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쓰는 비둘기

2. 하늘의 제왕을 꿈꾸는 비둘기 샬롬, 어린양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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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가 하늘의 제왕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 샬롬을 보면서 아벨은 물었다.
“샬롬! 넌 진심으로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다고 믿니?”
“그건 믿음의 문제가 아냐. 나의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지.”
“운명?”
샬롬은 지금부터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듯 침을 꼴딱 삼켰다.
“나의 고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예수님이 갓난아기로 요셉과 마리아의 품에 안겨 예루살렘 성전에 오셨을 때 희생제물로 바쳐졌어. 요셉은 형편이 넉넉치 못했나봐. 그래서 암수 비둘기 두마리를 제물로 바친 것이지.”
샬롬은 제물 얘기를 꺼내자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요셉과 마리아는 시므온이란 예언자를 성전에서 만났는데, 그는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을 받아 팔에 안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며 이렇게 말했다는 거야.”

샬롬은 자기 집안에서 전해내려오는 비밀을 공개했다.
“주님, 제 눈으로 주님의 구원하심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 구원을 모든 백성들 앞에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뭐라구? 정말 그게 예수에 대한 예언이란 거야?”
“그렇다니까!”
“그 말 그대로라면, 예수가 이스라엘은 물론 이방 사람까지 구원하는 그리스도라도 된다는 뜻이야?”
아벨의 머릿속엔 갑자기 아빠가 남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아빠가 제물이 되는 죽음의 길, 그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던 그리스도가 혹시 예수? 아벨은 샬롬의 이야기에 점점 더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어른들로부터 말로만 듣던 그 아기 예수가 어느덧 30세의 장성한 청년이 되어 비둘기 샬롬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아마도 샬롬으로선 마침 요단강 위를 날고 있던 중에 마주치게 된 예수가 누군지 너무 궁금했을 것이다. 샬롬은 자기가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아마도 그 궁금증이 자기도 모르게 예수의 어깨 위에 내려가 앉게 했을 것이다. 그게 아벨의 속짐작이었다.
그러나 샬롬은 계속 그의 말에 열을 올렸다. 예수의 어깨 위에 앉을 때, 바로 그 때 그의 입술에서“예수가 왕”이라는 고백이 절로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그 이후 그에겐 변화가 찾아왔단다. 마음에 걷잡을 수 없는 소망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수는 왕! 나는 새들의 왕!”
동시에 샬롬은 고민에 빠졌다. 근데 난 어떻게 새들의 왕이 되지? 비둘기 주제에 무슨 수로?
“머리를 써야 돼. 머리를!”

샬롬은 생각을 쥐어짜내려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머리를 심하게 쓰자 머리가 자꾸만 앞뒤로 움직였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쉴 새 없이 머리가 움직였다.
드디어 생각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생각이 구.구.구. 하며 끊임없이 쏟아졌다.

“난 왕이 되어야 한다….구”
“난 왕이 되고 말거라….구”
“난 왕이라…………………구 “

샬롬은 친구들에게도 이 생각을 전했다. 그의 꿈은 곧 모든 비둘기의 꿈이 되었다. 비둘기가 새의 왕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모두 귀가 솔깃했다.
“우리가 뭘 하면 돼?”
“머리를 써야 돼!”
샬롬의 말에 모든 비둘기가 머리를 쓰며 움직였다. 앞으로 또 뒤로. 길을 걸으면서 생각을 짜내고 또 짜냈다. 짜낸 생각을 계속 쏟아내며 구.구.구. 외쳤다.

“우린 왕이 되어야 한다….구”
“우린 왕이 되고 말거라….구”
“우린 왕이라…………………구 “

어느날 독수리가 높은 하늘에 떠서 땅을 내려보다가 비둘기들이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구.구.구. 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왜 저러는 거지?’
독수리는 새의 왕이었기 때문에 비둘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곧장 비둘기들이 떼지어 모여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자기들을 향해 쏜살같이 내려오는 독수리를 보자 비둘기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 서로 부딪쳐 자빠지고 넘어지고…
방금까지 왕을 꿈꾸던 새들이 과연 맞나 싶을 정도로 한심한 꼬락서니를 보였다. 그러나 샬롬만은 달랐다. 그는 결코 비겁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홀로 독수리 앞에 용감히 버티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