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떠난 지 10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어디를 가나 NZ 이라는 단어만 보이면 시선이 멈춘다. 아마도 나의 삶의 황금기를 거기서 보낸 탓일까?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의 대합실에서 에어 뉴질랜드 비행기의 로고를 마주치면 대한항공의 태극마크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 느껴진다. 시내 식당가를 지나가다가 스테이크 집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NZ Prime Beef 라는 문구가 보이면 막 들어가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무척 반갑다.
그렇다면 어린시절 뉴질랜드에 와서 친구들과 뛰어 놀고 또 학창시절을 보낸 아이들에게는 가슴속에 뉴질랜드가 모국으로 자리잡고 있음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1.5세대들의 바른 성장
다민족들과 함께 다문화에 속에서 성장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배운 그들은 이제 뉴질랜드는 물론 해외 여러 나라에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며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활약을 하고 있다. 그간 이민생활을 하면서 애쓰고 수고한 부모들의 희생과 노고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이민사회 속에서 잘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본인과 부모의 노력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의 선진적인 복지제도와 사회적 혜택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당장 학자금이 없어도 공부할 수 있는 제도와 저소득층 자녀에게 베풀어지는 각종 복지혜택들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 국민들이 열심히 납세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학창시절부터 다양한 자원봉사를 하고 있으며,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선진화된 시민의식과 더불어 잘 정비된 제도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자녀를 키우며 받는 혜택들은 이제 이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되돌려 주어야 할까? 이민 1.5세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또 아기를 낳아서 손주재롱을 보는 교민이 늘어나고 있는 이때에 손주들에게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까?
멋진 1세대를 위한 준비
보다 풍부한 내면을 가꾸며 좀더 멋있게 살아가는 노후의 모습을 차세대에게 보여주고, 또 한국의 미풍양속과 문화예술을 전수하는 일, 또한 자기계발과 사회봉사를 하면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의미있는 노후가 되지 않을까 싶다.
큰돈을 안 들이고도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뉴질랜드인 만큼, 바닷가에서 사색하며 글도 쓰고, 멋진 노을을 배경으로 그림도 그리고, 정원도 가꾸고 텃밭도 일구며, 지역사회에서 운영하는 스포츠 시설 및 동호회가 잘 되어 있어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잘 활용한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 같다.
사실 본인이 마음만 있으면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 뉴질랜드!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서 보다 내면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삶의 여건을 누릴 수 있는 곳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누려보자. 이미 각 분야에 활동하고 있는 재능있는 분들이 있으니 그 분들을 주축으로 다양한 기술과 기능을 배운다면 자신과 사회를 위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인자녀들과 소통하며 급변하는 이 시대에 잘 적응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당당하게 그리고 스스로 필요한 존재로서의 삶을 감당하면서 지역사회와 한인사회의 가교 역할을 하며 어떤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어야 할까?
다른 나라와는 달리 초기 이민사회의 구성원들이 한국의 중산층으로 이루어져 높은 교육수준과 시민의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위상과 정체성 그리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문화를 지키고 또 발전시켜 가는 것은 이민 1세대의 몫이다. 그래야 성인자녀는 물론 요즘 태어나는 이민 2, 3세대의 아이들에게도 존경받는 아름답고 보람있는 노년기를 맞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시간을 내어 자원봉사에도 참여하여 사회에 기여한다면 그 자체 만으로도 더 없이 의미있는 삶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가서 살던 교민들 중에 노년기에는 뉴질랜드에서 편하게 노후를 즐기고 싶다는 이들도 있다. 단지 편한 노후와 아름답고 의미있는 노후는 뭔가 다른 어감이 느껴진다.
이민 1세대들의 역할
그렇다면 이제 성인이 된 자녀들을 잘 키워낸 이민 1세대들은 무엇을 하며 남은 시간들을 살아가야 하는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준비없이 은퇴기를 맞이하면서 길어지는 수명이 가져오는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부담과 함께 노후 생활에 대한 설계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하긴 이 부분은 전세계가 함께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일만 열심히 하고 다른 부분의 준비를 별로 해오지 않았다면 노후 생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작용할 수 있다.
자녀와의 소통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로 인한 고립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아노미(Anomi) 현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 예전에 이민 온 상태에서 별다른 변화없이 단순하게 살아가다가 노년의 문턱에 들어서면 더욱이 모국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문화적 차이는 더욱더 두드러질 수 있다.
여러 부분에 있어서 성장이 멈춰진 부분들로 인해서 못한 부분이 생길 수 있다. 싱가포르도 노령화가 빨리 진행되고 있는 나라여서 정부도 장기간의 대책을 마련하느라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 노인들의 미래를 담당하기 위해 노인청(Council of 3 Age)도 만들어서 50대 이상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강좌와 교육을 마련하며 미래의 변화와 노후의 삶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U3A(University of Third Age) 무브먼트는 아시아로 번져 싱가포르에서도 최근에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은퇴자와 반은퇴자(Semi-Retired)들을 위한 새로운 기능과 기술을 배우고 흥미 있는 분야를 찾아 연구하고 발전시켜 남은 인생을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다.
뉴질랜드의 대도시에서도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장년층 뉴질랜더들이 많이 있다. 장년층 누구나 남을 가르칠 수 있고 또 남에게 배울 수 있는 그들만의 대학에서 장년층이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과목들이 있다.
적은 돈으로 자신을 계발하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뉴질랜드에서 미래의 의미있는 삶을 준비하는 역할을 이끌어가는 것이 그동안 받은 사회적 혜택을 되돌려 주는 일이며, 건강한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이민 1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