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Z 알파크루시스 한어학부 신학강좌

송인서 교수<미주 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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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신앙 선배들의 이야기로 초대받은 우리의 스토리
교회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고 오늘도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어

역사 공부는 사실, 지명, 이름들의 단순 암기가 아니라 과거의 여러 가지 일들 중 기록에 남길 만한 일들을 골라내어 그것들을 인과관계로 엮은 후, 하나의 개연성있는 이야기로 기술하는 매우 창의적인 작업이다.

교회사는 우리가 믿고, 가르치고, 그리고 고백하는 믿음의 내용들이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통하여 역사적으로 발전해 왔음을 전제한다. 이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시작된 “이미(already)”의 시간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아직 아니 (not yet)”의 시간 사이에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교회사는 우리를 마치 구름처럼 감싸고 있는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 즉, 우리의 신앙 선배들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주님으로부터 이 이야기 안으로 초대받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브라함, 교회사의 출발
그렇다면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 교회가 존재하기 시작했을까? 교회사의 출발은 언제일까? 이번 수업에서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을 교회의 출발로 설정했다. 역사 속의, 그리고 성서 속의 여러 다른 사건들보다 이 사건을 교회의 출발로 정한 이유가 있다.

바로 교회라는 단어, “에클레시아(ecclesia)”가 “무엇으로부터 불러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무리들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름을 지명하여 불러내신 사람들, 공동체를 지칭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고 그와 매우 특별하고 친밀한 관계 즉, 계약을 맺는 그 사건을 교회의 출발로 설정했다.

1세기 초기 기독교 나사렛파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내용들이 교회의 역사에 포함되며,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는 다름아닌 교회에 속한 나의 역사이기도 하다. 여러 제국들의 압제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1세기에는 4개의 유대교 종파가 있었다.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 그리고 젤롯파가 각각의 종교적, 정치적 주장들을 펼치고 있을 무렵, 예수를 약속된 메시아로 믿는 “나사렛파”가 탄생했다. 예수가 율법을 재해석할 권리가 있으며, 그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고, 무엇보다도 예수가 부활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셨음을 주장하였던 이 “나사렛파”가 가장 초창기 예수 운동의 시작이었다.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제국에 의해 파괴되면서 유대교의 소종파로 출발하였던 나사렛파가 소아시아의 각 도시들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교회는 제국의 극심한 핍박과 박해를 견뎌내야 했으며, 자신들의 어머니 종교라고 할 수 있는 유대교로부터 독립을 해야 했고, 또한 그리스 로마 철학들과 경쟁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됐다.

디다케, 이그나시우스의 편지, 그리고 순교자 저스틴의 변증서 등을 함께 읽으면서 어떻게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자 했는지 공부했다. 영지주의, 마르시온주의, 그리고 도나투스주의 등과 같은 초기 기독교 이단들을 배경으로 초대교회가 이러한 이단들과의 논쟁을 통하여 신앙규범, 성서의 정경화, 성례론과 교회론 등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왔음을 살펴보았다.

4세기 이후 공식종교로서의 기독교
4세기 이후부터 초대교회는 박해 받던 종교에서 제국의 공식종교로 성장하게 됐다. 기독교가 지나치게 대중화되고 세속화되는 시점에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추구하는 중세 수도원 운동이 시작됐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규칙서를 함께 읽으면서 중세 초기의 수도사들이 공동생활을 통하여 어떻게 순결, 복종, 그리고 청빈의 이상을 추구하였는지를 공부했다.

또한 어떻게 로마 교황제도가 성립되었는지, 그리고 교회의 아비뇽 유수사건과 서방 교회의 대 분열로 인하여 중세 말기에 왜 교황권이 점진적으로 쇠퇴하게 되었는지도 함께 살펴보았다. 약 200년이 넘는 긴 기간 동안 자행된 중세 십자군 운동의 실상을 보면서 탄식하기도 했으며, 반대로 안셀름과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중세 신학자들의 글들을 함께 읽으면서 그들의 신학적 논리 정연함에 감탄하기도 했다. 교회의 권위를 비롯하여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시작했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을 공부했다.

