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보시기에 좋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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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을 섬기는 사역이다. 목사는 하나님의 친권 대리자는 아니지만 구약의 제사장적인 의미로 볼 때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목회 사역의 범위는 넓고 다양하지만 목회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위탁하신 그 백성을 양육하는 것이다. 즉 목회란 곧 목양인 것이다. 모든 사역이 그렇듯이 잘했다 못했다. 또는 잘하고 있다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따라오는 것처럼 목회 역시 다르지 않다. 목회 사역의 잘하고 못함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본다. 그런 목회에 평점을 매긴다는 것은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어쨌든 목회 역시 평가받고 있기에 무척 고민이 된다.

평가의 항목은 예배, 설교, 목회 행정, 리더십, 목사의 도덕과 인격, 목사의 가르침과 실제 삶, 그리고 기도를 비롯한 영성과 학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포함되며 그 모든 것이 함축되어 목회에 대한 평가가 내려진다.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마치 방송사들이 시청률에 사활을 걸고 방영하는 것처럼 목회 역시 사람들의 평가에 치중하게 되면 사람들 소리가 크게 들리게 되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평가에 매달리고 길들여지게 된다. 평가는 꼭 필요하다. 목사 개인으로서도 목회적 사명 이행에 관해서도 평가는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소리와 평가에 집착하면 결국 목사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 보기에 좋은 인간 중심의 목회를 지향하는 덫에 걸리게 된다.

어떤 목회자도 평가를 초월해서 고고하게 서 있기는 결코 쉽지 않다. 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알아주고 인정해주면 나쁠 것은 없지만 그 맛에 익숙해지면 사람 소리에 민감해지고 목회가 사람 보기에 좋은 쪽으로 짜 맞춰지게 된다.

세상 일뿐만 아니라 목회 역시 하나님을 빼고 인간이 연합하여 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은 결국 바벨탑을 쌓는 것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이것이 평가의 덫에 걸리는 것이다. 목회적인 모든 노력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다면 두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은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지켜보시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것이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하는 일인지에 따라 영광을 받으시든지 아니면 바벨탑을 허물듯 무너뜨릴 것이다.

평가 자체를 부정적으로 매도할 수는 없지만 평가에 치중하면 교회가 비즈니스적 성향으로 바뀌게 되고 성령과 말씀이 역사하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주식회사 형태로 틀이 잡히게 된다. 이것은 마귀가 교회와 목회에 대하여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수법이다.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할 수 있을까?’ 하루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틈날 때마다 생각을 깎아내는 고뇌이다. 하나님과 그 백성을 섬기는 목회는 계산이나 수완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목사도 교인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으며 그런 목회를 감당할 수도 없다. 교인들이 교회에 머물고 순종하는 것은 담임 목사의 목회 철학이나 스타일이 다 마음에 들어서 따르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교인과 대화하다가 누군가가 “자기 성격과 기질을 볼 때 지금 내가 이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게 놀랍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목사님을 사랑하시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는데 이해가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목회는 물 없이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 몸부림치는 것은 하나님 눈에 드는 목회를 위해 또 반대로 하나님 눈밖에 나지 않는 목회를 위해 진을 빼고 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것이 모든 것의 기준이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그 만드신 것들에 대하여“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셨다. 선악에 대한 판단을 비롯하여 모든 것의 옳고 그름에 대한 평가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달렸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왕들에 대해 기록한 열왕기와 역대기를 보면 왕의 이름이 열거된 그 다음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또는 “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라는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이 각 사람을 보고 계시며 또한 일일이 각 사람에 대하여 평가하신다는 말이다.

목사와 목회에는 하나님의 평가가 반드시 있다. 우리가 말하는 목회적 성공이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것인지 깊이 고뇌해야만 한다. 목회에는 ‘성공’ 이라는 단어보다 ‘성취’ 라는 말이 더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

목회는 궁극적으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하나 더 이루는 성취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사람 눈으로 보기에는 무엇을 이룬 것도 없고 실패로 찢겨진 모습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의 목회를 보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나올 때부터 광야 40년의 노정을 인도하는 내내 단 하루도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이 없는 날이 없었다. 모세가 죽는 날까지 이스라엘의 광야 교회는 시끄러웠고 골치 덩어리였다. 과연 모세의 목회는 실패한 것일까?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상 목회에서 혹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괜찮은 목사와 목회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목회를 하자. 하나님 마음에 드는 목회를 하자.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는 목회에 전념하고 착념하자. 고단해도 그렇게 해야 참 목회이다.

목사가 자신을 스스로 성찰하는 평가의 눈도 좋다. 교인들과 주변 사람들의 눈을 통해서 목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을 더욱 의식하는 목회를 하자. 목회가 힘든 것은 사람에게 맞추지 않아야 하면서도 사람을 빼놓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회가 고독한 것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눈을 따라 홀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평가를 기대하는 동안 가면 갈수록 지치고 목회에서 병 든 독소가 품어져 나올 수 있다.

하나님의 평가를 기대하며 목회하자.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목회, 깨끗한 목회, 정의로운 목회를 힘쓰자. 그 위에 하나님의 시선이 머물 것을 믿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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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오
개신대 및 동 신대원 졸업, 타우랑가샘물교회 담임목사, 목회 사역은 성도와 함께 이루어 가는 공동의 사역이고 영적 전쟁이기에 그에 따른 애환과 고뇌가 있다. 이민 목회현장을 목사의 눈과 평신도의 입장에서 진솔하게 풀어가며 목사와 교인들이 서로 아끼고 이해하고 관용하는 가운데 건강한 교회로 세워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