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특별한 자기소개

이번에도 역시 내겐 방학이 찾아왔고 나는 포르투갈 리스본과 포르토를 여행했다. 평소엔 한인민박을 선택해서 한국사람들과 주로 만났던 반면, 이번 포르투갈엔 한인민박이 없어 그냥 호스텔에서 묵게 되었다.

포르투갈에선 꼭 호스텔에 묵어야 한다고 사람들이 얘기해주기도 했었다. 호스텔에서 묵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은 더블린에 산다는 크로아티아 친구들, 여행 컨설턴트로 일을 해서 업무로 호텔에서 자지만 개인적으로 여행할 때는 꼭 호스텔에서 잔다는 친구,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는 친구,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던 브라질 아줌마, 그리고 그냥 정처없이 여행 중이라던 브라질 친구.

내게 여행이란 늘 그저 노는 시간이 아닌 쉼이자, 감사, 그리고 내가 나를 돌아보며 생각하는 시간이었듯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번 여행이 좀 더 재미있었던 이유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끝없이 반복된 나의 특별한 자기소개라고 할 수 있겠다.

Where are you from?
호스텔에서 지내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나는 자기소개를 여러 번 해야 했다. 나는 간단하게 인사하고 이름만 알려주면 사람들은 나를 궁금해했다. 약간의 갸우뚱한 표정으로. Where are you from?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다.

특히나 호스텔 직원들은 더 신기해했다. 나는 이상하게 여행책은 한국말이 더 잘 읽힌다. 굳이 영어밖에 없다면 영어를 당연히 선택하겠지만 한국어라는 옵션이 있다면 나는 한국어를 택한다.

이번에 리스본에서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려고 갔는데, 바로 눈 앞에 하나 덩그러니 놓여진 ‘무료 리스본 서바이벌 가이드’를 보았다. 한국 사람들을 위한 작은 책자였는데 체크인을 마치고 방을 보여주려는 직원에게 내가 살포시 물었다. “이거 내가 가져가도 돼?” 그러자 직원은 “Sure!” 라고 쿨하게 대답하며 내게 그 소책자를 내밀었다.

그러더니 “너 한국사람이니? 근데 뉴질랜드 여권도 갖고 있구나.” 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나는 “나는 원래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뉴질랜드에서 자랐어. 그리고 지금은 런던에서 살아.” 라고 덧붙여 주었다. 직원은 신기하다며 리스본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리스본에서 넘어간 포르토에서 숙소를 체크인할 때도 그랬다. 이 숙소는 워낙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여권을 보고 한국인끼리 묶어주기도 한다는 호스텔이었다. 나야 뭐 생긴 건 영락없는 동양인이지만 뉴질랜드 여권을 소지하고 있으니 외국친구들과 방을 사용하게 됐다. 어차피 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내게 불편할 것은 없었다.

체크인을 하고 나름 이른 시간에 도착한 나는 방에다 짐을 풀고 포르토를 둘러보려 직원에게 지도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책꽂이에서 한국어로 된 포르투갈 여행 책을 찾았다.

직원이 돌아왔을 때 나는 지도를 받고 책꽂이에서 찾은 포르투갈 여행책을 들고 “나 이거 빌려가도 돼?”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직원도 시원하게 “Sure” 라고 대답하더니 갑자기 내게 “너 근데 여권은 뉴질랜드 여권이었는데 한국말 읽을 줄 아는구나.” 라며 나름 신기한 듯 물었다. 나는 또 장황하게 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뉴질랜드에서 자란 지금은 영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야…. 헥헥. 직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굉장히 흥미로워 했다.

