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니, 목사님…왜 그런 짓을…?”
내가 성경책을 거실 바닥에 집어 던지자 새로 온 성도가 깜짝 놀라며 당황해 한다. 초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구원의 원리 교육 중 나는 자주 이런 짓을 저지른다. 그 성도는 성스러운 책을 함부로 집어 던지는 목사가 신성모독을 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또 불경스러운 행동이 일어난 곳에 자신이 있었다는 게 두렵기도 했고 혹시 주님께서 나중에 벌을 주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경악의 반응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내가 반드시 덧붙이는 말이 있다.
“이 성경은 그냥 인쇄된 책일 뿐입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 힘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그 속에 쓰여진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감동을 느껴 내 속에서 살아 움직일 때 놀랍고 신비하고 성스러운 능력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그 귀한, 성스러운 책을 소중히 집어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 놓는다. 그때서야 그 성도는 고개를 끄덕인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책을 부적처럼 생각한다.
책 자체에 신비한 힘이 있어 갖고만 있어도 마귀가 덤비지 못할 것처럼 짐작해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잔다. 마치 흡혈귀 영화에서 주인공이 십자가를 갖고 있으면 드라큘라가 해치지 못하리라 생각하듯.
성경은 위대한 능력을 발휘한다.
성경은 기적을 일으킨다.
성경은 사람을 변화 시킨다.
믿으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성경을 보고 읽고 믿으면 예수님을 볼 수 있고 그 분의 생각을 알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사실 이 말을 모르는 기독인이 어디 있으랴마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잘 읽지 않는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잘 모른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심지어 그 분의 마음을 잘못 이해해서 엉뚱한 사상과 이념에 빠지기도 한다.
반면에 성경을 수십 번 읽었다는 사람 중엔‘내가 복음’에 빠져 사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한다.
“목사는 이렇게 해야 한다. 장로와 권사는 저렇게 해야 한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정죄를 잘한다. 모두 올바른 교사를 못 만나서다. 성경은 항상 읽고 묵상해야 함과 동시에 제대로 가르치는 교사를 만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수많은 이단들이 얼마나 성경 지식이 밝은가. 그러나 나쁜 교사와 교리로 인해 멸망의 길로 행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이 세상에 가장 훌륭한 성경 교사는 성령님이시다
그래서 항상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 전 이런 기도를 권한다.
“성령님 제가 이제 말씀을 읽으려 합니다. 지금 임재 해주셔서 말씀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알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허락해 주세요. 저는 부족하여 알 수 없으나 성령께서 은혜 주시면 될 것임을 믿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항상 이렇게 기도하고 성경을 펼친다. 그럴 때 주님께서 놀라운 지혜를 부어 주셔서 말씀에 대한 이해를 높여 주심을 체험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목회 하기 전 일이다. 성경을 읽다가 수주간 나를 고민에 빠뜨린 한 부분이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뱀으로 징벌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하필 마귀의 상징인 뱀을 놋으로 만드시어 장대에 달게 하신 후, 그것을 보는 자만 살게 하셨을까 하는 것이었다. 계속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했다.
어느 날 예수님의 공생애를 다룬 영화를 보는 중 전광석화처럼 내 머리를 강타한 빛이 있었다. 그 찰나 그 동안 성경 속 이해 되지 않았던 신구약의 난해 구절들이 동시에 이해되는 기적을 체험했다.
장대에 달린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셨다
예수님께서 놋뱀의 형상이 되신 것은 나와 내 가족, 온 인류의 죄를 대신 덮어쓰셨기 때문이었다. 죄의 근원인 마귀의 상징이 뱀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 주님께선 당시의 온 인류,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 앞으로 거주할 미래 후손들의 죄까지 다 덮어쓰셨기 때문이었다. 그 깨끗하신 주님, 흠과 티가 전혀 없으신 주님께서 흉측한 죄 덩어리로 온몸을 덮어쓰셨기 때문이었다.
불뱀에 물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장대에 달린 뱀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죄가 그곳으로 옮겨졌음을 알고, 자신은 죄가 없어졌다고 주님께서 여기심을 알며, 살아났음을 알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라는 것이다.
나는 그 날 그것을 깨닫고 얼마나 감사하며 통곡했는지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울컥하며 눈가가 젖는다. 먼저 읽고 묵상하고 간구하고, 간구했더니 알게 하셨다. 성경을 진심으로 읽으면 묵상과 간구가 이어짐을 체험한 것이다. 또 간구에 응답하심도 경험한 것이다.
주님을 찾는 자가 주님을 만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주님을 찾는다는 것은 뜨거운 열정으로 갈구하는 것이다. 말씀을 갈구하면, 말씀을 그리워하면, 주님께서 알려 주신다. 만나 주신다. 성경의 꿀보다 더 달콤한 맛을 알게 하신다. 그 어떤 책보다 깊고 높고 넓은 지혜와 지식을 지닌 책이 성경이다.
필자는 과거 꽤 많은 책을 읽고 살아왔었다. 신앙 서적도 상당히 읽었었다. 그러나 성경을 읽기 시작한 후 다른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직 성경만 찾게 됐다. 간혹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가도 금새 시들해졌다. 물론 성경 이외의 책들이 무익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동안의 독서로 인해 쌓인 지식이 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 성경의 맛을 알고 난 후 다른 책에 관심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개인의 경험이므로 모든 사람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므로 오해 없기 바란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아예 성경 이외의 책과 담을 쌓고 산다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내게 지식과 깨달음을 주는 수 많은 책들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구해 읽는다. 그러나 성경이 주 교과서라면 다른 책들은 참고서다.
한가지 더
성도들을 위해 성령님께선 보조교사들도 임명하셨다. 교회의 지도자들과 믿는 가정의 부모, 신앙의 선배들이 그들이다. 필자도 그 보조교사들에게 상담했고 지금도 그들의 글들을 읽고 있다. 성경은 지금도 나에게 목회의 능력을 주고. 목회할 때 기적을 일으키며 나를 변화 시킨다.
내가 그 안의 말씀들을 믿으니까.
내가 교사이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니까.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체험이 매일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