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캄보디아 선교지의 거리 모습>
‘그래, 6개월이든 1년이든 떠나자.’
일을 오래 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같은 일을 몇 년 하다보면 누구나 어느 정도 지치기 마련인 것 같다. 그런 때쯤이 나에게도 찾아 왔고, 쉬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일하면서는 하기 힘든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이런 용기가, 이런 기회가, 이런 시간을 내는 게 쉬운 건 아니었기에 여러 생각과 고민 끝에 나는 정들었던 일터를 그만두고 뉴질랜드를 잠시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응원해 주고, 어떤 이들은 부러워도 하고, 어떤 이들은 내가 배불렀다고 생각하기도 한 것 같다.‘약사가 돈도 잘 벌면서 뭐가 아쉬워서 모험을 하려 하지? 배불렀네’ 라는 식으로.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닌 만큼 그런 것들이 느껴질 땐 마음이 힘들었지만 응원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구체적인 디테일이 거의 없이 몇 가지 큰 그림을 가지고 떠났다.
남들이 볼 땐 무모해 보이고 생각 없어 보이기도 했을 수 있겠지만, 오히려 작은 것까지 다 계획해서 떠나는 것은 애초의 이 gap year의 목적이 아니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큰 그림만 그리고 시작한 내 gap year의 첫 목적지는 캄보디아였다. 오클랜드 사랑의 교회 미션 팀과 함께 조인해서 시작해 일정이 다 끝나고 팀은 돌아가고 나는 홀로 남았다.
나에겐 세 번째 캄보디아 행이어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대단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캄보디아에서 지내는 건 사실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 선교사님과 선교사님이 데리고 있는 현지 친구들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또 내 선배들이 많이 짧고 길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홀로 남겨진 순간! 생각지 못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미션 팀이 떠나는 버스를 보며 나도 그냥 저기에 탈까?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잘못 선택한 건 아닐까? 그냥 한국 가버릴까?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다들 걱정할까 봐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눈물을 꾹꾹 누르며 밝게 인사하고 앞으로 적어도 한 달은 내 집이 될 곳으로 들어가자 결국 참았던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같이 지낼 현지친구들이 우는 거 보면 걱정할까 봐, 또 내가 부끄러우니까 나왔던 눈물을 쓱쓱 닦고 씩씩한 척 들어갔다. 그렇게 캄보디아에서 혼자의 시간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다녀와서 사람들은 많이 물어봤다. 캄보디아에서 뭐했냐고? 캄보디아에서의 내 삶은 어떤 결과를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냥 그곳에서의 삶을 살았다. 뉴질랜드에선 매일 해야 할 일들이 정해져 있었고 오늘 뭐하지 생각할 겨를이 없이 굴러갔다. 일 끝나고 집에 가서 이것저것 해야지 하고 막상 집에 가면 딴짓 하다가 잘 때쯤 되어 하려 했던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피곤한 채로 잠들고 주말엔 꼭 쉬어야지 하고 주말이 오면 쉬는 시간이 아까워서 또 무언가를 하거나 누구를 만나거나 하며 피곤함을 풀지 못한 채로 한 주를 다시 시작하곤 했다.
요즘 현대인들이 그렇듯 나도 진짜 쉬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그런 나에게 스케줄이 정해지지 않은 캄보디아에서의 첫날은 설레면서도 의외의 막막함이 있었다. 선교사님은 내가 이곳에서 살면서 친구들과 교제하고 서로에게 신앙을 나누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선교사님이 내게 부탁한 정기적인 일은 한국을 곧 가게 되는 친구들에게 한국어 공부를 가르쳐 주는 것이 다였다.
내 하루의 시작은 선교사님이 데리고 있던 현지 친구들(이레 친구들, 이레 카페를 하셨기 때문에)과 함께 QT 로 이른 아침을 열었다. 캄보디아는 더운 날씨 탓에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아주 더운 시간엔 활동을 줄였다가 6시쯤이면 문을 슬슬 닫았다(레스토랑이나 카페 빼고). 내가 갔던 시기가 12월 초였는데 그때가 날씨가 제일 좋은 때(캄보디아의 겨울이라 해도 많이 덥지만)였기에 결혼식 시즌이었다.
캄보디아는 결혼식을 아침 일찍부터 하고 아주 화려하게 한다. 그래서 음악을 새벽 4시부터 아주 시끄럽게 틀어놔서 깨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새벽 형 인간은 아니었지만 손님이라고 게으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친구들도 매번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QT 를 한번도 빠지지 않고 했다. 비록 끝나고 바로 다시 자긴 했지만 어떻게 했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함께 있던 친구들이 워낙 부지런해서 나도 너무 늑장을 부릴 순 없었다. 아침을 먹고 카페 운영준비를 위해 장보러 가는 친구들을 따라 시장을 가기도 하고, 홀로 동네 구경을 하기도 하고, 이곳 저곳 들어가 구경도 했다. 함께 있던 친구 중 ‘씨는’ 이라는 친구가 손재주가 좋아서 그 친구에게 재봉틀 쓰는걸 배워 간단한 것들을 만들기도 했다. 나는 한국어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소소하고 여유로운 일상들이 처음엔 좋았지만 뭔가 한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이런 내 생활이 의미가 있을까 싶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상들이 헛되지 않을 수 있음은 그 매 순간들을 하나님과 동행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부분이 또 하나님이 내가 깨닫기 원하시는 부분인 것 같았다. 그렇게 대단한 일들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려 노력하며 캄보디아의 생활을 기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