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읽지만 말고 읽혀라

고창범 목사<선한이웃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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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설교는 많은 사람에게 있어 익숙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반면 목사와 성경은 언뜻 생소하고 약간은 당황스러운 것은 나의 첫 번째 느낌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따라왔던 것은 목사와 성경의 깊은 연관성과 관계를 다각도로 보기 시작함이었다. 그 결과 목사와 성경과 설교의 삼각관계와 삼위일체를 보게 되었다.

이전에 많은 필자들이 성경에 대한 깊은 통찰과 많은 지식을 가지고 나눈 것들을 읽어 보았다. 그래서 본인은 반복되는 이야기는 생략하고 다소 실제적인 부분을 생각하고 언급하고자 한다.

본 필자는 혈기왕성한 20대 전후에 그룹사운드를 결성하고 몇 차례의 공연 활동을 했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 추억의 장에서 본인은 체험적으로 알게 된 사실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무대 앞과 뒤, 중간에는 갭(Gap, 틈)이 있다는 것이다. 무대에서 보여지는 화려함과 함성, 그 뒤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청년시절을 돌아보면, 6개월 혹은 1년을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하고 숙달했던 음악들을 무대에 올릴 때의 감회가 많이 새롭게 다가온다. 당시 약 1시간 30분의 공연을 위해서 쏟았던 열심과 열정이 뜨거웠었다. 더구나 공연 전날까지 무대 셋팅과 리허설을 하며 들인 시간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였다.

그런 모든 것들이 지나가고 공연 당일 무대 위에서는 화려한 무대 옷과 매너들 그리고 꾸며진 음악들이 펼쳐졌었다. 그러면 200명 남짓한 관객이 환호하고 갈채를 보내며 주목하고 인정해 주었다. 이것을 누리는 것이 연예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여기서 돌아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무대에 올라서기 전, 그 무대 앞과 뒤 중간에는 분주함과 긴장감이 있고 어수선함과 떨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무대와 앞과 뒤 중간에는 갭(Gap)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목사는 많은 시간을 강단에서 설교한다. 이 설교로서 목사 한 사람의 지성과 감성과 영력이 나타나게 되고 결국엔 평가받게 된다. 매끄러운 설교를 한 것 같은 날에는 뿌듯한 마음에 편안한 저녁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무엇인가? 그것은 그 강단 뒤에 수많은 시간들이다. 그 많은 시간에 가장 많이 집중하는 것이 말씀과 기도라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목사에게 있어 설교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목사에게 있어 성경은 강단 뒤에 숨겨진 근원지라는 것이다. 즉 목사에게 설교는 무대 앞이 될 것이고 성경은 그 무대 뒤에 감춰진 곳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이 설교와 성경 중간에 있는 갭(Gap)속에서 끊임없는 긴장을 가지고 살게 될 것이다. 이 긴장(Tension)은 목사의 영적 상태에 따라서 다소 다르게 해석되겠지만 거룩한 스트레스로 정리하고 싶다.

그렇다. 오늘 내가 하는 설교는 강단 뒤에 있는 성경과 성경적인 삶이 결정한다. 그러기에 이 성경은 목사를 비롯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생명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2016년 뉴질랜드 내의 한 단체에서 Hope Project라는 영문 소책자를 발간하였다. 나아가 한글로 번역까지 되어 많은 지역에 배포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소책자에서 크리스천이 아닌 이들에게 “성경은 우리의 삶에 깊게 관련되어 있다” 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하였다.

첫째, 다른 어느 것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길을 제시한다.

둘째, 이 성경의 문서들은 진짜 정본이다.

셋째, 역사적 사실로 살아있는 삶이 담겨있다.

넷째, 기록된 예측(예언)들이 온전히 이루어짐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주었다. 끝으로, 결정적으로 수많은 사람의 삶을 현재도 변화시키며 소망을 주고 있다. 전적으로 동감하며 잘 정리된 것이라고 본다.

이 성경을 목사인 나는 최고의 가치로 보고 성경적 가치관 속에서 목사의 직무와 성도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한 가지 본인과 독자에게 도전하고 싶다. 무대 앞처럼 드러난 우리들의 신앙, 그 뒤에 우리의 신앙을 결정지어 줄 성경이 얼마나 많이 그리고 깊이 우리 자신이 읽도록 허용하고 있는가?

실제로 나와 같은 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며 그렇게 살아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 성경에게 읽혀지는 삶을 사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대부분의 목사는 1주일에 최소한 1회에서 5-6회의 설교를 감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목사에게 영적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과의 관계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목사에게 밀려오는 강단 사역이 너무 가중되면, 상대적으로 목사는 성경에게 읽혀지는 시간이 줄게 될 것이며, 결국엔 설교에 쫓기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고 역사하심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목회자요 설교자인 목사로서 가져야 할 영성과 유익에는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걱정은 3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과거는 후회로 남고 현재는 근심으로 동행하며 미래엔 염려로 앞서간다. 하지만 성경에 의해 우리 자신들이 읽혀지기 시작할 때, 후회는 주님의 일하심이었다고 회고하고, 근심은 변하여 찬송이 될 것이며, 염려는 소망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성경이 가진 능력이다.

나는 목사이다. 모든 사람을 품는 자유롭고 다소 열린 목사로서 일하고 싶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의 긴장 상태를 벗어나고 싶지는 않다. 보수의 근본은 성경에 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을 넘어 성경에게 읽혀지는 목사로서 쓰임 받고자 한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성경에게 읽혀지고 있는가? 글쎄 이것에 대한 평가는 가족 공동체와 같은 우리 지체들과 가까이 살고 있는 나의 이웃들에게 맡겨야 할 것 같다.

한가지 확실한 고백은, 나에게 주어진 삶 가운데 현재 내 삶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 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에 대해서 증거하는 성경은 내 몸에 머리가 된다는 것이다.

목사인 나는 말씀의 보물을 땅 속에서 캐내듯이, 숲 속에서 찾듯이, 그리고 공중에 그리듯이 연구하고 묵상한다. 그리고 나아가 그 성경이 나를 다스리도록 나는 날마다 죽는 연습을 반복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있어서 성경은 무엇인가? 당신은 성경을 읽는 사람인가? 아니면 읽혀지는 사람인가? 글을 마치면서, 필자는 얻고 싶은 공감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에 의해서 읽혀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