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a, Espana!

스페인 부활절 축제 가운데 십자가 행진

4월은 늘 내가 좋아하는 달이다. 날도 많이 풀려 맑은 날이 많아지며, 방학도 있고, 나의 생일도 있고, 종종 기념일들이 4월에 겹치는 경우가 있어 나는 늘 4월을 좋아한다.

이번 4월은 더욱 특별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주어진 2주 간의 휴가 동안 부모님께서 런던까지 날 보러 오셨기 때문이었다. 부모님과 나는 함께 런던에서 사흘을 지내고, 남은 열흘 동안 함께 스페인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 – 그라나다 – 세비야 – 마드리드를 지나 부모님께서는 다시 오클랜드로, 나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열흘간 특별하게 함께한 스페인. 이 나라에서의 시간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스페인은 유럽의 서쪽, 이베리아 반도에 자리하고 있는 유럽에서 세번째로 큰 나라이며, 가장 복합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스페인은 로마와 기독교 문화에 이슬람 문화까지 섞여 있고, 각 도시마다 지역마다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어 여행하면서 같은 스페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끔 새로운 느낌을 준다. 스페인은 영국과 다르게 날씨가 굉장히 따뜻하며,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을 찾아보기가 쉽다.

스페인에서 적응이 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면, 그건 영국과 다르게 사람들이 부딪히거나 밀치는 것을 개의치 않아 하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클랜드에서나 런던에서나 사람들과 몸을 부딪히면 모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스페인에서는 사람들이 그냥 길을 틀 때도 밀치고 지나가거나, 몸을 부딪히는 데도 돌아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처음엔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부딪히면서 다니는 사람들 덕에 나는 초반에 입에 ‘Sorry’와 ‘Excuse me’를 달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지내면서 생각해보니, 스페인 사람들은 어쩐지 서양국가와는 다르게 개인주의가 강한 것 같지 않았다. 모두 가족처럼 생각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누군가가 조금 부딪혀도 그냥 이해해줄 수 있고, 넘어가 줄 수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도 모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당연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고, 모르는 사람이 먼저 사소하게 말을 거는 것도, 그리고 그 대화를 받아주는 것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뉴질랜드에서도 종종 그런 적은 있지만 그게 당연시 되어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런 스페인 사람들의 호탕함이 너무 좋았다.

열정이 가득한 나라, 스페인
사람들은 친절했고, 굉장히 유쾌했다. 영어로 얘기하면 대답은 스페인어로 돌아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도움을 주는 것을 꺼려하지 않으며, 묻지 않아도 두리번 거리는 것 같기만 하면 와서 도와준다.

재밌었던 건 도움을 어차피 스페인어로 주기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헷갈린 적도 종종 있었다는 것. 예를 들면, 아침에 당일치기 여행을 가려고 시간 맞춰 버스 티켓을 사려고 줄을 서 있는 내가 줄 서 있는 동안 다른 기계들을 쳐다보며 두리번 거리니 한 할머니께서 스페인어로 설명을 해주셨다.

대충 들어보니 지금은 버스가 없고 오후나 되어야 있을 거라는 얘기 같아서 그럼 오늘은 포기하고 내일 티켓을 사야지, 했더니 창구 가서 물어보니까 티켓이 있다고. 지금 가면 된다고… 하하. 어디서부터 잘못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두 친절했다.

또 스페인 사람들은 뉴질랜드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잘 웃어준다! 정말 반가웠다. 영국에선 남과 눈이 마주쳐서 웃으면 관심을 표하는 것과 같다 하여, 처음 런던에 떨어졌을 때 나도 종종 오해를 산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웃지 않고 다니는 것이 습관화 되어버렸는데, 스페인은 또 뉴질랜드처럼 사람들이 모두 생글생글 잘 웃으며, 그것이 또 인사이자 매너였다.

그래도 영국에 좀 있었다고 처음 스페인에 도착했을 땐 나도 모르게 습관 때문인지 사람들이 웃어주자 ‘뭐야 왜 웃지…’ 라고 의심 아닌 의심부터 했지만 스페인 사람들의 해맑은 웃음에 며칠 새 무장해제 되어 마주치면 ‘Hola (올라)’와 함께 나도 싱글벙글이었다.

그 해맑았던 웃음들은 지금 떠올려도 다시 웃음이 나게끔 한다. 스페인 사람들의 순수함과 행복함이 나까지 물들인 것 같다.

Easter in Spain
운이 좋게 우리의 여행 일정이 이스터에 들어 맞아 스페인의 엄청난 인파와 엄청난 규모의 부활절 행사를 볼 수 있었다.

부활절엔 스페인 남부라고 할 정도로, 스페인 남부지역들에선 이스터 느낌이 물씬 났다. 특히 남부 지역 중에서도 세비야에서 스페인에서 가장 큰 부활절 축제를 하는데, 부활절 일주일 전부터 시작하며 한 주 동안 예수님의 이야기를 퍼레이드로 보여주는 것이다. 시간이 너무 딱 들어 맞아, 시작하는 첫 날부터 구경할 수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 부활절 축제를 ‘Semana Santa (세마나 산타)’ 또는 ‘Holy Week’라고 부르는데, 이 일주일간의 퍼레이드에는 각 성당에서 만들고, 보유하고 있는 예수님 상과 성모 마리아 상이 50개에서 60개씩 사용된다고 한다.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성모 마리아 상과 예수님 상은 굉장히 거대했는데 어찌 운반 되는 것인가 했더니 아래 건장한 남자들이 짊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몇시간씩, 길면 거의 반나절을 그렇게 짊어지고 다니는데도 이 행사가 있는 때에는 늘 지원자가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고난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라고.

스페인은 4월임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온도가 31도까지 올라가느라 나는 맨 땅에 그냥 서 있기도 힘들었는데 그 무거운 상들을 지고 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물론 예수님의 고난에 비하면 그 무더위도 구조물들의 무거움도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인지라, 예수님 상만큼 성모 마리아 상이 굉장히 많았는데, 사람들은 이 모든 상들이 하나하나 지나갈 때마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슴에 십자가를 그리며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예수님께서 핍박 받으시고, 모진 매질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상들이 지나갈 때는 그 모든 것들이 너무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있어 눈 앞에 실제로 일어나는 것 같아, 나 또한 다시 묵상하고 기도하게 되었다.

안녕, 스페인
짧지만 또 짧지 않은 15일을 스페인에서 지내며 더욱 더 내 삶에 감사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내가 살아가고 또 살아내고 있는 이 한 순간 한 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다시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하루하루 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여유가 더 허락되었더라면 한달 정도는 그냥 스페인에만 쏟으며 여행하기 좋을 것 같았다. 사실 어쩌면 8개월만에 뵌 부모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행 내내 또 내게 부어지던 사랑과 응원 때문일지도.

또한 개인적으론 스페인의 이스터를 살면서 한번쯤 경험해 보는 것도 꽤나 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기에, 혹 내년 이스터에 유럽여행을 계획하고자 한다면 스페인을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벌써 다섯 도시를 여행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좋은 곳이 너무 많이 남은 스페인. 다음에 또 만나요. Adios ami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