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망진창

인터넷으로 한국의 어느 신문 기사를 보다가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단어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현망진창’입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현망진창이 현실과 엉망진창을 합친 말로 자신의 삶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 기사는 현재 한국에서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중년의 열성팬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현재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어느 케이블 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언급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101명의 남자 아이돌 연습생 중에서 11명을 뽑아서 새로운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과정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10대나 20대 초반이 연예인들에게 열광했다면 지금은 연령대가 높아져서 30대나 40대들도 아이돌의 열성적인 팬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몇 만원 대의 작은 선물을 보내는 10대나 20대 초반의 팬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보내는 선물의 액수에 있어서 그 규모의 차이가 심합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100만원 혹은 그 이상의 돈을 아이돌에게 보내고 계좌이체 내역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기도 한답니다. 퇴근 후, 밤늦게까지 아이돌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은 물론이고, 과거 아이돌이 출연했던 동영상까지 샅샅이 찾아서 봅니다. 그렇게 늦게 잠이 들다 보니 다음날 직장 생활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연습생을 후원하기 위해 저녁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선물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뭉쳐서 돈을 모으고 그것으로 각종 고가의 물건을 구입해서 보냅니다.

심지어 그 아이돌 연습생의 엄마를 자처하면서 마치 자신의 자식에게 하듯 정성스럽게 선물을 보냅니다. 자식에게 쏟아 붓는 정성은 아깝지 않은 법입니다.

그러다가 그 아이돌 연습생이 자신이 보낸 장신구를 하고 나오는 것을 화면으로 보게 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무거운 사회 분위기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기 보다는 아이돌이라는 환상에 빠진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자신의 현실에서 희망을 잃고 그 대신 연예인에게 집중하며 열광하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환상이란 현실에는 없는 것을 마치 현실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상념입니다. 현실이 힘들어지고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현실에서 도피하려 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환상을 만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신앙은 결코 환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신앙과 환상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 있을 때, 그 현실을 직시하기 보다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환상 속에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진짜 신앙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합니다. 그 현실의 한가운데서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그 현실 속에서 나를 다루시면서 그 현실을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결국 신앙으로 현실을 이겨낸 사람은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는 고통스러운 현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신앙의 깊이와 너비가 더 확장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숙하다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도피하고 환상 속에 빠지게 될 때, 그야말로 우리의 삶은 현망진창이 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