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년 전에 ㄱ 씨(41세, 여)가 만성 신부증으로 투병을 한다. 병원에 입원 그리고 퇴원을 반복한다. 투병 생활하는 본인의 고초는 얼마인가? 병 수발하는 가족들의 고생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가족들의 행복의 보금자리인 집도 병원치료비로 남의 손에 넘어 갔다. 그나마 전세로 옮겨서 간신히 연명하던 때였다. 신장이식희망자 명단에 등록을 해놓고 기부천사를 기다린다.
체념으로 절망에 몸부림 치는 어느 날이다. 신장기증자가 나타났다는 전갈을 받는다. 죽음의 지옥에서 생명의 천국으로의 환희를 맛본다. 신장 이식 후에 그녀는 제2의 인생을 만끽한다. 인생 노트에 목록을 만들어 놓고 하루 하루를 감사하며 산다. ‘인생만사 새옹지마’가 하필이면 그녀에게 적용될까.
어느 날 시장을 다녀 오는 그녀가 승용차가 덮치는 사고를 당한다. 응급실을 거쳐서 중환자실로 옮긴 그녀는 뇌사판정을 받는다. 그녀의 제2의 인생은 신장이식으로 새 출발이었다.
그녀도 자신의 마지막 길이 언젠가 된다면 장기기증을 의사에게 밝혀 두었다. 가족들은 그녀의 뜻에 따라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 환자에게 장기를 기증한다. 이름 모를 한 생명을 살린 뒤에 눈을 감는다.
선물이 선물을 낳는 기적이다. 선물은 감동을 만든다. 선물은 기적을 만든다. 선물은 지옥을 천당으로 만든다. 선물은 창조를 만든다. 선물은 세상을 밝게 한다. 5년 전에 읽었던 미담의 기사가 아직도 가슴 한가운데서 감동으로 요동을 친다. 고인이여 하늘나라에서 영면하소서.
한국 일간지의 모 기자가 노숙인을 취재한 내용이다. 어느 노숙인의 인적 사항이다. 성명은 ㅇ모(58세, 남)씨이다. 주소는 불명이다. 현재의 거주지는 서울역이다. 서울역을 거주지로 삼은 지는 1년 6개월이다. 노숙을 하게 된 동기는 이렇다.
알코올 의존증 치료로 병원을 2년 넘게 다녔다. 직장에서는 해고 되었다. 통장잔고는 바닥이 났다. 가족들 볼 면목이 없어서 가출했다. 어쩔 수 없이 거리의 천사가 되었다. 기자가 어렵게 양해를 구하고 그의 가방 속을 열어본다. 속옷, 면도기, 컵, 티셔츠, 보건소 결핵검사증, 약 봉투, 칫솔, 기초수급자 인정 통지서, 약 봉투 등이다. 그에게서 미래의 계획을 물었다.
기자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렇다. “나 같은 +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소. 당장의 한끼를 구하는 것이요.” 취재를 위해서는 서 너 명의 인터뷰가 필요하다.
두 어명 건너편에 신문을 열심히 읽고 있던 노숙인 한 명이 눈에 들어 온다. 흰머리에 까만 색이 듬성듬성 인 중 노년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판기에서 방금 뽑아온 밀크커피 한잔을 건넨다.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고 인터뷰를 청한다. 썩 내키지 않는 눈치이다. 아마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아본 경험이 많은 모양이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그와 나눈 인생 담이다.
성명은 ㄱ모(72세, 남)씨이다. 주소는 역시 불명이다. 서울역을 근거지 삼아서 거리의 천사로 떠돈 지가 20년째라고 한다. 노숙인 중에서는 왕 고참이다. 30도를 웃도는 바깥의 무더위가 지하도 안을 끈적이게 한다. 양해를 구한 후에 열어본 그의 가방 안의 풍경이다.
기름 때로 번들번들하는 큰 이불을 시발로 줄줄이 알사탕이다. 물, 휴지, 모자, 젓가락 등 이다. 요즘같이 더운 날에도 새벽엔 쌀쌀할 때가 있단다. 그래서 이불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본인 뿐만 아니라 노숙 동료들 수 백 명이 덮었다고 자랑이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그에게도 장래 소원을 물어 본다.‘소원? 난 그런 거 잘 몰라요’지하도의 흐린 불빛이 눈앞에 물방울을 뜅긴다. 인터뷰를 얼른 접고 일어 나야겠다. 가방을 주워서 어깨에 메고 더운 바람을 날리던 부채를 집어 든다.
지하도를 거의 나오는 참에 눈이 부리부리한 노숙인을 만난다. 어쩐지 꼭 만나야 할 사람 같은 예감이다. 수인사를 건네고는 더운 바람이 이는 부채를 그의 얼굴에 가져 간다.
잠깐 시간 좀 주실까요? 성명은 ㄴ 모(62, 남)씨이다. 서울역으로 흘러 들기 전에는 경기도 ㅅ시에서 살았다. 서울역 생활이 만 4년이란다. 인터뷰 후에 예외 없이 가방을 탐색한다. 간식봉투, 컵라면, 물, 휴지, 수첩, 숟가락 등이다.
그의 가방 안에는 특이하게도 두툼한 간식 봉지가 들어있었다. 낮잠을 자고 있는데 구호단체 직원이 깨워서 나눠줬다고 한다.
인터뷰 당일 기자가 남긴 수첩의 메모이다. 노숙인들의 가방을 들여다본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을까, 혹 독자 등이 내게 그 의미를 묻는다면 나는 똑 부러진 답변을 드리긴 어렵겠다.
다만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들을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사회 부적응자’라며 외면하기엔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이것은 우리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