임을 지는 이들은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기에, 기분에 좌우되거나 주변 여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사람이 책임을 진다. 책임지는 일은 항상 모험을 수반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책임을 남에게 떠 넘기기도 한다. 이유는 자기의 삶이 더 무거워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책임자의 모범이 된 보아스
성경에서 책임지는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은 룻기에 등장하는 보아스이다. 그는 자기를 찾아 온 룻에게 이렇게 말한다(룻기 3장13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친척 중에 가난하거나 피치 못할 형편으로 인하여 기업(땅)을 잃게 되면 가까운 친척이 그 기업을 되찾아주는 고엘(goel) 풍습이 있었다. 룻기에 등장하는 나오미는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들어 기업을 모두 팔고 남편, 두 아들과 함께 모압으로 이민을 갔다. 그런데 옮겨 간 모압 땅에 간지 10년이 못 되어 의지할 남편과 아들들을 모두 잃고 나오미는 빈털터리로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된다.

자손마저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던 나오미와 룻에게 있어 가장 절실한 것은 친척 중 한 사람이 자신들의 잃어버린 기업(땅)을 되찾아주는 것이었다. 보아스가 룻을 책임지겠다고 말하자,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말한다(룻기 4:11-12).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 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방 여인 룻이 시어머니를 책임지니 하나님이 보아스를 통해 룻을 책임져주셨다. 그리고 보아스는 예수님의 조상이 되어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만 책임을 회피한 다른 친척은 성경에 그저 ‘아무개’로만 표현된다. 아무개가 책임을 회피한 이유는 인간적인 계산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계산해 보면 희생하고, 사랑하고, 봉사하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다. 물질이 손해나고, 시간이 손해나는 일이다. 더구나 그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에 입각하여 감당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이들이 바로 크리스천이요 이 사역을 감당하는 곳이 바로 교회 공동체인 것이다.

주변을 한 번 돌아보자. 나만 힘들다고, 외롭다고 하소연하기 보다는 내가 손 한 번 더 내밀어 잡아준 이들이 힘을 얻고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그런 수고와 베풂을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이다.

목회는 교회에서만 하는 거룩한 사역이 아니다.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에서 내게 맡겨진 일들을 자원함으로 감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