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매주 예능 버라이어티를 보거나 드라마를 꼬박 챙겨 본다. 어떤 사람들은 비싼 가격도 아랑곳 않고 스포츠 게임, 슈퍼스타 콘서트 등에 열광하며 찾아간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 재미 즉 기쁨을 얻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엔 50여 가지의 신경전달 물질이 있는데 그 중 기쁨과 관련된 세 가지 중요 물질이 있다고 한다. 노루아드레날린, 도파민, 세로토닌이 그것들이다.
노루아드레날린의 문제는 충동-폭력을 유발하고, 도파민은 강한 의존성-중독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물질을 안정시키고 통제하는 것이 바로 세로토닌(Serotonin)이다.
세로토닌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여러 신경전달 물질들을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세로토닌은 사람의 의식수준이나 건강상태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세상은 각종 매체를 통해 세로토닌이 아니라, 노루아드레날린, 도파민에 자극을 받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도록 세뇌 시킨다. 이것 아니면 더 좋은 기쁨이 없는 듯, 이것 아니면 기쁨이 아닌 듯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늘 허무한 기쁨에 속아왔다. 일 초의 행복에 속아 그 나머지는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의 기쁨이 허무한 이유는 나를 만족시키기 위한 기쁨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은 무엇으로 기뻐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들’ 즉 ‘하나님의 기쁨’에 관해 살펴보고 싶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발견한 말씀이 스바냐 3장 17절 말씀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또 찾은 말씀은 시편 16편 3절이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이 말씀을 보니 하나님의 기쁨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관심과 기쁨은 온통 사람에게 쏠려있다. 요한복음 15장 11절 말씀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또 요한복음 17장 13절엔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이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헨델의 메시아 안에는 나를 기뻐하셔서 이 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멋지고 우아하게 그려져 있었다. 내가 이런 헨델의 메시아를 만났을 때 나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느 순간 막연한 그분(He)이었던‘3인칭 메시아 예수님’에서, 당신(You)이라는 친근한‘2인칭 메시아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어디 나 혼자뿐일까?
크리스천이라면 최고로 피곤한 주일 밤 시간, 교회 일을 모두 끝내고 쉬어야 할 시간임에도 매 주일 연습장으로 몰려오는 오라토리오 코랄 단원들을 보면서 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과 기쁨을 맛본다. 나를 그토록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기쁨으로 나와서, 그 사랑에 찬양으로 응답하는 기쁨의 무리들인 것이다.
과거 기쁨의 근거가 나의 만족이었다면, 지금 기쁨의 근거는 하나님 만족하심이다. 나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만족인 것이다. 사실 어떤 것이든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그 기쁨은 허무와 고통뿐임을 이들은 안다.
미국과 오스트리아에서 오는 솔리스트들과 이런저런 이유로 연락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었다. 이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어디에 서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서느냐’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런 소리 없이 그러나 강력하게 나와 오클랜드 오라토리오 코랄에게 기쁨의 이유를 묻는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 가 중요한지 아니면 ‘누구와 서 있는가?’ 가 중요한지를.
우리 기성세대는 우리 뒤를 이를 다음세대가 있다. 나는 우리 다음 세대에게 아름답고 고귀한 크리스천 문화유산을 가꾸고 보존해서 전해 주고 싶다.
인스턴트와 패스트 문화로 찌들어가는 데도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다음 세대에게 엄마표 집밥처럼, 건강한 크리스천 문화유산을 가꾸고 보존해서 전해주고 싶다. 그래서 다음세대가 진정한 기쁨을 알고 그것을 마음껏 누리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11월 25일에 열릴 제3회 헨델 메시아 공연은 사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들이 어울리는 기쁨의 축제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세대에게 전해 주기 위해 잘 가꾸고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크리스천 문화유산 중에 하나다.
공연이 끝나고 보너스 선물이 주어진다. 메시아 공연 다음 날인 26일 주일 오후에 네 솔리스트가 자원하여 선교음악회를 열게 된다. ‘어디’가 아니라 ‘누구’ 즉, 세계 정상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기쁨인 솔리스트들이 주는 참 고마운 선물을 우리가 받게 되었다.
이사야 62장 4절에 보면 <헵시바>라는 이름이 나온다. ‘나의 기쁨이 그에게 있다’라는 참 아름다운 뜻이다. 이번 공연이 우리들 서로에게 <헵시바>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