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표지설명/Zino Francescatti(1961년)이 연주한 음반

지난 회에 화요음악회가 시작된 유래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2012년 3월6일 화요일에 첫 모임을 가졌던 화요음악회는 지금까지 매주 화요일에 계속 열려서 작년 12월 18일에는 240번째의 모임을 가졌습니다.

연말과 연시에 잠깐 휴식을 가진 뒤 올해 2019년에는 1월 22일부터 다시 화요음악회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이야기부터는 지난 7년간 240회의 화요음악회에서 들었던 음악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음악과 그 음악에 얽혀있는 일화를 여러분들과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 화요음악회가 열렸던 날의 음악은 베토벤 음악이었습니다. 첫 모임에 오신 분들은 모두가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분들이었지만 그분들의 음악적 취향이나 깊이까지는 자세히는 알지 못했기에 누구나가 잘 알고 또 좋아하실 만한 곡들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음악가가 베토벤이었고 음악은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습니다.

베토벤은 누구나가 잘 아는 유명한 작곡가입니다. 흔히 서양의 음악사는 베토벤이라는 높은 산을 중심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베토벤 이전의 음악을 고전주의 음악이라고 하고 베토벤 이후의 음악을 낭만주의 음악이라고 하지만 막상 베토벤의 음악은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어느 한 악파에 종속시킬 수 없을 정도로 그 크기와 깊이가 장대합니다.

그렇기에 음악사에 관한 책에서 저자에 따라 베토벤을 고전주의 작곡가로 또는 낭만주의 작곡가로 분류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베토벤은 여러 장르에 걸쳐 많은 곡을 작곡했지만 바이올린 협주곡은 한 곡밖에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단 한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지금까지 작곡된 어느 작곡가의 바이올린 협주곡보다 가장 많이 연주되고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곡입니다.

Beethoven의 Violin Concerto in D, Op. 61
보통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 하면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꼽습니다. 여기에 차이콥스키까지 넣어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순위는 무엇이든 순위를 정하기 좋아하는 일부 호사가들에 의한 것이고 큰 의미는 없습니다.

예술 특히 음악에 있어서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에 올라가 있는 작품들을 대할 때 섣불리 우열을 따지기 보다는 편견 없이 그 작품을 듣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다 보면 내게 맞는 음악들을 만날 수 있고 또 그런 음악들을 중심으로 듣다가 보면 차츰 내 음악의 범위가 넓고 깊어지기 마련입니다.

바이올린은 악기중의 여왕이라고 불릴 만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악기인 만큼 많은 작곡가들이 독주가가 마음껏 역량을 뽐낼 수 있는 협주곡을 많이 썼고 그렇기에 훌륭한 걸작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걸작 중에서 변함없이 첫 손가락에 꼽히는 작품은 역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곡에서 뿜어 나오는 베토벤 특유의 풍부한 서정미와 고고한 품격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곡 전체를 통해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팽팽한 긴장감은 연주시간이 40분을 넘는 이 곡을 듣는 이로 하여금 결코 곡이 길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한 것은 그가 36세였을 때입니다. 이 때는 베토벤의 창작 중기에 해당하는 때로 피아노 협주곡 4번이나 현악4중주 라주모프스키 같은 걸작들을 쏟아내던 때입니다. 자신감에 차있던 때이라 작곡하는 곡마다 새로운 시도도 불사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4번 1악장에서 관현악이 주제를 제시하며 시작하는 대신 독주 피아노가 먼저 등장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듯이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1악장의 시작이 부드러운 팀파니의 다섯 번의 D음의 두드림으로 시작합니다. 이러한 시작은 그때까지의 어떤 협주곡에서도 없었던 파격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파격적으로 태어나 당시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오늘날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바이올린 협주곡의 왕자라고 불리는 곡이지만 그런 오늘날이 있기까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베토벤은 이 곡을 당시의 바이올린 신동이라고 불렸던 프란츠 클레멘트(Franz Clement)를 위해 1806년에 작곡했고 같은 해 열린 초연에서도 클레멘트가 독주 바이올린을 맡았습니다.

클레멘트의 신기에 가까운 바이올린 연주 덕분에 초연에서의 관중들의 반응은 비교적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혹평을 하였는데, ‘1악장은 너무 길고 어떤 악절의 끝없는 반복은 지루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청중은 베토벤에서 멀어질 것이다.’ 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였는지 초연 뒤에 이 곡은 거의 잊혀져 베토벤이 죽은 뒤 6년 뒤에 비외탕(Vieuxtemps)이 한번 연주를 한 것 이외에는 비엔나에서 이 곡을 거의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844년 열두 살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이 런던에서 멘델스존의 지휘로 이 곡을 선보여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때부터 이 곡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명곡 중의 명곡의 반열에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이 곡이 초연된 지 거의 40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빛을 보고 제 평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곡인 만큼 좋은 연주가 많아 이 곡을 수록한 명반이 많습니다.

모노 시대를 대표하는 Kreisler의 연주(1926년), 눈부신 기교의 Heifetz의 연주(1955년), 진지하고 단정한 Szeryng의 연주(1973년) 등등 모두가 훌륭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베토벤 특유의 낭만이 두드러지는 Bruno Walter가 지휘하는 Columbia Symphony와 협연한 Zino Francescatti(1961년)의 연주를 좋아하기에 화요음악회에서는 이 음반으로 감상했습니다.

여러분께는 이런저런 연주를 골고루 들어보시기 권해드립니다. 저는 이 곡을 좋아해서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듣습니다.

전 악장이 모두 좋지만 특히 라르게토(Larghetto)의 2악장이 시작된 뒤 편안하고 아름다운 현악의 선율이 흐른 뒤 그 사이를 누비듯 스며 나오는 독주 바이올린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렇게 좋은 곡을 왜 사람들은 40년 가까이 천덕꾸러기로 버려둘 수가 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곡을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낸 요아힘과 멘델스존에게 마음속으로 치하를 합니다.

이럴 때 또한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시편 118편입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시편 118편 22-23절)

귀한 것이 귀한 것인 줄 모르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이 이루어 놓은 걸작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가 어찌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사람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도 우리는 몸과 마음을 숙이고 또 숙여 겸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화요음악회의 첫 시간에 들었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가지고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다음에도 베토벤의 음악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화요음악회는 교민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며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 Devonport의 가정집 정이정(淨耳亭)에서 열립니다. 관심 있는 분께서는 전화 445 8797 휴대전화 021 717028로 문의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