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하고 교회 와도 여기는 교인들이 뭐라 안 하나 봐?”
우리 키위교회에서 오랜 시간 비자와 사역, 급여 문제 등으로 고심하던 중에
캐나다에서 젊은 목사부부가 청빙 되어 왔습니다.
키위교단에 속해 있는 우리 집 아래층에서 비자가 나오고 집을 구하기 전까지
머물기로 하고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돌도 채 안된 인형같이 예쁜 딸아이를 안고 온 삼십 대 초반의 젊은 목사부부는
요즘 말하는 신세대 스타일로 아내는 입술에 피어싱을 큼지막하게 하고
남편인 목사는 헤밍웨이의 자손인지 검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모습입니다.
목사 사모라 함은 그저 수수하고 평범하며 눈에 튀지 않고
다소곳하길 원하는 뭇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엉? 목사 사모가 입술에 피어싱을?”
할 판이지만 젊음 그대로 보아주자면 참 예쁩니다.
검은 머리에 수염까지 짙게 검은 젊은 목사는
윗머리부터 구렛 나루를 지나 턱밑까지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 때문에
덩치 좋은 산적두목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유난히 희게 빛나는 하얀 얼굴은
더 없이 선량해 보이고 사람 좋아 보입니다.
그들이 도착한 후 첫 주일이 되어 교회에서 만난
그녀의 피어싱이 약간은 거슬립니다.
“저렇게 하고 교회 와도 여기는 교인들이 뭐라 안 하나 봐?
그래도 주일 예배 드리려 왔는데 입술에 저건 좀 빼고 오지.”
오래 전, 부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구불구불 긴 퍼머 머리에 약간의 갈색 톤의 염색을 하고 다녔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어찌나 정통보수를 지나 꼴통(?)보수신지
아가씨인 저의 머리까지 주의 깊게 보시고는
머리가 노랗다느니, 머리가 길다느니, 왜 퍼머를 하고 다니느냐는 등
꽤나 주의를 주셨더랬습니다.
어느 날, 교역자들 쉬는 날에 미용실에서 퍼머를 하고 교회에 잠깐 들렸다가
목양실 앞에서 목사님과 딱 마주쳤습니다.
조금 지나 목양실로부터 호출이 왔습니다.
“머리가 그게 뭐요? 빨리 묶으오.”
늘 긴 머리를 묶고 다니다가 퍼머하고 처음으로 머리를 풀고 교회 갔더니
목사님 보시기에 머리를 풀어 헤친 모습이
마치 미친 여자 널뛰다 온 것처럼 보이셨나 봅니다.
그 후로 10여년 동안 한번도 머리를 풀고 교회에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젊은 사모의 피어싱을 보고
“주일에는 피어싱은 좀 빼고 오지.”
그런 것처럼 목사님 역시 그러신 거겠지요.
“주일에 교회에 오는데 머리 좀 단정히 묶고 오지 전도사가 그게 뭐요?”
그런데 교회에 갈 때는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가는데
교회 밖에서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내 맘대로 다닌다는 거 아닙니까?
목사님과 교인들 눈에 안 띄면 되니까
앞에서는 묶고, 뒤에서는 풀어 헤치고 다니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젊은 캐나다 목사 사모를 보면
교회에서나 집에서나 똑같이 피어싱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선 빼고 집에 와선 끼우는 것 없이…
그런데 아직도 나는 나의 이중적인 모습을 봅니다.
거룩하지 않으면서도 거룩한 척…
경건하지 않으면서도 경건한 척…
충만하지 않으면서도 충만한 척…
왜 꼭 이렇게 척!척!하며 살아야 하는지…
거룩하지 않기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필요하고,
경건하지 않기에 더욱 경건에 힘쓰고,
충만하지 않기에 끊임없이 성령충만을 구하며 살면 될 것을
왜 굳이 척!척! 하며 살아야 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