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숨겨진 보물찾기

어느덧 한 학년이 지나갔다. 내가 런던에 떨어진 지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긴 방학인 만큼 나에게는 6주라는 시간이 주어졌고, 집에 갈 수도 있었지만 영국의 여름을 한번 느껴보고 싶었던 나는 이번 방학을 런던에서 그냥 보내기로 했다.

내가 처음 런던에 와서 하던 나만의 투어가 세가지 정도 있는데, 첫번째는 수제버거집 투어, 두번째는 마켓 투어, 세번째는 박물관 & 미술관 투어였다. 런던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여행객들에겐 다 보기가 무리이다 보니 제일 유명한 대영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를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아쉬우니 나만 알기 아까운 런던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몇 개 소개해보려고 한다.

빅토리아와 알버트 박물관 Victoria & Albert Museum
들어가자마자 입이 딱 벌어지는 곳. 건물부터 예쁜데, 어디서부터 돌아야 할 지 모를 만큼 규모도 큰 편이다. 특히나 로마에서 가져온 신전의 기둥이나 동상들이 그대로 서 있는 관이 있는데, 그 크기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커서 정말 입이 안 다물어졌다. 어디서 어떻게 가지고 왔는지도 모를 유물들이 잔뜩 서 있고, 얼마나 되었을지 모를 조각상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다른 박물관들과는 조금 다르게 딱히 밧줄이 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서 (물론 당연히 올라서거나 만지면 안되지만) 바로 옆에 서서 보고, 사진도 찍을 수도 있다보니 그냥 그 역사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 박물관 안에 있는 것들은 어떻게 가져왔을지 의문이 들 만큼 큼직큼직한 것들이 많다. 기둥이나 지붕은 물론, 거대한 문을 통째로 박아놓은 것도 있다.

작은 한국 전시관도 있었는데, 한복과 백자 같은 것을 모아놓았다. 괜히 반가운 것! 조각상이나 유물 뿐만 아니라 많은 그림들도 있다. 이 박물관은 뭔가 박물관이라는 느낌보다는 탐험하는 기분이 든다. 내가 와서 발굴해내는 그런 느낌이랄까. 빅토리아와 알버트 박물관은‘ㅁ’자로 생겨서 그 가운데는 분수대가 딸린 가든과 작은 커피숍이 있는데, 테이블들이 놓여져 있어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도 보이고, 책을 읽는 사람들도 보인다. 열심히 탐험하고 차 한잔 마시기 딱 좋은 곳!

런던박물관 Museum of London
개인적으로 런던에서 제일 좋아하는 박물관이다. 제일 최근에 가 본 박물관이기도 한데, 왜 진작에 가보지 않았을까 후회한 그런 박물관이었다. 원시시대의 런던 땅부터 로마시대를 지나, 흑사병, 전쟁, 런던 대화재, 빅토리안 시대 등 현대시대까지 런던의 역사를 잘 따라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귀여운 모형들도 많고 체험적인 게 많아서 좀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었다. 현재는 수많은 비행기들이 오락가락하는 런던의 히드로 공항은 원시시대에는 움막 지대였고, 현재 높은 빌딩들이 늘어난 시내 한가운데에 사실 로마시대에는 엄청나게 큰 로마인들의 목욕탕이 있었다고.

글로 쓰면 재미없지만 사진이나 다양한 동영상과 모형들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공부해보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다양한 시대의 전시관들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 타임라인이 늘어져 있는데, 거기서 발견한 ‘1894: New Zealand gives women the vote’라는 문구는 괜시리 뿌듯했다.

점점 현대시대로 들어가면서는 옛 극장처럼 재현해 놓은 곳도 있었고, 옛 런던 지도를 보며 현재와 비교해 볼 수 있어서 런던을 정말 좋아하는 나에게는 신나는 곳이었다. 또한 런던 지역만 집중하니 더 디테일하게 배울 수 있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추천!

전쟁기념관 Imperial War Museum
최근에 나온 영화‘덩케르크’를 보고 나니 다시 또 가고 싶어졌던 곳. 이 곳은 5층 정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맨 윗층에 있었던 홀로코스트 (유대인학살) 전시관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전시관 중 한 방을 아우슈비츠 수용소 미니어쳐 모형으로 채워 놓았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흔히 영화에서 보면서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이즈였다. 한 방을 그 작은 미니어쳐 모형이 다 채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층마다 영국이 전쟁에서 쓰던 무기들, 군사 차량, 군함, 전투기들까지 전시해 놓아서 심심할 틈 없이 볼 수 있고, 한국 전쟁에 대한 글도 찾아볼 수 있었다.

