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에는 아침 일찍 커피 한 잔을 들고 중고 책방을 어슬렁댑니다. 오늘도 이 책 저 책 다 열어보다가 마침내 맘에 드는 책 한 권을 찾았습니다. 150개의 주제별로 지도를 모아둔 역사 지도 책. 가본 적도 없는 곳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옛날 도시의 이름들을 빤히 쳐다봅니다.
무엇을 찾는지는 모르지만 계속 보게 되는 지도의 매력이 책방의 매력과 닮았습니다. 시집을 읽어내려가듯, 지도를 쑥 읽어내려가며 아침을 보냈습니다. 이동을 위한 지도 보기가 아닌 단순한 재미를 위한 지도 보기. 지도는 어떠한 주제나 공간을 약속된 암호와 신호를 통해 그려냅니다.
지도 위에 그려진 강, 등고선, 평야, 해저 깊이, 산맥을 보면 지형과 날씨,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들도 그려집니다. 굽이치는 강가 사이에 작은 빈틈의 땅에는 사람이 모이고, 산과 산 사이의 빈틈의 평야에도 사람이 모입니다.
강 사람과 산 사람들, 바다 사람과 도시 사람의 다 다른 삶의 모습을 상상하고, 지도를 따라가며 이곳 저곳을 여행합니다. 요즘은 자신의 위치를 ‘탐색하는 수고로움’ 을 GPS 기능이 대신합니다. 지도를 ‘읽는 수고로움’또한 GPS가 대신해주죠. GPS는 우리에게 지름길, 쉬운 길, 가까운 길을 알려줍니다.
인간의 손으로 그리던 지도를 인공위성에서 찍는 사진이 대신합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의‘공간’에 대한 지식도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만 여전히 지도 속에는 구멍이 있기 마련이죠. 지도로 그려지지 않는 자연과 바람과 사람과 문화는 직접 경험하고 그려나가야 합니다.
올해 초 친구들과 1박 2일 여행을 떠났습니다. 산을 넘고 터널을 지나니 저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산속 깊이 들어가다 보니 새로운 세상이 보입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저곳이면 좋겠다’, 했던 언덕 위의 파란 집. 그 언덕 위의 집 앞으로는 들판이, 저 멀리에는 파란 바다가 보입니다.
짐을 풀고 나니 가만있을 수 없어 각자 챙겨온 아날로그 사진기를 가지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저기 멀리 바다가 멀까? 바다까지 가보자. 하곤 동산을 넘어 바다까지 걸어봅니다. 인공위성 사진에는 보이지 않던 소, 나무, 구름, 이름 모를 들풀들이 보입니다.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는 제 친구들이 함께 걷고 있네요. 함께 걷는 동안 나눈 대화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의 오늘에 대해 또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 그렇게 한참을 모험하고 이야기를 하고 나니 하루가 꿈꾼 듯 지나가버렸습니다.
책방에 가만 앉아 지도를 읽어내려가는 편안함은 즐겁지만, 직접 이동하며 지도를 읽어내려가는 일은 수고스럽고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합니다. 어딜 향해 가는지, 주변에는 무엇이 있는지,
누구와 함께 하는지, 내 지도가 나타내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지도의 무엇을 보고 나아가고 있는지, 그나저나 지금 나는 어디 있는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나아가지 못하고 이탈한 길에서 복귀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길을 잃어서 주저앉아 버리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작정 따라가보기도 하죠.
저는 올해 스물다섯쯤을 지나고 있습니다. 같이 여행을 떠났던 또래 친구들은 20대 중반을 지나 곧 30대의 지도를 그려야 하는 친구들입니다. “어떤 공부를 해야 하죠?”로 시작되는 이십 대는, “나의 재능은 무엇이죠? 무슨 직업을 선택해야 하죠? 어떤 배우자를 만나야 하죠?” 그리고 그 다음은 “무슨 선택을 해야 하나요?” 로 이어집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라고 불리는 세상으로 자유여행을 떠났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GPS에 익숙한 우리 세대들은 지름길과 쉬운 길을 원하고, 그마저도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 길을 말해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자기 개발서를 읽고 유명하다는 강의도 들어봅니다만, 여전히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그제야 주저앉아 기도합니다
“모르겠어요, 하나님! 저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거죠?”
완전히 길을 잃었을 때에야 알게 되는 건 하나님은 항상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도를 한두 번 따라가다가 보면 “이 지도가 맞는 지도네” 하는 확신이 생기고 또 일반 세상 지도와는 참 다르다는 걸 알게 됩니다.
성공하는 법, 빨리 가는 법, 잘 나는 법이 그려진 복잡한 지도가 아닌 길은 하나 밖에 없다고 말하는 성경 지도. 오늘 내 손에 든 지도가 성경 지도인지, 아직도 세상 지도를 읽고 있는지 점검해봅니다.
청년의 때! 세상에서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크리스천 친구들에게는 ‘모르니까 청춘’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십 대의 사춘기를 지나, 자신이 정립되는 시기인 청춘의 때,‘나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일하며, 나는 누구이며, 누구를 만나 나의 한 평생을 살아갈 것인가?’라는 고민을 합니다.
우리는 모르니까 청춘이고, 모르니까 하나님께 묻고 순종할 수 있어서 그 ‘모름’조차 감사합니다. 미래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청년의 때를 세상 것이 아닌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채워내는 크리스천 청년들이 되도록 해요.
청년들, 우리 모두 화이팅!
그래도 안심이 되는 건, 같이 헤매고 넘어지지만 그래도 같은 곳을 향해 함께 걷는 친구들이 있다는 점과,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 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 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편 37 23-24) 하는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의 때, 힘이 넘치고 열정이 넘치는 이때에 나의 넘치는 동력은 무엇을 향해 가는지,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오늘도 지도 점검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