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시골 작은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던 때, 내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학교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 책을 읽어보라고 해도 괜히 떨려서 주저할 만큼 숫기 없고 내성적이던 내가 주일 날 아침, 교회에서 부르는 종소리를 듣고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간 건 지금 내가 생각해봐도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성경 속의 모세가, 다윗이, 엘리야 선지자가 불병거를 탄 것이 너무 재미있고 놀라웠던 나는 평소 동화책 한 권도 안 읽으면서 성경은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매주마다 들려주시는 성경이야기는 선생님의 손에 들린 까만 표지에 빨간 테두리를 가진 책에서 나왔다. 선생님의 성경책은 두꺼웠고 글씨도 작았으며 한자도 많았다. 무엇보다 세로로 읽어야 하는, 한 마디로 어른의 책이었다.
서울로 이사를 와 다니기 시작한 동네 교회에서는 주일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성경책을 선물로 주었다. 나에게도 공식적으로 성경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일학교를 마치면서 나도 성경을 선물로 받았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읽고 싶었던 상상 속의 성경책과는 많이 다른 가로로 된 글씨와 성경 찬송 합본인 지퍼가 달린 세련된 책이었다. 학교와 학업, 십대의 질풍노도기를 겪으면서 나는 가장 힘든 시기를 교회를 다니고 믿음을 키우며 이겨냈다.
이후, 내게 두 번째 성경이 주어졌다. 성경책을 갖고 싶어 기도했던 내게 천주교에 다니는 동네 분이 어디서 주웠는데 내가 생각나 준다며 건네주셨다. 그때 그 분은 천주교에서 보는 공동번역이 아닌 성경이라 나를 주신 듯 했지만 나는 하나님이 내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 여겨 너무 기뻤고 감격스러웠다.
말씀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거나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많았는데 그때마다 환경으로나 성격적으로나 일일이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였던 나는 이 책이 너무도 반가웠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그 책은‘아가페 주제별 성경전서’이다. 1983년 9월에 인쇄해서 10월에 아가페출판사에서 발행된 지금의 주석성경과 같은 성경이다.
정말 꿀처럼 말씀이 달고 좋았을 때였던 것 같다, 목사로 사는 지금보다 더 사모하고 행복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말씀을 지식으로, 다른 이보다 많이 안다는 사실을 더 만족스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말씀과 세상의 괴리 속에서 깨지고 구르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 분이 작은 나를 통해 세상에 보여진다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기까지, 내가 말씀에 절실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흘렀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듣는 말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 선택 받은 민족에게 시내산에서 들려졌다. 그리고 선택 받은 민족의 삶의 원리가 되어 역사 속에서 살아 운동했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거주하기 시작한 약속의 땅에서 정복시대와 사사시대를 지나 왕정시대를 넘어 포로시대와 포로귀환시대를 사는 동안 그들의 삶 구석구석에 헐몬산의 이슬처럼 스며들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는 모세의 글과 선지자의 글의 성취이다. 십자가 위에서 그 모든 원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영원 전에 택함을 받은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셨다.
이어 성령하나님의 역사로 주의 백성들을 통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었고 그때마다 세워진 교회들은 그 원리를 삶에 적용하기 위해, 생명을 다해 깊은 어둠과 치열하게 싸워 이기기 위해 몸부림쳤다. 사도 요한은 이런 주의 백성들에게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위로와 격려와 소망을 주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음성은 들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경을 마주하고 읽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시내 산 아래, 그리고 산상수훈이 선포된 산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의 음성을 놀람과 두려움과 떨림으로(출애굽기20: 18-21; 마태복음7: 28-29)들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래야 한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나를 주장하고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되며 자신을 거룩한 자의 자리에 두려는 의도를 보여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심판자가 되어 남의 눈에 있는 들보만을 보고 그것을 흠집 내고, 신앙을 저울질하며 정죄하는 공격무기로 삼아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필요한 말씀만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부적 정도로 취급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자신이 행하는 모든 불의와 불법, 불공정을 말씀으로 정당화 시키는 일도 마찬가지다.
거룩한 결단, 영광스러운 서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들은대로 오늘 나의 삶의 자리에서 순종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내겠다는 강한 마음과 의지를 자발적이며 자원함으로 뜻을 세우는 행위이다.
그 말씀으로 나의 전 삶의 영역을 싫든 좋든,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길가와 같고, 가시밭과 같고, 바위 위와 같은 굳은 마음과 사막화된 삶을 옥토로 만들어 가겠다는 거룩한 결단이며 영광스러운 서원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삶의 모든 영역에 울타리를 치는 것과 같다. 울타리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모든 유혹이 말씀의 울타리를 넘어오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내 안에 깊이 잠들어 알지 못하는 나의 죄성이 울타리 너머에서 불어오는 유혹과 상황과 환경에 반응하지 못하도록, 깨어나 조우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살아내는 것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고 행함과 진실함으로(요한일서 3:18)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신명기 6:4-5; 요한복음 15:9-14; 요한일서 3:34-24)하는 것이다.
주께서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지상 명령은 “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28: 20)”이다. 목사로서 성도들에게,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잘 전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행하며 가르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