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몽둥이 부러지던 날

“빨리 나와보셔요. 아무래도 다리가 부러진 거 같아요”
교회 청년회와 학생회에서 친목도모로 스케이트장에 간다기에 함께 갔다가 재미있게 스케이트 타는 걸보고 들어 왔는데 채 30분도 안되어 급하게 차 세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헐레벌떡 청년 하나가 뛰어 들어와 소리를 지릅니다.

놀라 뛰어나가보니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러 온 여학생이 조수석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자마자 마구 웁니다. 괜찮다고 달래며 다리를 보니 발목부터 퉁퉁 부어 오른 다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스케이트를 타다가 한 청년과 함께 넘어지면서 얼음 판에 다리를 냅다 박아 버렸다는군요. 많이 아프긴 해도 처음엔 별로 심상치 않게 생각하고 왔다는데 와서 보니 그 사이 다리가 퉁퉁 부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볼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급히 응급실을 향해 달려갑니다. 가뜩이나 느려터진 이 나라에서 언제 차례가 올려는 지 아득합니다. 느려터졌다느니… 아시안이라고 무시해서 그냥 내버려둔다느니… 응급실이 응급실이 아니라느니…궁시렁궁시렁 답답함을 달래가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 나마 빨리 엑스레이를 찍긴 했는데 결과가 장난이 아닙니다.

“종아리 뼈가 다 으스러져서 전문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아마 발목부터 무릎까지 종아리 뼈대신 쇠붙이를 넣고 연결해야 하는 수술을 해야 할거에요”

오, 주여! 이 일을 어찌하오리이까?
오밤중에 앰뷸런스를 타고 다른 병원으로 달려 갑니다. 부은 다리의 붓기가 빠진 후에 수술을 하기로 하고 입원을 했지요.

스튜디어스가 꿈인 혜림이는 수학교사인 아버지와 믿음 좋은 어머니 밑에서 잘 자란 21살 대학생입니다. 교환학생으로 이곳에 와서 키위 집에서 홈스테이하면서 열심히 영어공부하며 스튜디어스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힘들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없이 아픈 것도 잘 참고, 느린 것도 잘 참고, 믿음으로 잘 이겨갑니다.

한국의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야 할 것 같아 부모님 연락처를 묻자 소용없다며 괜찮다 합니다.

“전화드려도 우리 부모님 별로 안놀라실거에요. 여러 번 사고 쳤거든요. 침대에 누워서 성경 많이 읽고, 기도 많이 하고 하늘만 쳐다보라고 하실걸요”

그래도 이곳 보호자로서 연락을 드리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 조심스레 전화를 드렸습니다.

“허허, 그래요? 죽진 않았죠? 침대에 누워서 성경 많이 읽고, 기도도 많이 하고, 하늘만 쳐다보면서 하나님 도우심을 구하라고 하셔요. 저희도 기도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혜림이가 흉내 낸 말투는 아버지 그대로였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겠습니까? 금쪽같은 이쁜 딸내미를 이역만리 공부하러 보냈는데 종아리뼈가 으스러져 누워있다니 그 맘 말 안해도 부모된 같은 입장에서 다 압니다.

붓기가 언능 빠져야 수술할텐데 부은 다리는 조선 무처럼 생겨가지고 빠질 생각을 안합니다. 더군다나 먹는 걸 즐겨하는 혜림이에게 금식까지 시키며 먹을 것도 주질 않으니 아픈 것보다 배고픔이 더 힘들고 어려울 수 밖에요. 사오일이 지나 수술 날짜가 잡혔습니다.

오랜 시간 끝에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2주간의 병원 생활 뒤 은혜로 퇴원을 했습니다.

“절대 심한 운동 하면 안되구요, 뛰어도 안되구요, 높은 구두 신어도 안되구요, 스케이트 타도 안됩니다. 등등…”

마음 아픈 주의사항을 잔뜩 듣고 돌아오는 길에 그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기뻐했지요.

“살아 있어서 고맙다! 잘 견뎌줘서 고맙다! 다시 돌아와 고맙다!”
친구들의 환호성 속에 그녀의 삶은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세월지나 혜림이는 그녀의 꿈대로 스튜디어스가 되어 가끔 비행기 일정이 맞아 뉴질랜드로 들어 오는 날이면 우리를 찾아오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다리 몽둥이 부러뜨리시던 날, 제 꿈도 부러졌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걷게 하시던 날, 제 꿈도 다시 걷게 되었지요. 절대 절망하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는 나에 대한 계획이 분명 있으시리라 믿었거든요. 보세요! 제 꿈을 이루었잖아요.”

꿈꿀 수 없는 절망 가운데서도 꿈을 꾸었던 요셉처럼 그녀의 꿈은 오늘도 그녀와 함께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꿈!!!

절대 포기하지 마셔요. 우리 마음에 소원을 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실거니까요.

장명애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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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애
크리스천라이프 대표,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사모, 협동 목사. 라이프에세이를 통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잔잔한 감동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 와 '은밀히 거래된 나의 인생 그 길을 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