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교차점, 다양성의 진수를 보여주는 터키

비잔틴 제국의 기독교 문화와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문화가 조화를 이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로마식 교회 건축물인 성 소피아 성당

터키는 굴러다니는 돌조차 유적이고, 문명의 흔적이라 할 만큼 동양과 서양의 특징들이 미묘하게 뒤섞여 있다.

아시아와 유럽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중심으로 공존한 터키는 역사와 지리적인 특징 덕분에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풍경을 만들어냈다.

터키에서는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만나는 그들의 다양하고 정제되지 않은 삶의 단면들과 과거의 번영이 끝이 난 줄도 모르고 허세를 부리며 서있는 고대 유적들이 이방인들의 발길을 끌어 당기기에 충분하다.

터키인들의 영혼의 안식처인 보스포루스 해협의 황혼과 그곳에서 특유의 미소로 낚싯대를 띄우고 있는 터키인들의 여유로움은“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이 세상을 위해 살고, 내일 죽을 것처럼 저 세상을 위해 살아라.”는 그들의 속담처럼 방문자들에게 넉넉함을 제공한다.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지리적 요인으로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이들이 동으로 서로 진출하기 위해 이스탄불을 거쳐갔고, 그들의 다양한 문화들로 인해 이스탄불을 비롯한 터키 전역에서는 아나톨리아 초기 문명부터 히타이트 제국, 그리스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의 향연이 펼쳐지게 된다.

‘성 소피아’ 라 부르는 아야 소피아 성당
한 문명이 다른 문명을 만나 어떻게 어울려 공존했는지를 교훈으로 남긴 도시가 바로 이스탄불이며, 이스탄불 역사를 음미하는 발길은 성 소피아 성당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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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의 내부

성 소피아 성당(아야 소피아)은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으로 비잔틴 건축 양식의 최고 걸작이며, 비잔틴 제국의 기독교 문화와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문화가 조화를 이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로마식 교회 건축물이다.

성당에서 이슬람 사원으로, 그리고 이제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지시로 537년에 지어져 13세기 초반 약 55년간 로마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사용되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1453년까지 정교회의 성당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1453년 이스탄불을 점령한 오스만 제국에 의해 이곳이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어 1931년까지 모스크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래서 내부에 들어가 보면 아기 예수와 성모마리아 모자이크상과 이슬람의 최고 성지인 메카를 가리키는 미흐랍이 공존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35년 박물관으로서 대중에게 공개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그 쓰임이 변해 왔지만 초기의 아름다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어서 전세계인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종교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동거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메드 2세는 이스탄불을 점령한 직후 성 소피아로 가서 그 자리에서 ‘이제부터는 모스크로 사용할 것’을 선언했다고 하니 아야 소피아가 차지하는 상징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후 성 소피아 내부의 환상적인 모자이크 벽화 위에는 석회가 덧칠해지고 이런 식으로 대부분의 모자이크가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하지만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터키 정부는 성 소피아를 특정 종교의 공간이 아닌 인류 공동의 문화 유산인 박물관으로 개조하기로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성 소피아 복구가 진행되고 내부 회벽 안쪽으로 숨겨져 있던 모자이크 일부가 발견되었다.

12세기경에 만들어져서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를 지닌 이들의 손을 거쳐가며 변화를 겪었지만 예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간청하는 세례 요한과 성모 마리아에게 축복을 내리는 장면의 황금 모자이크(The Deisis Mosaics)성화는 벽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예수님을 더욱 근엄하고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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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모자이크(왼쪽부터 성모마리아, 예수, 요한)

잊지 말아야 할 슬픈 역사
천년 동안 기독교 문화의 꽃을 피웠던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 제국, 내분과 숙청으로 많은 귀족들과 장수들이 처형되거나 해외로 도피하고 성직자들 마저 타락하여, 제사와 신도들을 돌보는 일보다는 제물과 세상 즐거움에 더 관심을 두고, 가족과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

도시는 텅 비어갔고, 리더십을 상실한 황제는 용병 6천명에 의지하여 항전하다 전사한다. 남아있던 성직자들은 이슬람 군이 쳐들어 오면 하나님께서 이 성당을 신도들과 함께 하늘위로 옮겨 가실 것이라고 안심 시키며 끝까지 신도들을 무방비 상태로 있게 하였다.

소피아 성당 성소까지 말을 타고 쳐들어온 이슬람 군은 그 안에 있던 교회 지도자들을 무참히 학살하여 그 핏물이 시냇물처럼 흘렀다고 한다. 그래서 터키의 국기에는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풀이 최종적으로 함락되었을 때 하늘에 뜬 그믐달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단 8,800명의 숫자로 10만명의 이슬람 군대에게 포위되어 싸움에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들의 종교인 기독교를 지키기 위해 장렬히 전사하였으며, 5만이 안 되는 시민들은 포위망을 좁혀오는 이슬람의 군대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도 최후의 만찬을 성 소피아 대성당에서 갖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순교자로의 일생을 마쳤다.

바라기는 코란장식을 하기 위해 입혔던 회칠을 벗겨내어 장엄한 기독교 성화들이 다시 찬연한 금빛을 발산하듯이 우리의 신앙이 새롭게 빛을 발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