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통해 얻는 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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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교회에서 오랫동안 목회를 하신 한 목사님의 일기 형식의 책을 읽다가 왠지 글이 마음에 와 닿아 그 분이 쓴 글을 나누려 한다.

목회자에게도 불행은 있나 보다. 나는 대예배시간에 황당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 친척들, 하물며 그의 회사에서 녹을 먹는 종업원까지 그 다음 주부터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나는 교회를 나오지 않는 그의 친척들과 몇몇 종업원에게 교회에 다시 나와 줄 것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한 번 교회를 떠난 그들에게는 마이동풍이었다. 아무리 교회 출석을 권면하였으나 한 번 떠난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모든 동료 목회자들은 잘 됐다고 칭찬 아닌 소리를 했다. 그 후로 교회는 재정적으로 쪼들리기 시작했다.

이웃 교회나 소속된 노회에 보고를 하고 잠시 동안만 도와주기를 간청했으나 말로만 도와주겠노라고 공치사를 했다.

나는 평소에 인간관계를 잘 가졌다고 자부하였으나 다른 교회나 노회도 재정적으로 빈약하여 어려움에 처한 이웃 교회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교회를 임대한 건물주로부터 교회 임대료를 인상하겠다고 통보가 왔다. 나는 이 일을 놓고 한 달 동안 교회 성전에서 기도하며 잠을 자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

뿐만 아니라 교회 밖으로 나갔다 오니 사랑하던 아내조차 온다 간다 말 한 마디 남기지 않고 짐을 싸가지고 나가 버렸다.

왜냐하면 재정적으로 쪼들린 교회에 생활비를 달라고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기를 두 해가 지났으나 돈이 없어서 아내에게 생활비를 못 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따라서 신용카드 빚만 늘어갔다.

경제적으로 쪼들린 아내는 나에게 무능하다고 핀잔을 주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자격이 부족해도 그 사람이 장로를 하려고 하는데 시켜주지 않았다고 아내가 불만을 터뜨렸다.

나는 고집을 부렸다. 아무리 이민 교회가 신앙의 뿌리가 없어도 이렇게 엉터리로 교회 제직을 세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내가 집을 나간 후, 오죽 남자가 못났으면 아내가 집을 나갔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아내가 갈 만한 곳을 수소문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아내의 거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서류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아내로부터 이혼장이 날아온 것이었다. 나는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사내가 오죽 못났으면 아내에게 버림을 받을까?

그 분이 장로로 세워달라고 할 때 내가 고집을 너무 부렸나? 그랬으면 교인들도 나가지 않고, 물질적으로 어려움도 당하지 않았을 텐데…… .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어찌하랴. 같이 살기 싫어서 떠난 아내, 이혼을 요구해온 아내의 이혼장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나는 아내가 돌아오기를 두 해 동안 기다리며 방황하였다.

결국 나는 이혼서류에 서명을 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나는 결국 가정생활도 실패한 목회자가 되고 말았다.

나는 이 글을 보면서 부정적이고 과격한 면이 있기는 하나 이 땅에 사는 이민 교회 목회자들과 이민자의 삶이 비슷한 것을 본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삶의 애환이 곁들여 있지 않나 생각한다.

때로는 우리의 인생이 우리가 원치 않는 일들에 휩싸이게 된다. 실타래가 엉켜서 아무리 풀려고 해도 풀리지 않고 더 꼬여만 갈 때가 있다. 나는 목회를 하며 적지 않게 어려움을 겪었던 목회자들이나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때는 조용히 하나님 앞에 서는 삶을 배운다. 기도하며 이 불같은 시험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또한 목회자로 다른 하나를 배우게 된다.

조용히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는 시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세상에 어느 아버지가 자식이 안되기를 바랄 수 있을까? 하물며 자신의 아들조차도 우리를 위해 주신 사랑의 아버지가 아니신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을 통해 욥은 고백한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욥은 고난을 통해 자신이 단련될 것을 알았다. 더 단단해져 비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끊어지지 않는 레슨을 받고 있다는 것을, 또한 욥은 자신이 순금처럼 될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자신 안에 있는 불순물이 조금 더, 점점 더 사라져 언젠가는 순금이 되어 온전히 하나님 앞에 설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우리들은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든 이러한 시간들을 겪었고, 겪고 있으며 또한 겪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때 노아를 생각하기를 바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바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120년 동안이나 배를 만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배를 통해 자신과 가족들이 물의 심판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지금 나와 여러분이 겪는 어려움이 우리를 살리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장 8-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