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가면 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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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가면 돈이 보인다!” 오래전 뉴욕 다녀온 뒤 아내와 나눈 한 문장 나의 뉴욕 기행문. 쌍둥이 빌딩도 만나보고 자유의 여인상 머리 꼭대기 올라 뉴욕 항구 바라본다. 온 세계 각처에서 흘러들어오는 이민 행렬 상상한다.

먼 길 달려와 지친 뱃고동 소리 사람들 소리 뉴욕 갈매기 소리. 아메리칸 드림 관문 뉴욕항 배 타고 바라보다 내 입에서 참다못해 뛰쳐나온 말. “뉴욕은 돈이다!”

맨해튼 한복판 잠시 발길 멈춘다. 하늘 향해 머리 쳐들고 한 바퀴 뱅글 몸 돌린다. 엄청난 빌딩 숲에 압도된 채 어지럽다.

내 입에서 다시 튀어나온 말. “뉴욕 어마어마한 돈뭉치다! 그 후 다시 찾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 맨해튼 야경 온통 황금 머리에 뒤집어쓴 채 눈앞에서 외친다. “뉴욕은 황금 도시다!”

수많은 이민자 성공담이 맨해튼 마천루 숲속 뒤지면 만난다. 이 돈뭉치 맨해튼 빌딩 정글 속 건축사 꿈 일궈낸 자랑스러운 한국 이민자 한 사람 만난다. 33세에 부친 따라 미국 이민 여정 시작된다.

그날 이후 몸과 마음 송두리째 짓누르는 공사판 허드렛일에 온몸 던진다. 소위 도박 용어 ‘다 걸기’다(All-in). 이왕 큰 나라 가슴팍에 몸담기로 결단한 일허리 굽힌 채 낮은 자세로 공사판 벽돌과 사투 벌인다. 타잔 영화에서 나올법한 맨해튼 빌딩 숲 원시림 생존투쟁.

부친 돌아가시며 유언 남긴다. “유명한 건축가 돼라.” 등에 올려진 벽돌 무게만큼 자고 눈 뜨면 온몸 짓누르는 이민자의 서러움 이민자의 애환. 애절한 아버지의 유언 거절할 수 없어 늦깎이 건축학에 도전한다.

도저히 더는 앞으로 나갈 수 없이 기력 소진된 어느 날. 폭풍우 쓸고 간 산 너머 무지개처럼 다가온 한 가닥 믿음 가슴 두드린다. “어떤 고통 따르더라도 주님의 능력 믿고 기도하면 반드시 목적 이룬다.”

한 집회 기간 받은 예언적 메시지. 거반 죽은 그의 삶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링거 주사. 자그마치 벽돌공 생활 20년. 그의 나이 52세 미국 건축사 자격 두 손에 거머쥔다.

오늘날 뉴욕 빌딩 숲 한가운데 건축 설계사무실 차린 후 이미 여러 한인교회 건축했다. “문화재가 될만한 빌딩 짓는 세계적 건축설계사 되고 싶다.”

그의 꿈 여전히 진행형. 그는 해냈다. 뉴욕 심장 이식받은 기적 같은 일 해냈다. 한 나라가 인정하는 사람 된다는 것 결코 쉬운 일 아니다. 이민자 신분으로 이방 땅에서 인정받기란 더더욱 그렇다. 그의 성공담 통째로 삶을 던져 뉴욕 밀림 헤쳐 나온 이민자의 생존드리마.

까마득한 오래전 한 작은 동리 허술한 목공소. 건축가 꿈 키우는 또 한 소년 만난다. 예리한 눈매에다 망치 대패 끌 당차게 잡은 두 손 보통 신중한 모습 아니다. 아직 어린 나이. 하지만 일찍 세상 떠난 아버지 자리까지 물려받는다. 홀어머니 손아래 동생들 돌볼 무거운 짐 그 등에 올려진다.

삶의 고달픔 낡은 목공소 문 두드릴 때마다 믿음 저버리지 않는 나무와 연장 두 손으로 붙든 채 기도한다.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운 그대로 하다 보니 어느 날 그도 어엿한 장인 수준에 오른다. 나뭇결 하나하나 연장 하나하나 친숙한 교감 오간다.

거칠고 휘어져 쓸모없을듯한 나무들. 톱으로 자른 후 끌 망치 대패 들이대면 살림살이 요긴한 가구로 다시 태어난다. 이거야말로 기적이다. 엄청난 변신이다. 투박한 나무토막 새로 태어난 아름다운 모습 바라보는 것 그의 달콤한 행복.

“다듬지 아니한 거친 나무 같은 사람 역시 이렇게 다시 태어날 수 없을까?”

망치질 대패질 끌질 수천 번 수만 번 오가는 동안 사람에 대한 기대와 믿음 다져진다. 동생들 자라 어머니와 가정 돌볼 때쯤 거절할 수 없는 부름 목공소 문 두드린다. 목공소 떠날 때다. 작은 목공소 떠나 더 큰물에서 삶을 펼쳐야 할 시간. 돌아가신 아버지의 손때 묻은 연장들 다시 한번 만져본다.

