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길입니다

박용수목사<말씀의교회>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래 전, 서울의 한 사우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욕을 마치고 휴게실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옆에 세 명의 남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귀에 들려 왔습니다. “야, 매일 아침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고 떠들고 다니는 그 미친 여자가 도대체 누구냐?” “내가 그 미친 여자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 “그런데 그 미친 여자는 맨날 뭘 그렇게 회개하라고 떠들고 다닌다니……” “그러게나 말이다. 날마다 남의 아침잠 깨우는 저나 회개하던지……”

아마도 어떤 여자가 아침마다 전도에 대한 지나친 열심으로 동네를 다니며 외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습니다. 대화는 계속 되었습니다.

“야, 그런데 왜, 교회에 다니는 것들은 기분 나쁘게 맨날 우리들보고 죄인이라고 하면서 회개하라고 하냐? 너 무슨 죄지은 것 있니?” “야, 내가 무슨 죄를 짓냐? 저녁에 술 한잔 먹는 그것이 죄라면 죄일까? 너는?” “야, 나도 마찬가지지 뭐, 점에 몇 백 원짜리 고스톱 치는 것이 죄라면 죄지?” “그런데 하나님은 엄청 큰 신이라는데 쫀쫀하게 이런 것 가지고 따지시겠냐…… 사람 죽이고, 뭘 훔치고 그 정도는 해야 죄라고 할 수 있겠지……”

1.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해야 사람도 바르게 사랑할 수 있어
대화 내용이 매우 재미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불쾌함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먼저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말합니다. “기록 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로마서 3:10~12).

성경은 ‘우리 모든 인류가 죄인’이라 선언을 합니다. 이 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 선언입니다. 로마서 1장 18절에 보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났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이트 풋이라는 신학자는 이 구절을 해석하기를 불경건은 하나님 앞에서의 죄이며, 불의는 사람 관계에 대한 죄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불경건이 본질 되는 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경건은 하나님을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하기에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인간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죄에 대한 결과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끊어짐입니다. 이 관계의 끊어짐으로 인해 생기는 것은 허무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의 허무인 것입니다. 무언가 열심히 살았지만 남는 것은 허무함 뿐입니다. 돈을, 몸 만들기를, 자녀 교육을, 그리고 즐기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바람 부는 대로 살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허무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인류 스스로 하나님과의 단절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길을 찾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 깨끗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이 싸움은 내 노력, 내 의지, 내 방법으로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내 문제인데 내가 뭔가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생각할수록 비참해집니다. 연구해도 안됩니다. 금식을 해도 안됩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깊은 수렁에 빠집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끊어진 관계를 이어줄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말씀하십니다.

오직 예수! 이 한 길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돈 버는 길, 출세하는 길, 성공하는 길, 자식이 좋은 대학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이 길만이 인생의 허무함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어찌 길이 하나 밖에 없느냐?”는 것 입니다. 타 종교인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산에 올라가는 여러 갈래 길이 있듯이 종교에도 여러 길이 있다고 말입니다.

One Tree Hill 이나 MT Eden 같은 산이야 오르는 여러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산 정도야 아무 길이나 올라 갈 수 있고 없는 길 하나 내가 스스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레스트 같은 산은 아무 길이나 가면 죽습니다. 세르파의 도움을 받아 올라가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길을 만드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구원은 이 땅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봉우리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열어주신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는 독선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포용성이 없는 집단이라 매도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성경에서 답은 오직 하나임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 정답인 한 길을 알고 믿고 걸어가게 하신 주님께 감사 드릴 뿐입니다. 이 문제는 독선이나 포용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의 문제입니다. 답을 두세 개 쓰는 것이 아니라 정답 하나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진정 사람을 사랑하는 길도 바로 이 길입니다. 먼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해야 사람도 바르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라는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에게 자유 주셔
영국의 유명한 목회자 스펄전 목사님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한 아이가 병든 새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목사님이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아이야 그 새를 어찌하려고 그러니?” 그러자 그 아이는 “좀 더 가지고 놀다가 싫증나면 죽여 버리려고요.” 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그 새 내게 팔면 어떻겠니?” “백 파운드를 주시면 팔지요.” 소년은 장난삼아 말했습니다.

병든 새 한 마리를 백 파운드에 살 사람은 없겠지요? 그런데 스펄전 목사님은 정말 백 파운드의 큰 돈을 주고 그 새를 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 설교시간에 그 새장을 들고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지난 주 저는 이 병든 새 한 마리를 백 파운드에 샀습니다.”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하게 목사님을 쳐다 보았습니다. 목사님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망과 저주의 새장에 가두고 괴롭히는 사탄 마귀에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 셈이냐?” 마귀가 대답합니다.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고 싸우는 것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내 맘대로 갖고 놀다가 허무하게 죽어가는 것을 즐기면서 보려고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말씀을 이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갇힌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님이라는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라고 설교를 마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라는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마음껏 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와서 아버지께로 오라 하십니다. 이 길만이 우리를 살립니다. 여러분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 참 평안과 기쁨, 그리고 천국 생활을 보증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