그 이후로 계속 쭈욱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내내 나는 Where are you from? 이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여러차례 받았다. 사진을 찍어주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아이스크림 하나를 주문하다가도, 질문을 하루에도 수도 없이 받는데 대답이 하염없이 길어서 한번은 줄여보려고 그냥 영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아, 너 그럼 원래 어디서 왔어?” 라고 되물었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 왔다고 했더니 “아, 거기서 태어났어?” 라고 묻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난 또 시간을 제일 뒤로 돌려 대답해야 했다.“아니 난 한국에서 태어났어.”그 이후로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영국에서 일을 하는 뉴질랜드 사람으로 돌아왔다.

한국인? 뉴질랜드 사람? 런더너?
처음엔 하도 묻는 사람이 많아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대답이 너무 길어져서 사람들이 되려 듣기 거북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되려 나를 더 좋아해주었다. 때로는 나는 한국사람이 될 수 있었고, 뉴질랜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며 런더너가 될 수 있었다.

혼자 사진을 찍느라 전전긍긍 하고 있을 때, 한국 친구가 와서 “사진 한 장 찍어드릴까요?” 라고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그 친구도 사진을 한 장 찍어주었다. 사진 한 장을 계기로 우린 서로 친구가 되었고, 저녁도 같이 먹고 다음 날 근교 여행을 함께 떠나기도 했었다.

친구와 잠시 떨어져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있을 때 한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는데 아저씨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 사람이지만 뉴질랜드에서 왔다고 했더니 본인도 뉴질랜드를 두 달간 북섬, 남섬 통으로 여행했다며 내게 이런 저런 도시 이름들을 자신있게 대는 것이 아닌가.

양이 많고, 소가 많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뉴질랜드 얘기를 나누며, 뉴질랜드에서 10년을 산 나에게 아저씨는 이런저런 액티비티들을 추천해주었다. 뉴질랜드는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라고 얘기하며. 마지막으로 리스본에서 포르토로 이동할 때엔 영국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리스본의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기차가 무려 40분이나 빨리 온 것이다. 혹여나 잘못 올라탔다가 다른 곳으로 갈까 봐 마침 지나가는 역무원들을 붙잡고 물었다. 역무원들에게 맞다고 확인을 받은 후 기차에 올라타려는데 둘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보며 무어라 무어라 속닥속닥 옆 사람에게 얘기를 하는 것 아닌가.

영어하는 동양인이 신기한가 싶어 기분이 살짝 상하려는 찰나, 옆에 있던 다른 역무원이 내게 영국 억양을 가지고 있는데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런던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도 런던에 살다가 포르투갈로 왔다며 이런 저런 설명을 하더니 내게 포르토까지 가는 방법을 참 구체적으로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사람이자, 뉴질랜드 사람이자, 런던 사람으로서 인연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당황스럽기만 했던 대답이 점점 즐거워진 것이다.

이 모든 특별함을 감사하게!
아마 세상엔 나보다 더 특별한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보다 더 많은 곳에서 살아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이 특별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내 자신과 내 자신이 하는 모든 일들을 늘 소중하고 특별하게 생각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세상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서 다른 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또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특별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이렇게 영국에 올 수 있는 기회조차 이런 모든 특별한 일을 통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모든 것에 누구보다도 감사하게 됐다. 내가 내 자신을 단순히 어떠한 한 사람이라고만 소개하지 않고, 되려 긴 자기소개를 할 수 있다는 것.“나는 이러한 사람입니다”라고 나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내가 우스개 소리로 종종 하는 얘기가 있다.

나는 내 인생의 20년이 조금 넘어가는 시간 동안 벌써 세 개의 대륙에 살아봤다고. 처음엔 단순한 우스개 소리였는데 사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정말 모든 대륙에 한 번씩 살아보는 상상을 하곤 한다. 아시아, 오세아니아, 유럽을 거쳐 다음은 어디가 될까? 나의 특별한 자기소개는 아마 이제 시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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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민
12살 때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 오클랜드대학교 유아교육과 졸업, 킹스크로스교회 출석, 런던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다. 20대에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적응해가면서 보고 느낀 많은 것들을 나누고, 영국이란 나라, 런던이란 도시는 어떤 곳인지 조금이나마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