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사역을 하게 된 계기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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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때에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 분을 나의 삶의 구주로 영접하였다. 예수님을 만나고 기쁘지 않고 변화되지 않을 존재가 어디 있으랴.

구원의 기쁨으로 날마다 새로운 삶을 경험했고 나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더욱 알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읽었다.

어느날, 골로새서 1장 24절을 읽는데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로새서 1:24)”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남겼다.” 라고 표현하였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라고 하셨는데, 구원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무슨 고난을 받으실 것이 또 남아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목사님을 찾아가고 주변에 문의도 해 보았으나 명쾌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다.

“인권아, 고난이 남겨졌다는 의미는 나의 복음이 선포되어도 이를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란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이라는 성경구절을 통해 나를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정신지체장애인 등 장애인을 위한 사역자로 부르셨다. 나는 그 부르심에 다음과 같이 응답하였다.
“주님,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그리고 장애인들을 섬기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러고는 남보다 6년이나 늦은 나이에 대학에 진학하게 하시고, 2학년 때부터는 인천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매 주일마다 장애인들을 섬기며 예배를 함께 드리는 봉사활동의 기회를 허락하셨다.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아동들이 모여 사는 그곳에서 매 주일 오전 예배를 함께 드리고 저녁예배를 인도하면서 장애인 사역을 시작하였다.

졸업후에는 한국에서 10년간 전임으로 장애인 사역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구호개발전문기관의 파송을 받고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 외곽에 있는 빈민촌의 주민들과 부랑아동들을 위한 교육의료 사역을 여러해 동안 하였다. 지난날 가졌던 경험들이 지금하고 있는 장애인 사역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아내 남정석 선교사와는 같은 교회(인천산성침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고 중고등부 교사로 함께 주님을 섬겼다. 결혼 전, 내가 장애인사역에 종사하고 있을때 남선교사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목양신앙훈련원의 총무간사로 일했다.

당시에 장애인사역을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울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어느날 성령님의 용기주심과 격려(?)를 통해 남선교사에게 청혼을 하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남선교사는 어렸을 적에 소설가 심훈이 쓴 ‘상록수’를 읽고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려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또한 한국대학생선교회(CCC) 활동을 하면서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었다.

내가 청혼을 했다.
“나는 장애인사역을 위해 부름을 받았어요. 평생 그 일을 하려면 도울 사람이 필요한데 내 아내가 되어 나를 도와주세요.”
그러자 남선교사가 되물었다.
“나는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어요. 결혼을 하면 선교사로 나갈 수 있겠어요?”

서로 우스꽝스러운 청혼과 승낙을 하며 우리는 결혼했고, 한국과 케냐를 거쳐 통가에서 장애인 사역을 하는 부부 선교사로 주님을 섬기고 있다.

감사한 것은,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다짐도 없이 결혼을 했지만,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통가에서 행복하게 사역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