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꽃, 순간의 하나님

무심코 혹은 바쁘게 지나가버리는 우리의 일상.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만드시는 건 어떠신가요?

일과 바쁨을 잠시 내려두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자기만의 시간 만들기! 시집도 좋고, 수필도 좋고, 그림도 좋고, 글쓰기도 좋고, 조용한 큐티도 좋습니다. 왜냐고요? 가을이니까요!

올해 초 지인에게 선물 받은 고은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그 동안의 놓치고 지나간‘순간의 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너무 바빠 넘겨버린 것들, 너무 당연하고 사소해서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던 중에 제가 무심코 넘겨버리던 성경 말씀 한 구절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올해 초 여름부터 꽃꽂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장미가 한창이던 날, 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장미와 함께 라벤더가 피었고, 라벤더 꽃의 색이 바랠 무렵에는 수국이 피었습니다.

수국의 끝 무렵에는 매미가 울었고 매미가 잠잠해지니 이제 낙엽 떨어지는 소리만 사그락 사그락합니다. 꽃꽂이를 배우면서 꽃과 나무를 유심히 쳐다보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나뭇잎, 풀잎, 꽃 송이 하나하나 만져보고 쳐다봅니다. 바람만 불면 흩날리던 벚꽃과는 달리 수국의 종잇장 같은 잎은 보기보다 끈질깁니다. 얼마나 끈질긴지 꽃이 바짝 말라도 다섯 꽃잎은 옹기종이 붙어 손으로 뜯어도 뜯어지지가 않습니다.

잔가지가 ‘무궁 무궁’하게 자라나는 무궁화 나무 옆을 지날 때에는‘저 꽃은 저래서 무궁화라고 불리는구나’하고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한국의 목련은 꽃이 핀 후에 잎이 피는 반면, 뉴질랜드의 목련은 잎이 무성할 때에 꽃이 핍니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슬쩍 보이는 목련꽃이 마치 숨바꼭질 하는 아이 같아서 씩 웃게 됩니다.

식물들을 다루면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죽어가던 꽃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관찰하는 일입니다. 그 힘은 물! 꽃에 물을 주고, 정원에 물을 주고,식물에 물을 주다가 저도 물 한 모금 같이 마시고.

우리 일상에 너무나도 당연한 물. 당연해서 와 닿지 않는 물의 중요성을 꽃꽂이를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뿌리가 없어도 ‘참 죽지도 않는’ 꽃과 나무들이 있습니다. 수국은 물에만 넣어두면 한 달이 넘어도 생기발랄합니다. 수국을 보면서“너는 왜 안 죽니?”하고 물어봤는데, 수국은 대답이 없네요.

그 질기던 생명력도 물 밖에서의 한 시간은 힘든가 봅니다. 물 밖에서는 금세 풀이 죽어버리고 마네요. 물 밖에 뒀던 나무와 꽃 가지를 다시 물속에 넣으면, 나무와 꽃들이 다시 생기발랄 해집니다.

식물이 물 밖에 있던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지 속에 기포가 생겨 물이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막혀버립니다. 사람이 지치고 피곤하면 뜨거운 온천을 찾듯, 두껍고 고집 센 가지를 가진 꽃 나무들도 뜨겁고 차가운 온탕 냉탕의 treatment가 필요합니다.

시들어가던 장미를 따뜻한 물에 잠시 담가두었다 차가운 물에 넣으면 막혔던 수문이 열리며 다시 피어납니다. 전문용어로 treatment!

꽃에 매일 물을 갈아주고 관찰하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꽃! 하나님은 물!’ 물 밖에서 시들시들 죽어가다가 물속에서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활짝 피는 모습이 꽃과 닮았습니다.

가끔 삶이 꽉 막혀 버리는 때에는 하나님이 뜨겁게 treatment를 해 주시는데 그제야 막혔던 가지가 뚫리고 다시 싱싱하게 살아납니다. 꽃과 나무를 보면서 ‘너는 참 죽지도 않는구나’ 하다가 피식 웃게 됐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하나님 사람들도 물속의 그 꽃들처럼 질기지 않을까요?

이렇게 꽃과 물, 사람과 하나님을 연관시켜 생각하다 보니 말씀 하나가 문득 떠오릅니다. 너무 많이 들었고 너무 당연한 말씀. 관련된 찬송까지 줄줄 나오는 한 구절! 하지만 무심코 넘겨버리던 성경 말씀 한 구절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시냇가에 심긴 나무라’(시편1: 3). 와 닿지 않던 저 말씀이 꽃꽂이를 하던 어느 날 아멘! 하고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나무, 시냇가에 난 나무가 아닌, 심긴 나무.

누군가 목적을 가지고 꽃꽂이 하고, 화분 갈이를 하듯, 하나님이 시냇가에 ‘심어둔’ 나무. 그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 함 같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무심코 혹은 바쁘게 지나가버리는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만드시는 건 어떠신가요? 일과 바쁨을 잠시 접어두고 자기만의 시간 만들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바빠 넘겨버린 기도, 너무 당연하게 읽고 넘겨버린 말씀을 찬찬히 묵상하다 보면 만나지 않을까요? 그 순간의 하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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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연
해밀턴에서 간호학 전공. 해밀턴 지구촌교회 청년. 새내기 간호사로 일하면서 병원에서는 사람을 공부하고, 병원 밖에서는 카페에 앉아 시, 소설, 음악, 미술, 역사, 철학을 통해 하나님을 공부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인 빛과 색 그리고 인간의 창조물인 문화와 예술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