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빛이 렌즈에 모이면 불을 일으킨다. 인생도 그와 같다. 정말 그렇다. 평범한 사람이 성경이라는 렌즈를 통과할 때 불이 일어난다. 말씀이 동력이고, 길이고, 생명이다. 말씀으로 살아갈수록 그 확신은 더 깊어진다. 평범한 사람일수록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 일상의 지루함을 뛰어넘는 전류가 흐른다.
출발은 확실히
신학교를 지원하기 전에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했다. ‘과연 내가 이 길을 가는 것이 맞는 것인가? 아버지의 뜻인가?’ 몇날 며칠을 기도하다가 어느 날 해질녘에 극적으로 성경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전류가 흐르는 듯 했다.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사도행전13: 47, 개역) 이 말씀에 사로잡혔다. 그 때가 20살이었다. 그런데 이 말씀 한 마디가 내 평생의 방향을 좌우했다. 흔들릴 때마다 방향타가 되어 주었다. 말씀은 위대하다. 엄청나다. 그래서 두렵다. 돌아서 보면 소름 돋는다. 꼼짝할 수가 없다. 도망갈 수가 없다.
세 번 기도, 세 번 똑같은 응답
출발은 확실했다. 하지만 인생은 흔들리는 갈대다. 신학교 3학년 때 큰 위기가 왔다. 도망가려고 했다. 심각한 혼란에 빠져서 기도 드렸더니, 다시‘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는 똑같은 응답이 왔다.
세 번째 위기가 왔다. 한국에서 계속 목회할 것이냐, 뉴질랜드의 청빙을 받아드릴 것이냐? 똑같은 응답이 왔다. 인생의 큰 갈림길에서 세 번 기도했고, 세 번 똑같은 응답을 받았다.
그 후로는 진로의 문제에 대한 기도는 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무리 기도해도‘이방의 빛으로 살라.’는 똑같은 응답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번 똑같은 응답을 받은 기도는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다.
닻을 내리다
40살에 이민목회를 시작했다. 10년이 지나도록 내가 이민목사로 평생 살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10년째 되었을 때 바닥을 쳤다.‘이민 목회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영어권에서 대학공부는 해야 이민자를 아우르고 지역교회와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민 목회자로 사는 일에 대한 괴로움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듯 느껴졌다.
2010년에 지진이 났다. 첫 번째 지진 후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지만, 2011년 두 번째 큰 지진이 일어나자 크게 흔들렸다. 184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이 지역을 떠나갔다. 두려움 때문에 혹은 생계가 막막해서…
체감으로 느껴지는 인구이동은 한국교민 5000여 명 중에 반 이상 이동한 것 같다. 교민 전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때의 어느 날, 하나님께서 타이타닉 호 선장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게 하셨다. 마음의 눈으로 보여주셨다.
침몰하는 배와 함께 자리를 지키던 선장의 의연한 모습이 떠오르면서, ‘나도 그와 같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나라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의 닻을 내렸다.
그 순간부터 진짜 이민 목사가 되기 시작했다. 이민자들과 지역의 소중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이곳이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세속화를 견뎌내고 1.5세대 bridge leader들이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1.5세 지도자는 어디에
10년 전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에, 이민목회를 이끌어갈 1.5세대 지도자를 찾기 위해서 한 달간 미국과 호주를 방문했다.
충격이었다. 다 준비되어 사람이 넘칠 줄 알았다. 한 사람 모셔 와서 도움을 받으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미국 자체 내에서도 해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었다.
호주에서는 1.5세대 출신 지도자들이 겨우 실험 목회를 시작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돌아가는 지름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없으면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1.5세 목회자를 찾던 중에 LA 1.5세대 출신이며 몽골 국제대학에서 교수로 있던 에릭 오 목사를 청빙하게 되었다. 몇 년 후에는 멜번 1.5세대 출신이며 시드니에서 사역하고 있던 스티브 배 목사가 합류해 주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1.5세대 청년 청소년들이 그들의 언어와 문화로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영적인 눈을 떠가고 있다. 이들이 일 세대들을 이해하고 다음세대를 연결해 주는 Bridge Leader로 잘 성장해 주고 있다. 세대 간의 막힌 담을 허물어 내고 있다.
Bridge Leader 양육에 사활을 걸 때
다시 10년이 지난 2018년 올 해, study leave로 유럽 이민교회를 둘러보았다. 파리,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한국과 시드니를 돌아보았다. 참담했다. 10년 전의 상황 보다 나아지기는커녕 더 퇴보한 느낌이다.
시드니의 경우 일 세 교회에서 1.5세대 사역자들이 거의 빠져 나와 있는 상태였다. 유럽에서는 일 세 교회 내에서 1.5세 출신 사역자를 만나 보지 못했다. 몇몇 1.5세 출신 목회자들이 배출되었다는데 그들은 한국 교회가 아니라 현지 백인교회의 사역자로 사역하고 있었다.
일 세 교회를 떠난 1.5세, 2세 사역자들이 독립해서 부흥하며 잘 크고 있다는 소식이 잘 들리지 않고 있다. 소수의 1.5세 교회들이 뿌리내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정도이다. 잘 크고 있는 한국1.5세 교회들이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일 세 교회 안팎으로 수많은 자녀들이 영적인 혼란과 정체성의 혼란, 윤리, 도덕적인 삶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내가 잘못 보고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내가 본 현실은 눈물 겹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건 아닌데, 우리 모두가 희망 속에서 신바람 나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 왜 이렇게 꼬이고 있는지,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지?’ 눈물로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께 하소연 했다.
“하나님 어떻게 해요?”
어느 날 세미한 음성이 내 마음 속에서 들려왔다.
‘깨달은 자가 하는 거다. 네가 해라.’
이방의 빛, 이 말씀이 내 삶의 중심을 잡아 주었다.
그 말씀이 나를 살게 했고, 또한 지금도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