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한 문둥병자가 기적적으로 나았다. 정결의식을 드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일년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가 제물로 바쳐져야 했다. 성전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라반은 이번이야말로 잃었던 신용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번엔 실수하지 말아야지.’

라반 주인은 일전에 암양 술람미가 입에 거품을 물고 설사를 하는 통에 큰 낭패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제물 중에는 숫양 아벨도 포함되었다. 갑작스런 일이었지만 아벨의 마음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아빠가 가신 이후, 속으로 이 제물의 길을 얼마나 생각하고 또 생각해왔는지 모른다.

다행히 성전까지 가는 길은 비둘기 샬롬이 동행해준 덕에 외롭지 않았다. 그런데 아벨 일행은 이른 아침, 성전으로 가는 길에 수많은 사람이 길가에 늘어서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하는 아벨의 귀에 샬롬이 속삭였다.

“예수님이야!”

아벨은 귀가 번쩍 뜨였다.

“예수님? 그런데 왜 저러고 계신 거지?”

예수는 사람 키보다 훨씬 더 큰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질질 끌며 걷고 있었다. 성전에 도착한 아벨은 제사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비둘기 샬롬에게 예수가 어찌되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하늘에 오르면 어디 계신지 볼 수 있을꺼야.’

샬롬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니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 세개가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가운데 십자가에 예수가 매달려있는데 양손과 포개어진 양발에 대못이 박혀있었다.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썼는데, 날카로운 가시가 머리를 파고들어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아이고, 아침 9시부터야. 저렇게 매달려있는 게!

사람들이 혀를 차며 수군댔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3시에 가까와졌다. 기이하게도 정오부터 어두움이 몰려와 온 땅을 뒤덮고 있었다.
짙은 어두움 속에 실루엣처럼 십자가에 매달려있던 예수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을 한 후, 예수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며 운명하였다.

비둘기 샬롬은 예수가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자 아벨 생각이 번뜩 났다. 성전 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가니 아벨은 도축되기 일보직전이었다.

문둥병이 나은 사람이 이제 막 오른손을 아벨의 머리에 얹고 안수하는 참이었다. 안수가 끝나자 그는 칼을 들고 아벨의 목을 겨누었고, 제사장은 피를 받으러 옆에서 대야를 들고 섰다.

그 때였다. 레위인 한 명이 뛰어오며 다급히 외쳤다.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졌어요!”

“뭐, 뭐라고?”

천지가 뒤집힐 일이었다. 성전 휘장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그 휘장이 찢어졌다면, 성전 전체가 무너진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제사장은 너무 놀란 나머지 손에 든 대야를 떨어뜨렸고, 문둥병자였던 사람도 칼을 높이 치켜든 채 석고상처럼 굳어버렸다.
샬롬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종잡을 수 없었지만, 혼란 중에 일단 친구부터 구하고보자 싶었다.

“에이, 모르겠다!”

하며 문둥병자였던 사람 앞으로 몸을 날리자 그는 기겁을 하고 뒤로 꽈당, 자빠지고 말았다. 샬롬이 소리쳤다.

“뛰어!”

그 말을 신호로 아벨이 무작정 뛰자, 도축장에 함께 있던 다른 짐승들도 우루루 뛰었다. 성전 밖으로 나와보니 사람들이 하얗게 질려 정신이 없었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쪼개지면서 여기저기 무덤이 열리고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났다. 온 세상이 뒤집혔다.

“나만 따라와. 내가 집으로 안내할께.”

앞장선 샬롬을 따라 아벨은 정신없이 뛰었다. 집에 도착하니 라반 주인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라반도 전후좌우 사정을 이미 들어 알고있었다.

라반은 밤새 생각에 잠겼다. 전에 없던 의문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무슨 일이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고 외치며 숨을 거두는 순간,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고 했다.

‘성전 휘장이 갈라져?’
‘무덤이 열리고,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
‘근데, 예수가 죽을 때 이 일들이 일어났다구?’

이게 다 무슨 일이지? 예수가 대체 누구길래? 흐음, 내가 그 동안 너무 장사에만 신경썼던 건 아닐까? 내일 날이 밝으면 찬찬히 알아봐야겠어. 근데……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