개혁되어야 할 기독교
중세 고해성사제도와 면죄부 판매의 밀접한 관계, 그리고 이에 반대하여 마틴 루터가 1517년 발표한 95개조 반박문을 함께 읽으면서 개혁자의 결의에 감동했고, 루터의 이신칭의 신학을 되돌아보며 구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함께 고민해 보기도 했다. 존 칼빈이 제정한 1541년 교회법령을 통하여 그가 꿈꾸었던 각 교회 직제들의 수평적이면서도 독립적인 관계와 역할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도 볼 수 있었다.

개혁 이후 부흥의 기독교
종교개혁 이후의 유럽 교파주의, 그리고 기독교 이신론에 반하여 등장하게 된 독일의 경건주의의 특징을 공부했고, 웨슬리 형제가 일으킨 영국 부흥운동과 미국의 영적 대각성 운동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기독교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모두에게 반기를 들었던 20세기 복음주의의 성격에 대해 공부하면서 미국 복음주의와 한국 기독교의 연관성에 대해 살펴 봄으로서 교회사의 모든 강의를 마쳤다.

창세기 12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에서 출발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이 장엄한 교회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불러 지명하여 이 역사 안으로 초대했다. 우리는 바로 이 교회의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오늘도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교회사 집중강의를 듣고
기독교 역사는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교회사가 우리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에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또, 보통 역사는 반복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기독교 역사는‘새로운 일이 일어난다’는 설명에 더 공감을 하게 되었다. 이단들의 주장이 오히려 정경을 정립해 나가는 계기가 되어 지금의 기독교로 서 있게 된 것을 본다. 루터의 이신칭의 강의를 들을 때는 모두들 궁금해 했던 것이어서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그 중에서 이웃이 어려우면 도와야 하는 것이 내 사명인데,‘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자신이 없다면, 이웃을 돌 볼 겨를이 없다’고 설명해 주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이경찬>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 위에 배를 띄우고 며칠 동안 열심히 젓고 저어 위로 위로 올라 갔더니 루터도 칼뱅도 보니페스 8세도 안셀름도 어거스틴도 이그나시우스도 베드로도 아브라함도 모두 엎드려 있었다. 맨 앞에 계신 어린양 예수께 모두 경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신을 벗고 얼른 무릎 끓고 엎드렸다. 어린양 예수여 어서 옵소서. 그래서 나도 마라나타 예수여! 하였다. 오늘 아직도 나는 거기 있다. 내일도 거기 있을 거다. 그리고 모레도 그 강에 있겠다.<이강우>

교회사는 어려운 학문이라고만 생각했고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머리 아픈 나하고는 멀고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의 수준에서도 알 수 있게 풀어주실 최고의 역사가를 미국으로부터 보내셨고 교회사는 바로 내이야기가 되 버렸다. 내가 믿고 있는 고백하고 가르치고 있는 신앙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수 천년 동안 일어났던 모든 사건과 혁명과 인간들의 삶 속에서 사랑과 공의로 균형을 잡아주셨던 하나님의 이야기였다. 신앙의 선배들이 목숨 걸고 전하며 지켜왔던 복음이 내게 생명이 되었듯이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웃의 안녕을 돌아보는 나의 삶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역사 속에 나에게 허락하신 삶이 복음이 전파되어 온 세상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되길 기도한다. <고순자>

퍼즐과 같이 정리되지 못한 단편역사의 조각들이 한 개씩 자리를 찾아가며 교회사라는 흐름과 맥을 잡아가는 귀한 시간이었다. 퍼즐의 몇 조각 남지 않은 역사의 말미에서 지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순종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 내길 소망한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어 마지막 조각이 놓여지고 한 그림이 완성되어질 때, 새 하늘과 새 땅의 또 다른 그림을 시작하실 그분의 영원한 인간을 향하신 크신 사랑의 역사를 감사하며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삶의 역사 가운데 복음의 깃발 들고 뚜벅뚜벅 걸어나간다.<박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