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매고 동유럽 5개국 역사기행

인간을 하나 되게 하는 건 하나님 사랑 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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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리 부다페스트의 야경

10킬로그램의 배낭 하나를 친구로 삼아 한 달간 독일의 서부와 동부를 지나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그리고 헝가리로 역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민족, 다문화의 결정판인 유럽에서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 중 몇몇의 크리스천 친구들을 만났고, 지역 교회들도 방문하며 교제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요예배에 방문했던 베를린의 한 한인 교회에서는 김치 국물에 밥 한 그릇도 얻어 먹었고, 여행 중에 짬짬이 들린 동네 카페에서는 크리스천라이프 원고를 위해 매일 끄적였습니다.

현존하지 않는 나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뉴질랜드에 6개월간 머물렀던 친구 로레타를 체코 프라하에서 7년 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약속 자리에 마오리 목걸이를 하고 나왔습니다). 체코에 살고 있는 슬로바키아 친구와 나눈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체코와 슬로바키아에 대해 그리고 남한과 북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1918년부터 1992년까지 70여 년을 함께 해온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뉘어 진지 25년이 되었습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Slovak 문화권의 같은 민족, 같은 언어를 쓴다고 알았는데, 그들 안에서는 또 나름대로의 구분과 차별이 있더군요.

“나는 슬로바키아 사람이기 때문에, 체코에서는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다.” “슬로바키아 사람이 체코어를 해도, 슬로바키아 사람은 무시당한다.” 라는 차별 이야기를 들으며 국가가 민족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민족의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양국 간에 계속 교류가 있고 출입국도 자유롭습니다.

그런 민족 간에도 이질감이 있다면, 교류 없이 나누어진 지 70년인 남한과 북한의 모습은 불 보듯 뻔합니다. 민족주의(한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가 ‘남한과 북한’으로 분리된 ‘국가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요?

우리 민족이 통일이 된다 한들, 70년의 벌어진 인식의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로레타와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선교사들이 머리에 스쳐 지나갑니다. 같은 민족이 아니고, 같은 국가가 아닐지라도, 하나님이 보시는 곳을 향해 기도하게 하고, 그곳을 향해 선교로 나아가게 하는 힘! 민족, 국가와 같은 인간의 사회적 범주와, 시간과 공간도 초월해서 인간을 하나 되게 하는 건 결국 하나님 사랑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독일과 폴란드, 헝가리와 아르헨티나 이야기
독일의 동쪽 끝 동네와 폴란드의 서쪽 끝 동네는 강 하나를 두고 ‘독일이다, 폴란드다’ 하며 다른 언어와 다른 화폐를 사용합니다. 마을을 산책하며 ‘작은 동네 중간에 예쁜 강이 하나가 지나는구나.’하는데, 강 가까이에 세워진 표지판들이 말해 줍니다.‘이곳부터는 독일의 Gorlitz, 이곳부터는 폴란드의 Zgorzelec 입니다’ 라고요.


독일의 Gorlitz 마을


독일의 Gorlitz역

독일 Gorlitz와 폴란드 Zgorzelec의 경계선에서
강 위에 놓인 돌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해봅니다. 두 나라의 다른 공기를 마셔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독일인과 폴란드인을 구별해보려고 했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똑같은 공기와 한 동네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 두 마을을 자세히 비교해 보면‘여기는 독일이구나, 여기는 폴란드이구나’하는 구별이 됩니다.

독일의 건물들은 알록달록한 페인트와 잘 가꾸어진 정원을 가지고 있다면, 폴란드의 건물들은 벗겨진 페인트와 조명 하나 없는 어두컴컴하고 스산한 복도가 보입니다. 강 하나 건넜을 뿐인데, 이게 국력의 차이일까요?

서로 다른 국가라는 범주 안에서, 서로 다른 뿌리, 다른 역사와 다른 언어를 가진 한마을 사람들. 실례가 될까 싶어 묻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서로를 독일인과 폴란드인으로 대할지, 같은 동네 강 건너편에 사는 친구로 인식할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Gorlitz와 Zgorzelec에 사는 두 소년이 강가에서 함께 뛰어 놀았다고 합시다. 해 질녘 집에 돌아가는 길에, 부모로부터 “너는 독일인이고 쟤는 폴란드인이야.” 하는 ‘구별’ 교육을 받는다면, 그 아이들이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까요? “엄마, 오늘 같이 논 친구는 그냥 내 친구일 뿐인데요?”

