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미래교회와 우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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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들어서며 어제의 교회를 생각해본다. 세계는 전쟁과 기근을 이기고자 하는 인간의 열정과 산업의 발전으로 상상치 못할 만큼의 아픔을 뛰어넘어 대대적인 발전을 이뤄왔다. 이와 함께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선하심과 거룩하심을 전하며 오늘까지 제도와 성경적인 체계를 이뤄왔다.

20세기 말미에 들어서면서 세계의 교회들은 제도와 선교의 갈래에서 선교를 택하여 성장해왔다. 대형화를 이루는 제도들은 성공적인 시간들을 거쳐 그 영향력을 서구에서 아시아로, 또 중동과 섬나라들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선교는 약 2000년 전,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룬 복음전파로부터 오늘까지 계속되는 흐름이며 지난 20세기 동안의 모든 교회가 가지고 나아온 가장 비중이 큰 핵심가치이다(마태복음28: 16-20, 사도행전 1:6-8). 이는 곧 공 교회의 성례적인 전통 예배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최고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미래교회의 위기
미래의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의 입구에서부터 최첨단 기기들이 즐비하게 교인들을 환영하고, 안내데스크에 자신의 카드를 입력해서 출석을 인식시키는 수만 명의 성도들이 모이는 대형교회가 떠오르고, 이러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최선을 다해 먹이고 입히는 일들로 지역사회를 섬기고 있는 모습이라면, 미래교회는 선교적인 가치를 대중의 현대문화 및 첨단과학과 함께 균형 잡힌 교회의 미래지향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목사의 말처럼 문화는 쉴 틈 없이 바뀌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복음을 가지고 문화를 인용하거나 문화의 세속화 이슈를 변혁하려는 입장이라고 할 때(리차드 니버, 그리스도와 문화, IVP) 미래교회는 어떤 모습을 해야 옳은 것일까?

산업의 첨단화와 초고속 성장에 교회의 성장과 변화는 세속화와 문화 반영의 사이에서 미래교회는 갈 길을 잡지 못하고 있다.

새해 첫 글을 열면서 나누는 이러한 고민들은 사실 오늘 현재교회의 모습이 위의 미래교회의 모습과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교회들은 교회 안 ATM기기들을 통해 헌금을 편리하게 드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포스트모던 문화들을 평가의 수순 없이 무작위 수용하여 공 예배의 본질적인 의미는 물론 근거불충분한 신학적인 잣대로 새로운 개념의 교회론을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머징 처치와 아쿠아 처치, 아르케 처치 등이 꾸준히 존재하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회자되고 있는 이유이다.

이러한 교회들이 전통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면 교회는 산 속으로 들어가 수도원과 같은 모습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차세대를 생각하고 그들이 이 땅에 건강한 교회를 이루고 영향력 있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란다면 다음세대의 교회와 우리의 젊은이들을 인도하여주실 하나님께 진실함과 감사함으로 아뢰야 할 것이다.

이뿐인가 무신론자들과 다른 종교 종파들, 심지어는 교회를 가장한 이단들과 그러한 사상들이 난무한 시대에 우리는 어떤 말을 믿고 따르며 다음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매우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정론을 따르고 믿고 있다는 순수한 종파와 교단들도 온갖 말씀이 아닌 교리를 믿고 이것에 요동하여 분열하고 갈라선다. 정론이 정론이 아닌 것이다. 이것에 상처를 입는 이들은 본질상의 신실한 신앙인들과 이제 새롭게 신앙을 시작하는 새 신자들 및 자라나는 청년들,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다. 오늘 교회는 큰 혼란을 넘어 위기에 서있다.

이런 모든 ‘세속화’혹은 이 단어의 알 수 없는 깊은 뜻을 우리는 어떻게 헤아려야 할까? 물론 답변은 간단하게 말씀만을 깊이 연구하고 ‘세속화’와 같은 비신앙적인 내용들을 깊이 다루는 것보다 ‘사랑’ ‘믿음’ ‘복음’과 같은 성경의 본질을 가르치면 될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과 비본질의 신앙과 세속은 우리 다음 세대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들은 끝없이 질문한다. 어디까지가 문화적 적용이며 어디서부터 문화변혁인가? 이는 미래교회를 바라보고 있는 오늘 현재교회가 가진 매우 심각한 담론이다. 동시에 다음 세대들이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 갈급해 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교회의 문화가 변화되어 현대문화의 세속화를 나타내는 것은 매우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면 이를 통제하고 이끌어가는 목회철학과 비전은 뼈대를 이루고 나가야 할 방향을 제공해 줄 것이다. 심지어는 멀리 장거리를 지치고 힘들더라도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또한 얼마나 성경적인지, 정론과 얼마나 합하여 있는 지이며 이에 대해 얼마나 고민해 보았는지를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
교회의 정론은 초대교회이며 예수님의 나눔 공동체이다. 초대교회의 시작은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며 그렇기 때문에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그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돌아가야 한다는 말도 너무 많이 하고 있으며 너도나도 쓰고 있으니 그 의미가 희미해지거나 왜곡되기 쉽다.

앞서 말한 새로운 형태의 교회들을 주장하는 이들의 이야기에서도 쉽게 이러한 ‘초대교회로 돌아가라’는 구절들을 보게 된다. 이렇듯 20세기에서 21세기를 지내온 오늘의 교회는‘개혁’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초대교회로 회귀하고 있다.

미래교회, 회귀하는 차세대 교회
20세기의 화두였던 ‘선교’(로잔세계복음화국제대회)는 21세기에 와서 글로벌 선교와 다민족 교회에 모든 관심을 가지고 모든 민족과 나라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선교의 궁극적인 예언성취에 다다를 수 있을까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교회는 이러한 최첨단과 산업의 성장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을 성경적인 시각으로 이해하고 진실한 생명의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께 두어 한 영혼을 살리는 것에 모든 힘과 지식과 능력을 다 해야 할 것이다. 한 소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는 우리 주님의 말씀, 이 말씀을 미래교회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진정으로 우리는 온 마음과 몸과 뜻과 정성을 다한 사랑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세대 신앙인들은 성경으로, 말씀으로,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공동체로 회귀하여 나라와 민족과 방언가운데 높임을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며 이를 갈급해 하는 이들이다.
오! 이 복음의 향기가 2016년 크리스천라이프의 이야기들 곳곳에서 그리고 이 지면을 통하여 다음 세대들과 그리스도의 교회들 안에 가득 넘쳐나기를 온 맘으로 바라며 우리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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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운
레이드로칼리지와 감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세인트폴 교회에서 지원사역하며, 연재하는 상반기 동안에는 세계의 다음세대 리더 만나 선교와 교회에 대한 주제를 나누고, 하반기에는 한인 차세대 리더 만나 한인사회와 다민족 사역 동기와 환경 그리고 어려움과 열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독자들과 진솔하게 나누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