전쟁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찍어놓은 옛날 비디오도 볼 수 있고, 전쟁 당시 나는 소리 등은 생생하게 그 시대를 접할 수 있었다. 주로 노부부 분들이 많이 보이고,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구경하시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작은 공원 안에 있는 박물관이니 날 좋은 날은 구경하고 밖에 나와 잔디밭에서 쉬어도 되고, 박물관 안에 작은 카페에서 차를 한 잔 해도 좋을 것 같다.

영국 도서관 British Library
왜 도서관을 추천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영국 도서관은 가방 검사를 받으며 입장해야 할 만큼 귀한 책들도 많고, 흔히 생각하는 도서관처럼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전시관들이 있어서 구경하기에도 좋았다. 사실 영국 도서관은 전에 한번 시도하려 했다가 가방 검사 때문에 귀찮아서 넘겼는데 이제서야 가보게 되었다.

안에 들어가니 바로 보이는 전시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각 분야 별로 나뉘어져 있는데, 음악, 문학, 종교, 미술 등이 있다. 음악에는 유명한 헨델, 모짜르트, 쇼팽이 직접 적어놓은 악보들이 전시되어 있다. 벽 한 켠에는 직접 들어볼 수 있도록 헤드셋이 준비되어 있어서 악보를 보면서 듣는 것도 재미다. 그 중에 가장 딱 알아들을 수 있던 곡은 헨델이 직접 쓴 ‘메시아’의 할렐루야 였는데, 실제로 그 악보의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소름이 돋았다.

종교 쪽에는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불교의 각 서적들이 놓여있었는데, 특히나 성경책이 많았다. 사이즈도 제각각이고 번역되기 전의 성경도 만날 수 있어 그야말로 신비한 곳이었다. 그 중에 3세기의 요한의 설교문 조각이 제일 신기했다!

또 하나 신기했던 건, 바로 비틀즈의 가사 모음! 비틀즈가 한창 작사를 하며 끄적였던 종이들이 사진과 함께 붙어있는데, 비틀즈 세대가 크게 아닌지라 그제서야 뭔가 실감이 났다고 해야 할까. 참고로 영국 도서관은 카페가 정말 예쁘다. 조명도 예쁘고, 한쪽 면이 유리장인데 온갖 서적으로 빼곡히 차있다. 그 옆에서 차를 마시면 안 읽히던 책도 읽힐 느낌!

테이트모던 Tate Modern
런던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현대미술관. 디자인이나 아트 쪽 전공하는 사람들이 익히 알고, 또 런던에서 많이들 찾는 곳이다. 예전에는 화력발전소였던 건물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 한 곳이라서 내부도 꽤 신기하다.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현대미술과 실험미술을 볼 수 있으며 앤디 워홀,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뒤샹, 그리고 백남준 등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관람이 가능한 미술관은 무려 4층까지 있는데, 화력발전소이다 보니 내부가 굉장히 넓고, 사실상 두 건물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따지고 보면 8개의 전시관을 관람하는 것이다.

또한 두 건물로 이루어진 테이트 모던 속 필수 코스는, 한 쪽 건물 10층에 있는 전망대와 다른 한 쪽 건물 6층에 있는 전망 좋은 레스토랑 겸 카페이다. 전망대는 탁 트여 360도의 런던 시내를 구경할 수 있고, 카페는 템즈강을 끼고 세인트 폴 대성당과 밀레니엄 브릿지를 마주하며 차를 마실 수 있어 특별한 공간이다. (개인적으로 런던에서 좋아하는 장소!) 테이트 갤러리는 사실 하나였으나, 현재는 테이트 모던과 테이트 브리튼 (Tate Britain)으로 나누어져 있다. 테이트 브리튼은 조금 더 소규모이나 이 곳 또한 엄청난 미술 작품들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거기도 추천!

어찌보니, 자꾸 카페 얘기가 나오게 되는데 사실 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카페에서 꼭 차를 한 잔 마시는 편이다. 카페가 워낙 분위기도 좋고 예뻐서 케익 한 조각에 차 한잔 하면 정말 영국스러운 느낌이 한껏 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박물관이나 미술관 속 카페가 특히나 인테리어도 예쁘다는 건 덤!

아무래도 요즘이 성수기이다보니, 유럽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런던에 대해 묻는 사람들도 많아졌는데, 이미 짜여진 일정이 아니라면 나는 개인적으로 런던은 최소 일주일은 잡으라고 추천한다. 아무래도 깡패같은 물가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여유로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도 다 못 보고 갈만큼 런던은 크고, 볼거리가 많다.

벌써 2주가 지나간 방학이 아직 4주나 남았지만, 전혀 지루할 틈 없이 나는 런던을 즐기는 중이고, 앞으로도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계속 이 런던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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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민
12살 때 가족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 오클랜드대학교 유아교육과 졸업, 킹스크로스교회 출석, 런던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다. 20대에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적응해가면서 보고 느낀 많은 것들을 나누고, 영국이란 나라, 런던이란 도시는 어떤 곳인지 조금이나마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