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이어지는 말씀묵상

김철우 목사<오클랜드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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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Quiet time. 말씀묵상)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큐티는 개인적인 묵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정의 또한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나에게 큐티를 정의해 보라고 하면 “큐티란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의 인격의 결정체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성경의 계시를 의존하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인격적 교제를 위한 출발이지만 반드시 가슴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감격하기도 하고, 찬양하거나 기도할 때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는 정서적인 교제를 포함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말씀묵상이 삶에 적용되는 의지적인 결단으로 나아갈 때 온전히 이루어진다.

적용, 어떻게 하면 될까?
필자는 매월 5만 여권이상 발행되는 큐티지의 집필책임자로 6년 정도 섬기면서 수많은 묵상훈련과 세미나를 인도했었다. 그러다 보니 큐티하는 분들과 많은 경험을 공유하고 고민을 상담해주기도 했다. 큐티를 어려워하고, 큐티가 지속적으로 되지 않아 답답해하는 분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큐티를 오랫동안 했지만 삶의 변화와 성숙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삶으로 이어지는 인격적인 큐티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적용이 있는 큐티는 힘있고 지속적이며, 삶의 변화와 기쁨을 준다. 그렇다면 큐티의 열매라고 할 수 있는 적용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말씀이 나를 해석하게 하라
적용은 ‘말씀이 나를 해석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경험과 세상의 기준으로 바라보았던 내 인생을 말씀의 기준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세상 안경을 벗어 던지고 말씀의 안경을 써 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말씀의 관점으로 내 삶을 재해석하는 것, 하나님의 관점으로 내 인생의 사건을 새롭게 조명해 보는 것, 그것이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던 바로 왕이 나온다. 우리 삶의 자리마다 바로 같은 사람이 있지 않는가?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바로가 강퍅하여 이스라엘백성을 괴롭혔기 때문에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애굽을 떠나 죽을 고생을 각오하고 모세를 따라 출애굽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모세도 바로의 완고함으로 인해 지도자로서 성장하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미치자 내 주변에 바로 같은 사람들에 대한 나의 시각이 바뀌게 되었다.

“누구 때문에 힘들다 못살겠다”가 아니라“그가 나를 위해 수고해 주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생겼다. 그는 변하지 않았지만 내가 변하니 모든 것이 새로워졌던 경험이 있다. 이것이 적용의 첫걸음이다. 이렇듯 삶에서 경험된 말씀은 삶의 변화를 주는 능력이 됨으로 평생에 잊혀지지 않는 깨달음이 된다.

적용을 위한 네 가지 제안
1.큐티하는 것이 최고의 적용이다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적용은 매일 매일 큐티를 하는 것이다. 큐티의 유통기한은 24시간이다. 만나를 매일 거두어야 하는 것처럼 큐티는 매일 해야 한다. 거룩한 습관으로 자리잡힐 때까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큐티 책을 펼치는 것이 적용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바쁘다고 빼먹고, 어려운 본문이라고 건너뛰고, 게을러서 못하게 되면 평생 제대로 된 큐티를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2. 치우치지 않는 것이 적용이다(여호수아 1:7-9)
사람들은 누구나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 타고난 기질이나 삶의 경험들을 통해 어느 정도 치우칠 수 밖에 없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나 치우치는 것은 적용이 아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앞에는 넘쳐 흐르는 요단강이 가로막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견고한 여리고성이 버티고 서있었다. 두려워하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좌우나 우로나 치우치지만 않으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내 생각과는 다르지만 순종하겠습니다. 이것이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고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치우쳐서 돌이키지 않은 사람들은 적용을 하지 못한다. 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동행의 약속이다.

3. 생활예배 잘 드리는 것이 적용이다(로마서 12:1)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는 온 성도들이 함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뿐만이 아니다. 삶 속에서 드리는 산 제사, 내 몸을 제물로 드리는 생활예배도 기뻐하신다. 생활예배라는 말씀이 이해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쉽게 풀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 적용은 내가 가야 할 지리와 가지 말아야 할 자리를 분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동창회에 가는 것이 적용일까? 가지 않는 것이 적용일까? 무조건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치우친 것이기에 적용이 아니다. 때론 가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가 있어보면 내가 생활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불편하고 힘들기만 하고 괜히 왔다고 후회가 되면 적용을 잘못한 것이다. 즉 생활예배를 드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다소 불편함이 있더라도 불신 친구들을 만나서 좋은 관계를 맺고 앞으로 전도대상자들을 확보한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그 자리를 갔다면 그것은 좋은 적용이요, 그 시간이 분명 생활예배를 드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내가 하기 싫은 것이 적용일 가능성이 많다(역대하 28:22)
적용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 성향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조금 뒤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하기 싫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적용이라는 뜻이다.

오래 전에 아들의 건강 때문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기도조차 힘든 상황에서 아침에 묵상한 말씀을 떠올렸는데 역대하 28:22의 말씀이었다. ‘아하스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범죄하였다’는 본문이었는데, ‘곤고할 때’라는 상황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곤고한 상황에서 범죄한 것이 무엇인지를 묵상하다가 나를 힘들게 하던 어떤 집사님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 분을 미워하는 것이 죄임을 깨달았다. 성령께서 그 분에게 전화 드려 용서를 구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이었으나 마지못해 전화를 드려 사과를 드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바로 그 순간 물밀 듯 내 마음에 평안이 밀려왔다는 것이다. 그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

적용, 하나님과의 동행
큐티는 말씀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것이다. 거울은 항상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큐티는 자신에게 먼저 적용시켜야 한다. 자신에게 적용시킨 말씀은 기쁨과 능력이 되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물론 적용이 없는 날도 있다. 구체적인 적용이 아니어도 마음의 결단이나 변화도 중요한 적용임을 밝혀둔다. 중요한 것은 매일의 삶에서 인격적인 하나님과 우리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다 동원하여 교제하고 동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분명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매일 말씀으로 인한 은혜의 무한지평이 열리는 것을 맛볼 것이다. 날마다 솟는 샘물 같은 기쁨과 말씀의 능력이 넘쳐나길 소원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