지난 수십 년간 자신의 손때까지 덧칠해져 반들반들한 연장들. 이제 그의 숨소리조차 읽을 수 있는 그의 삶의 일부가 된 연장들. 손이 가는 대로 제 몫 척척 해내는 일심동체 연장들. 하늘 우러러본다.

목공소 뚫어진 천장 위로 흘러가는 구름 지난 어제 숱한 삶의 여정 흩뿌린다-아버지 돌아가실 때 받은 이별의 슬픔. 자식들 앞에서 슬픔 꾹 참고 말없이 손잡아주던 애절한 어머니의 체온.

급한 일거리 주문받아 홀로 밤 꼬박 지새운 날들. 어머니 손길로 준비한 점심 뚝딱 해치운 후 곧바로 망치 잡아야 했던 바쁜 손. 두 손 수차례 나무 가시에 찔렸다. 수차례 빗나간 망치에 손등 얻어맞았다. 이제는 고통과 희생 상흔만 아련하게 남은 손.

그동안 온갖 세상살이 고통 만지며 살았다. 온갖 삶의 뒤안길 고스란히 함께 걸어온 연장들 만지작거리며 작별인사 침묵 속에 흐른다. 손에 잡았던 연장들 조용히 테이블에 내려놓자 떠나려는 그의 얼굴 빤히 바라보는 연장들…

지난 30년 불끈 거머쥔 손끝에 가두었던 힘조차 비운다. 더 큰 세상 더 큰 고통 어루만지라는 부름 받는다. 이제는 텅 빈 손으로 목공소 떠난다…이 목수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

고향 나사렛 떠나 요단강 이르기까지 걸린 세월 자그마치 30년! 2대째 초라한 목수 세례자 요한 앞에 그 모습 드러낸다. 요한 그를 알아본다. 거친 세상 새롭게 다듬을 신령한 목수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요한 그도 오랫동안 광야 수업 치른 후 사람 보는 눈 열렸다.

나사렛 예수 목공 경력 30년. 목회 전문 경력 겨우 3년. “예수 그리스도 목회자 프로파일 자격 없다.” “학력 미달 아닌가?” “너무 많은 세월 허비한 것 아닌가?” 이런저런 신학 비평 오간다. 예수님 결코 인생살이 기초코스 건너뛰지 않으셨다. 구세주 속성 코스 밟지 않으셨다.

기억하는가? 30년 목수 경력 손 놓고 요단강에 서신 그날? 세례 받으신 후 들려온 하늘 음성- “내가 아주 사랑하는 나의 아들, 나의 기쁨!”(마태 3:17, 필자 의역) 이 사건 구세주 임명식! 무엇이 그토록 하나님 기쁘시게 하나?

“아니, 그 코딱지만 한 촌구석 목공소에 처박혀 30년 동안 그 아까운 젊음 허비한 거야?”

아버지 하나님 그렇게 나무라지 않으신다. 오히려 참으로 잘했노라 칭찬하신다. 촌 동리 목공소 지붕 아래 제 식구 돌보며 톱질 망치질 대패질 끌질 세월 30년!

맞다, 나사렛 시골 촌 동리 목수일 하나님 뜻 맞다! 나사렛 목공소 하늘나라 건축사 필수코스!

명작 앞에 서면 모두 아낌없는 감탄사 쏟아낸다. 나 또한 예술 즐기는 한 사람. 하지만 부끄럽다. 명작 왜 명작인지 아직 잘 이해 못하는 수준.

런던 국립미술관 갈 때마다 거대한 황금빛 액자에 담긴 큰 그림 앞에 압도된다. 하지만 작은 그림 앞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난 아직 미술 감상 초보자. 이참에 함께 물어보자.

우리 모두 한평생 한 폭 그림 그린 후 세상 떠난다고 말하자. 그리고 묻자. “내가 그리는 명작 무엇인가?” “스케치 밑그림 제쳐놓고 명작 그리겠다 서두르는 내 모습 아닌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이민 성공 기초공사에 달렸다. 많은 이들 머릿속에 큰 설계도 그린 채 밑그림 서두른다. 하여 영국서도 종종 본다. 언어훈련 문화훈련 기초과목 제쳐놓고 돈에 먼저 눈 돌린다. 하여 건너뛴 이민 생활 밑그림 명작에서 멀어진다.

자고 나면 들리는 한국 사회 사고 소식. 그 모두 기본 무시한 채 빨리빨리 서두르는 민족성 때문. 기본 무시하면 인생 완주 못 한다.

다시 생각하라, 예수님의 작품 생활-밑그림 30년 명작 3년! 이민 생활 명작 꿈꾸는가? 밑그림 게을리 말라. 큰 그림 그리고자 하는가. 작은 그림부터 연습하라.

나사렛 고향 떠나 요단강 세례터(The baptismal place of Jesus) 이르는 길 124km. 오늘날 차로 가면 2시간. 요단강 골짜기 따라 걸으면 약 26시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 길 가는 데 30년 걸렸다.

목공소 망치질 30년 끝에 도착한 임명식장! 하나님 그 거북이걸음 그리도 좋아하셨다?

“참 잘했구나! 아주 아주 많이 사랑하는 나의 아들, 나의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