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좋은 책을 소개받을 수 있을까 하는 작은 기대와 조언을 구하기 위해 크리스천라이프에 한 달에 한번 정도 책 리뷰를 쓰게 되었다고 알린 적이 있다.
그 친구는 그 일을 잊지 않고 책을 한 권 보내주었다. 그 책이 바로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라는 필립 얀시의 책이다.
저자 필립 얀시는 따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왕성한 저작 활동을 보이고 있는 기독교 소설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그냥 지나쳤던 그런 일을 깊이 생각하면서 탁월한 기독교적 안목을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저자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라는 짧은 글을 자신의 책 머리에 실었다. 한국판을 준비하면서 한국인 독자들을 배려한 것이 분명하다.
규모와 역동성을 자랑하는 한국교회에 자신이 쓴 책이 과연 필요한가 의아해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지만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못지않게 한국에도 교회에 대한 회의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저자는 자신의 유년기의 신앙생활을 짧게 정리했다.‘우리는 은혜를 말하면서 율법으로 살았고, 사랑을 말하면서 미움을 흘렸다. 저자는 교회를 떠나 방황하게 되었고 그 일에 대해서 이렇게 소회를 밝힌다.
‘그런데 아쉽게도, 남부 근본주의에서 나올 때 나는 허울뿐인 위선만 벗은 게 아니라 신앙의 내용까지 함께 버리고 말았다.’ 저자는 자신의 순례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자신과 교회 사이를 가로막은 몇 가지 장벽을 말한다.
첫째는 위선이었다. 좋은 옷을 차려 입고 서로 웃는 겉모습으로 비열한 마음을 숨기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느 날 ‘교인들이 다 나 같다면 교회가 어떻게 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마음이 겸허해졌고, 그때부터 저자는 남의 영성이 아니라 자신의 영성에 집중했다고 고백한다.
두 번째 저자가 넘어야 할 장벽은 문화적인 것이었다. 공식적인 예배는 일주일의 어느 사건과도 달랐다. 그것이 저자를 짜증나게 했다. 저자가 교회를 떠나 있는 기간이 길수록 공식적인 예배에서 행해지는 것들은 더욱 이상해 보였다.
그러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은데 교회 때문에 방해를 받았던 유명 그리스도인들의 글을 통해서 도움을 받았다.
저자는 교회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다. 그것은 시간이 가면서 교회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배웠기 때문이다.
저자는 교회를 대할 때 위를 올려다보고, 주위를 둘러보고, 밖을 내다보고, 안을 들여다 보아야 함을 배웠다. 이 새로운 시각 덕분에 교회를 겨우 참고 견디면서 다녔던 저자는 교회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시카고 도심의 라살 스트리트 교회(Lasalle Street Church)에서 교회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저자는 그 교회에서 위를 올려다 볼 뿐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저자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교회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기본 질문에 답하려고 적절한 은유를 사용하였음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밭, 건물, 성전으로 교회를 표현했고 12장에서는 하나님의 몸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의 교회에 대한 비유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하지만 저자는 현시대 사람들에게 좀 더 와닿은 여러 은유들을 새롭게 만들어 소개하면서 교회가 무엇인가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우리가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니까 삶도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나님은 삶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삶의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면 물리적인 현실이 무너질 때도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들었던 한 고등학교 관현악단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실력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하면 결과는 형편없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들에게 그 곡을 연주하게 하는 막중한 짐을 지운다.
그 이유는 객석에는 그 고등학교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것 말고는 다른 곳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들을 수 있는 길이 없는 사람들이 앉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게 자신에 대해서 연주하라고 하신다. 그것은 세상이 하나님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