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아름다움 안에 사는 것

삐거덕대는 마룻 바닥을 조심스레 밟으며 들어간 한 중고 책방. 찢어진 책, 색 바랜 책, 이런 책은 도대체 어디서 구해왔을까 싶은 책들과, 50년 넘게 아무도 책장을 넘겨주지 않은듯한 불쌍한 책, 펭귄 서적의 펭귄 문양마다 낙서를 해놓은 책들, 오래 전 책 주인의 작은 메모가 쓰인 책들, 각각 보기에는 삐뚤삐뚤, 찢어진, 색도 다르고 사이즈도 다른 책들을 어쩜 이렇게 예쁘게 정리해뒀는지, 골동품 가게라는 생각보다는‘아름답다’라는 인상을 주는 책방입니다.

여기저기 흠집 난 골동품과 책들을 구경합니다. 한참 책들을 들여다보니 책방 주인의 정성이 느껴집니다. 책에 쓰인 낙서들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찢어진 책의 모서리를 매만져보며 이곳저곳에 꽂아보았을 정성이요. 삐거덕 삐거덕 걸어 다니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생각의 끝엔 또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무언가가 ‘아름답다’라고 평가하는 기준은 당시 사회의 철학, 문화적 분위기에서 정해집니다. 아름다움의 범위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피타고라스의 정리부터 시작되어 중세의 ‘종교적인 무언가’로, 현대 미술의 ‘추함’까지 넓어졌습니다.

고대 철학자들은 도형의 기하학적, 수학적, 비례 계산을 보며“a2+b2=c2! 오 아름다워라!”하며 감탄했고요(피타고라스의 정리). 비잔틴부터 중세 시절의 예술은‘세상은 불완전하지만 천국은 비례, 완전함만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반영합니다(피타고라스의 정리).


피타고라스의 정리

중세 시대 미술 작품에는 내세만 강조되었기 때문에 현세 것들, 예를 들면 원근감, 다양한 색감 등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보시는 그림과 같이 완벽한 좌우 대칭의 동그라미 안에 정해진 비율에 따라 예수를 그려넣은 바람에 ‘가분수 예수’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비례, 완전, 안정감이 강조된 것을 아름답다고 평가했습니다(재림하는 예수).


재림하는 예수

르네상스를 지나 현대로 올수록 이성적이고 추상적인 것보다 감각적이고 주관적인 아름다움에 관대해집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외치며 모호한 아름다움, 슬픔, 우울함, 혼란, 추함이 뒤섞인 예술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중국의 현대 미술 사대천왕이라 불리는 위에민준 작품, 작품명:천국).

진중권 저자의 미학 오디세이라는 책은 ‘태초에 아름다움이 있었다’라는 문장과 함께 시작됩니다(첫 문장에 반해서 아멘 하고 산 책). 태초의 말씀, 태초의 하나님, 태초의 아름다움을 시작으로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탄생됩니다.


위에민준 작품. 천국

크리스천들은 세상이 말하는 아름다움보다, 아름다움의 본이신 하나님. 그 큰 아름다움에 대한 묵상이 먼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은 시대사조에 따라 변화하지만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한 묵상을 하고 더 나아가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조금 삐뚤어진 주변의 것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점검해보도록 하죠.

나의 기준에서 보이는 나와 남의 추함, 흠, 뒤틀어짐과 삐뚤어짐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긴 참 힘이 들지만, 그 틀어짐을 하나님이 어떻게 아름답게 사용하실지 기대하도록 하고, 내 주변에 포개지는 다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어떨까. 나와 비슷할까.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같이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삶의 한 장 한 장, 한쪽의 접힌 부분을 펴고 나면 다음 페이지에서 걸려 넘어지고, 다음 페이지를 정리해두면 이젠 모서리가 나가고. 이만하면 버려질 책들을 정성스럽게 손보고 모으는 주인이 있습니다.

그 얼마나 다행인지! 가만 보면 모양도 생김새도, 주제도 다른 책들처럼 성향도, 직업도, 하나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맞지 않는 우리들을 이곳저곳 표에 두셨습니다. 우리의 부조화마저도 조화롭게 만들어내시고 삐뚤삐뚤 모난 모습까지도 아름다움으로 만들어내시는 하나님의 질서와 지혜가 보입니다.

2015년 뉴질랜드 청년 코스타 주제곡 중 ‘주의 아름다움 안에 사는 것, 나의 영원한 소원’이라는 찬양 가사가 있었습니다. 코스타 내내 찬양팀과 코스타에 참여했던 청년들이 “주의 아름다움이란 뭐죠?” 하며 함께 묵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묵상이 오늘도 내일도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의 아름다움에 빗대어 볼 때 오늘 나의 모습이 어떠한지 묵상해보고, 오늘의 흠이 보인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아름답게 사용하실 지 기대하고 기도로 나아가도록 하죠!

삐거덕 대는 나무 바닥과, 모난 책들이 모인 책방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분위기. 그 책방의 주인처럼, 우리 하나님도 약하고 무너진 사람을 세우시고 다듬으셔서 아름답게 사용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주인인 세상에서는 나의 약함과 남의 부족함마저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 날에 하나님 손에 들리는 나의 책이 조금 구겨졌고 색 바랜 책이더라도, 그 안의 내용은 나와 하나님 이야기로 가득 찰 수 있도록! 오늘도 승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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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연
해밀턴에서 간호학 전공. 해밀턴 지구촌교회 청년. 새내기 간호사로 일하면서 병원에서는 사람을 공부하고, 병원 밖에서는 카페에 앉아 시, 소설, 음악, 미술, 역사, 철학을 통해 하나님을 공부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인 빛과 색 그리고 인간의 창조물인 문화와 예술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