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오늘 드디어 연극하는 날이네요!”
“하하하! 그렇지. 내딴엔 연습을 한다고는 했는데 실수하면 어쩌지?”
“와아, 대단하세요. 그 유명한 연극 <모리아의 영웅>에서 주인공을 다 맡으시다니.”
“아이고, 말만 주인공이지, 사실은 들러리야. 그러니까 아빠에게 맡긴 거지.”
“우리 아빠, 최고!”
라반의 양 우리엔 연극 동아리가 있었다. 나쁜 주인을 만난 탓에 양들이 서로 모여 주인 흉내를 내며 낄낄거리다보니, 어느새 정식 연극을 연습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한 것이었다.
아빠도 연극동아리 회원이었는데, 오늘은 동아리에서 준비해온 <모리아의 영웅>을 선보이는 날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울타리 안에서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은 양들은 오랜만에 문화생활을 하게 된 탓에 들떠있었다. 시원하게 열린 밤하늘엔 크고 작은 별들이 모여 눈을 깜박거리듯 별빛을 반짝거리며 함께 연극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아벨아! 너 그거 아니? 모리아의 영웅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란다.”
“전설이 아니구요?”
“그럼, 성경에 있는 이야기야.”
아벨이 보기엔 엄마, 아빠는 아는 게 참 많았다. 특히 성경 얘기라면. 나도 어른이 되면 절로 아는 게 많아질까? 아벨은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은 자신이 은근히 걱정되었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애국가를 부르는 시간이 되었다. 성경의 시편 23편이 양들의 애국가였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한 목소리로 낭송하는 시편 23편이 밤공기를 타고 멀리멀리 들녘으로 퍼져나갔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애국가가 끝났다. 드디어 연극이 시작될 차례다. 양들은 일제히 두 앞 발굽을 마주 부딪쳐 두두두 소리를 내며 시작을 재촉하였다.
무대를 가리고 있던 천막이 휙 걷혀졌다. 그러자 양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모리아 산의 꼭대기>라고 씌어진 깃발을 입에 물고 있었다. 연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조명이라고 해봐야 겨우 달빛에 의지해야 하는 초라한 연극이었지만, 양들은 웃고 손뼉치며 동아리를 아낌없이 격려해주었다.
무대 중앙에 평평한 바위가 하나 놓여있었다. 그 바위 위엔‘이삭’이라는 이름표를 이마에 붙인 젊은 양이 밧줄에 몸이 꽁꽁 묶인 채 눕혀져 있었다. 바로 옆엔‘아브라함’이란 이름표의 늙은 양이 서 있었다. 칼을 높이 들고 섰는데, 발굽 틈에 끼운 종이 칼이 공중에서 바들바들 떨리는 모습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어. 아브라함이 아들땜에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훈련시키시는 거란다. 자식은 너무 소중해서 자칫 부모에게 우상이 되기 쉽거든.”
엄만 아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벨은 너무 무서워서 눈을 꼭 감았다가 실눈을 살며시 떴다. 아브라함이 이윽고 결심한 듯 높이 든 칼을 이삭에게 내리꽂으려 하는 바로 그 때, 어디선가 굵은 음성이 들려왔다.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은 깜짝 놀랐다. 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니 언제 나타났는지, 숫양 한 마리가 바로 뒤에 있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숫양을 보는 순간, 관객 양들은 일제히“메~”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바로 오늘 연극의 주인공, 모리아의 영웅이 나타난 것이다.
“아빠다!”
“쉿.”
엄마가 소리를 가로막았다. 아빠, 아니, 영웅은 뿔이 수풀에 걸렸지만 전혀 버둥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러 잡혀주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도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생사를 초월한 그 모습을 보며 나이든 아줌마 양들은 금새 코를 훌쩍거리고 있었다.
영웅은 이삭 대신에 목숨을 바쳤다. 아브라함이 그를 밧줄에 묶어 바위 위에 눕혔다. 마침내 그의 목에 날카로운 칼이 내리 꽂혔다.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 연극은 짧지만 강렬했다. 아벨은 연극이 끝날 때까지 침도 제대로 삼키지 못할 만큼 긴장하며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