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잊혀지는 게… 이제 그만 울고 싶어”
한 여배우가 이 말을 남기고 아무도 모르게 죽었다. 유명을 달리한 유명한 예배우의 죽음은 세상에서의 성공으로부터 오는 주목이 줄어들거나 사라질 때 생기는 우울증에서 비롯된다. 성공하려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주목증후군이다.
사람은 근원적으로 생리, 안전, 사회, 인정, 자아의 욕구가 있다. 더 나아가 욕심과 욕망은 탐욕과 야망이 되어 돈을 최고의 우상으로 여기고 치열한 경쟁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부를 쟁취하기 위하여 지위를 추구한다. 돈과 지위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부와 힘을 가질 때 권력을 얻는다. 이를 두고 성공했다고 한다.
부와 지위 그리고 권력을 가지면, 사람은 성공했다고 아는 체를 한다. 이러한 관심과 인정은 결국 존중을 받고 있다고 스스로 여긴다. 존중이 존경을 받는 것으로 혼자 착각할 수도 있다. 성공이 가져다 주는 이러한 세상적인 주목에 삶의 의미와 목적을 둔다.
반대로 부가 없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은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성공한 사람은 이런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경험을 통해 가난한 사람은 세상에서 무시를 당한다고 여긴다. 또한, 이를 부끄러워하여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은 높다. 한마디로 자긍심이 약하다.
모두가 성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운다. 돈을 벌고 지위를 얻고 권력을 움켜쥐면 잔인하고 잔혹하게 경쟁 상대를 죽인다. 이기지 않으면 진다고 여긴다. 이겨야 살고 이겨야 사람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권력은 진정한 인간의 명예도 무시한다. 성공하지 못한 것을 수치로 여긴다.
종교인도 세상적인 성공을 향한다. 부와 지위 그리고 권력을 가지고 성공해야 세상에서 관심을 받고 인정을 받고 존중을 받기 때문이다. 세상이 가난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무시를 견디기 힘들어 한다. 늘 사람에게 인정받고 존중 받기를 간절히 원한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자랑하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항상 일과 만남의 중심에 서서 십자가를 가리고 있다. 그러다가 돈을 받고 이름값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으면 기도의 응답이라고 미련 없이 떠난다. 지금 맡겨진 사역지를 버리고 떠나는 사명은 있을 수 없다. 이는 예수님이 말씀한 대로 바리새인과 같이 위선과 돈을 사랑하는 욕망이다.
“처음에 교회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사람들의 교제 모임이었다. 그러나 그 후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하여 철학이 되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에 유럽으로 넘어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고 리처드 헬버슨는 <교회사>에 적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1%의 대형교회는 대기업이 되었다.” 고 지금 회자되기도 한다. 이처럼 이익과 성공을 추구하여 기업의 형태로 치닫는 수단과 방법을 버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시와 수치를 당하는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데 돕고, 눌린 사람을 풀어주는 일을 감당하는 청빈한 사역자들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세상적인 돈과 권력 그리고 성공보다 진정한 복음으로 무시와 수치를 당하는 사람들을 명예로 바꾸어 주신 예수님을 닮은 사역자만이 시간이 지난 뒤에 세상과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으로 눈에 띄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