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 아벨에게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아빤 이 세상에 이미 없을 것 같구나. 잠깐 머물다 떠나는 것만 같은데… 그래도 회한이 많이 남는 삶을 정리하면서 마지막까지 내 맘에 네가 있어줘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
아벨!
네가 이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내던 때가 기억난다. 아! 생명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그것은 이전에 없던 기쁨이 새롭게 솟아나는 것이더구나. 엄마와 아빠는 너를 보며 꿈을 꾸었단다. 온통 까만 세상에 희망의 하얀색이 덧입혀지는 꿈을. 너는 그때부터 엄마, 아빠가 살아가는 새로운 이유가 되었어.
후훗, 아벨아!
엄마 뱃속에 있었던 5개월 동안 너는 무지 심심했었나 보았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너는 술래잡기 놀이부터 시작했었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를 외치며 눈을 꼭 감고 있는 술래처럼 넌 잠시 후면 신나게 뛰어다니게 될 세상을 꼭 감은 눈으로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지.
“사랑해, 내 새끼!”
부드러운 혓바닥으로 너에게 끝없이 사랑의 입맞춤을 하던 엄마. 그 입맞춤은 네가 엄마를 느끼게 되는 첫 언어였을 거야. 아벨아, 너는 의지가 매우 강한 아이였단다. 태어나자마자 너의 여린 두 다리로 일어서 보려고 무진 애를 쓰더구나. 갓 태어난 애기가 왜 그토록 일어나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적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돼요?”
“목자에게로 도망쳐라. 양에겐 목자가 곧 살 길이란다.”
언젠가 네가 던진 질문에 아빠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그것밖에 없었지. 이빨이든 발톱이든 우리 양에겐 자신을 위한 방어수단이 없잖아. 그러니 적이 앞에 나타났을 때, 우린 그저 목자를 찾고 그에게 의지하는 도리 밖엔 없는 노릇이지.
아벨!
너의 이름이 갖고 있는 의미를 늘 기억해라. 원래 네 이름의 주인이었던 옛사람 아벨은 양을 친 인류의 첫 목자였단다. 아벨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둘째 아들이었어. 하나님은 아벨이 바치는 믿음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지만, 형 가인의 예배는 거절하셨지. 그 후 가인은 아벨을 무척 질투해 급기야 그를 죽이고 말았다. 그래서 너의 이름인 아벨은 순교자의 이름이란다.
아벨! 에덴동산 역시 네가 기억해야 하는 곳의 이름이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원래 에덴이란 낙원에 살았었대. 아, 상상할 수 있겠니? 그 낙원엔 우리의 조상 양들도 계셨단다. 그분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양이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었던 곳. 동물이 사람과 더불어 웃으며 살 수 있었던 삶터.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만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단다. 그리고 그 때, 우리 양들의 운명도 하루아침에 바뀌게 되었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이 땅의 다른 모든 생명도 하나님의 품을 떠나게 되었단다.
이런 얘기가 전해오고 있어. 어느 날 양, 염소, 비둘기, 소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 여쭤보았다는구나.
“하나님, 저희를 다스리는 인간이 착해질 순 없나요?”
하나님이 물어보셨어.
“그걸 위해 너희들이 인간을 위한 속죄 제물로 피흘려야 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겠니?”
“음……언제까지요?”
그들의 물음에, 하나님은 마침표를 찍듯 분명히 대답하셨대.
“내 아들 그리스도가 어린 양이 되어 제물로 피흘리는 그 날까지!”
아벨!
제물이 된다는 것은 사실은 불꽃처럼 사는 것을 의미해. 그처럼 짧은 시간만 살게된다 해도 우리의 생명은 너무나 귀한 거란다. 생명의 가치는 길이가 아니라, 그 의미로 결정되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 의미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에.
사랑하는 내 아들, 아벨!
이제 날이 밝으면 아빠는 제물로 바쳐진다. 나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지만, 그 마지막이 누군가 속죄된 사람의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이별이 슬프긴 하지만, 내 마음 속에 네가 있어 참 행복하구나. 엄마를 부탁한다. 좋은 암양을 만나 알콩달콩 잘 살아가거라. 그리고 너처럼 멋진 아들을 낳아 꼭 엄마 품에 안겨드리길 바란다. 안녕, 아벨!
양이 제물이 되지 않아도 되는 그 날을 꿈꾸며,
어린 양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