태평양을 건너 뉴질랜드에 온 지 10년, 그 중의 5년은 와이카토 한국학교에서 교사로 봉사를 했습니다. 몇몇 학생들이 저에게 던진 질문 중, 그 당시에 제가 대답해 주지 못했고, 여전히 고민하게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민 2세대 아이들은 가끔 “선생님 나는 한국 사람 아니에요, 우리 엄마 아빠가 한국 사람이에요. 근데 왜 내가 한국 공부해야 해요?” 하고 묻습니다. 혈통만으로 정체성이 확립되기 쉽겠지만, 정체성은 문화, 교육 뿌리를 비롯한 다양한 것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100퍼센트 한국인 피가 흐르고, 법적으로 한국 국적을 가졌지만, 가끔은 저도 제가 한국인인지, 뉴질랜드의 영주권을 가졌다 해서 제가 진짜 뉴질랜드의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 문화, 언어, 민족, 고향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저의 정체성을 정의할 때, 개인적 범주와 사회적 범주 간의 일체성이 없어 흔들리는 때가 많습니다. 정체성의 다중성과 복잡성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자기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수 있도록 자녀들을 격려해 주세요.

혹시나 한 곳에만 정착해야 한다면 그건 강 위의 다리를 뛰어놀던 두 소년이 결정해야 할 몫, 누구도 강요할 수도 대신해 줄도 없습니다. 조금 더 바꿔 말하자면, 매일 같이 천국과 지옥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우리가스스로 크리스천 정체성을 확립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기도해 주세요.

공산주의 헝가리 vs. 민주주의 아르헨티나
2016년에는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주간의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올해는 동유럽의 낭만 도시, 부다페스트에서 일주일 간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구의 양 끝에 위치한 두 도시의 건물들을 보고 있지만 그들이 과거에 얼마나 강대국이었을지 상상하게 됩니다.

과거 수백 년 역사의 부다 왕국 건물들과 남미에 지어진 파리의 건물들은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손잡이, 천장의 램프, 복도의 타일과 화장실의 세면대)까지 섬세하고 화려합니다.

그 화려한 과거는 보수되지 못한 채, 건물들의 페인트는 벗겨졌으며 철은 녹이 슬었습니다. 몇 백 년에 화려한 건물들의 일부는 폐허가 되었고, 그도 아니면 그곳의 치안 상태를 잘 보여주듯 철창을 덪 입혔습니다. 두 나라의 차이가 있다면, 한 세기 동안 헝가리는 공산주의를,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자유주의를 지나왔다는 점이겠죠.

공산주의는 소비에트 유니언의 해체와 함께 사실상 사라졌지만 자유주의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자유주의의 승리라고요? 아니요. 자유주의와 부정부패가 손잡은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험난한 공산주의를 지내온 헝가리의 모습보다 더 처참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정부패와 빈부격차를 알아 본 걸까요? 조각된 천사의 얼굴들에 어두운 그림자가 보입니다. 20세기 가장 큰 두 획,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수십 년의 냉전 후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이 난 것 같지만 실은 공산주의, 자유주의도 이기는 건 인간의 욕심인 것 같습니다.

작은 강을 사이에 두고 독일 땅, 폴란드 땅하며 다른 언어, 다른 화폐, 다른 역사로 갈라지는 사람들,‘다른 국가’를 두고 나누어진 한 민족 체코와 슬로바키아. 지구의 끝과 끝에서 다른 경제 체제로 100년을 살아온 헝가리와 아르헨티나. 그러나 결국 둘 다 몰락한 귀족이 되었네요.

‘바벨탑 사건 이후 하나님이 언어를 나누셨다’는 의미는 단순히 언어를 나눈것을 넘어 인간의 가치관, 체제, 문화까지 나눈 게 아닐까 합니다. 다른 가치를 지닌 우리는 서로 다른 정체성을 확립하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만든 문화, 체제, 국가에서 오는 이질감을 무마시키는 하나의 동질성이 있다면 그건 천국 시민권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여행 중 만나는 십자가 목걸이를 한 친구들에게는 먼저 다가가게 되고, 어느 나라 사람이세요? 보다는 크리스천이세요? 라는 질문이 먼저 나옵니다. 인간의 야망으로 지어지던 바벨탑은 무너뜨리고 우리를 다른 언어로 나눴지만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다시 모일 때 천국시민으로 시온성을 짓게 하는 하나님. 강과 산이 가르지 못하고 국가, 민족도 체제도 가르지 못하는 게 있다면,‘복음 밖에 없구나’를 다시 한번 느껴 온 여행이었습니다.


체코 프라하의 언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