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의 현장, 카파도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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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를 깎아 만든 이들의 거주 공간은 2세기부터 4세기 초까지 종교탄압시기에 기독교인들의 피난처가 된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 동굴교회

기독교에 대한 박해의 흔적을 찾는다면 대표적인 것이 로마 인근의 카타콤베(Catacombe)와 터키의 카파도키아(Cappadocia)를 들 수 있다.

둘 다 로마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에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던 지하 교회나 무덤을 가리키는데 규모 면에서는 카파도키아에 있는 기암괴석의 동굴 교회와 거대한 지하 도시 속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교회가 형성되어 있어 자연과 인간의 능력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기암괴석의 동굴 교회
카파도키아는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에서 남쪽으로 약32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카파도키아란 지명은 기원 전 이곳에 있던 카파도키아 왕국의 이름을 딴 것인데, 황량하고 황폐한 지형에 원추형과 버섯모양의 기괴한 암석들이 즐비하게 서 있고 바위를 깎아 만든 이들의 거주 공간은 쉽게 적들에게 노출되지 않아 2세기부터 4세기 초까지 종교탄압시기에 기독교인들의 훌륭한 피난처가 되었다.

이곳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거주지 이외에도 수많은 수도원과 교회들이 있고, 암굴 속 교회에는 프레스코와 성화들이 장식되어 있다. 7세기 후반에 이슬람 세력이 들어오면서 사람 손이 닿는 부분의 성화는 아예 없어졌거나 훼손된 것이 많으나, 토칼르 교회 같은 곳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사과교회, 집시교회, 성 바르바르 교회 등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공생애의 기적들, 최후의 만찬, 유다의 배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등이 그려져 있다. 천정 모퉁이에는 성경 기록자들의 성화도 그려져 있다.

카파도키아 동굴 교회의 내부의 이들 회화들은 비잔틴 예술의 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유산이다.

이곳에는 일찍 유대인들이 살았었고 그들이 명절 때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는 기록이 사도행전 2장 9절에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는 오순절 성령 강림 때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제자들의 방언 속에 본도와 카파도키아의 방언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또 한편 베드로전서 1장1절에 보면 카파도키아는 베드로의 사역지였고 그의 사역 말기에 카파도키아에 다수 기독교인이 살고 있었다고 역사학자 요세프스는 말한다.

기독교의 수행장이자 은신처인 지하도시
카파도키아에 많은 지하도시가 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 중 하나가 데린쿠유 지하 도시이다. 이 지하 도시는 용암재가 굳어진 약한 사암을 일일이 쪼아가며 파 들어 간 인공 동굴이다.

피난민들이 늘어날수록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게 되자 옆으로 혹은 지하로 계속 파 들어가 복잡한 미로를 형성했다.

동굴

Derinkuyu-Underground
카파도키아의 많은 지하 도시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 데린쿠유(Derinkuyu) 지하 도시

지하 120m까지 내려가는 지하 도시는 20층이나 되며 최대 3만명까지도 수용이 가능하다고 하니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려 1,200여개의 방이 있지만 현재는 관광객의 안전을 위하여 8층까지만 공개하고 있다.
‘깊은 우물’ 이라는 뜻인 데린쿠유는 1965년에 처음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으나 실제로 관람할 수 있는 구역은 총 면적의 10%에 지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출정하는 군대의 위협이 있을 때에는 이곳 자연 동굴은 그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지만, 로마의 기독교 탄압을 피해 쫓겨 온 기독교도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교육기관과 교회, 와인 저장고 등을 축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거대한 지하 도시를 건설하였다.

작은 규모의 마을부터 거대한 도시에 이르기까지 총 40여개에 달하는 거주지가 발굴되었으나 오늘날 일반인에게는 소수만이 공개되고 있다.

이 지하 도시에는 긴급히 다른 도시로 피신할 수 있는 지하 터널이 9㎞ 뚫어져 있고, 통로 입구는 연자방아 모양의 커다란 둥근 돌로 막혀 있다.

이 돌은 내부에서는 쉽게 열리지만 외부에서는 열려고 해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외적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한 돌들은 통로 중간 중간에 설치되어 있다. 허리를 굽히고 땅 속으로 난 좁은 통로를 들어서자 다른 세계가 나타난다.

지하 1층과 2층에는 돌로 만든 두 개의 긴 탁자가 놓여져 있는 식당을 비롯하여 부엌, 우물, 축사, 곡물 창고, 포도주 저장실 등이 위치하고 있다.

3, 4층에는 거주지와 교회, 신학교, 병기고 등 완전히 도시 기능을 갖춘 것이다. 교회는 초대교회 시절 기독교인들이 지하에 숨어서 예배를 드렸던 곳이며, 신학교는 피난 생활이 장기화할 것에 대비하여 장차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려고 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시작된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비롯해서 교회 역사에 끊임없이 크고 작은 핍박이 있어 왔다.

기독교에 대한 로마제국의 박해는 주후 64년에 네로 황제에 의하여 처음 일어났다. 이처럼 기독교는 처음부터 핍박을 받았고, 그 핍박 속에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대 1세기와 2세기의 박해 그리고 수세기 동안 세계를 돌면서 복음은 수많은 순교자를 만들었다. 많은 핍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가 되어 교회는 꾸준하게 성장하였다.

핍박이라는 기독교 장애물이 오히려 기독교를 성장시키는 수단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교회 수난시대 카파도키아의 그리스도인들도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비록 동굴 속에 숨어서 살았지만 늘 예배의 감격 속에서 살아왔음을 이 동굴 속에서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현장에 여러분들도 한번 서 보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