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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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월남쌈, 베트남 전쟁, 베트콩 그리고 미스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3년 전 현지 대학생들의 에이즈 환자를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과 닮은 나라에서의 인턴 생활은 쉬울 줄 알고 나는 ‘현지인으로 살아보겠다’라는 목표로 인턴 생활에 도전했습니다.

쉽긴 무슨… 달라도 너무 달라 저와 베트남의 닮음보단 다름을 더 많이 보게 되었고, 그만큼 나와 예수님의 닮음보단 다름을 보게 되어서 많은 도전이 되었던 나라, 베트남. 가끔 일상에서 ‘다름’을 만날 때는 베트남 생활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때 만난 사람, 그 때 찾아간 카페, 그 때 만난 하나님과 그 때 그 기도.

동남아 국가답게 아침부터 후덥지근한 날씨가 저를 반깁니다. 해는 아침 6시부터 중천에 떠서 쨍쨍합니다. 뉴질랜드는 아침 새 지저귀는 소리가 가득할 시간에 사이공은 미스 사이공들의 조잘 거리는 소리가 가득합니다.

더위와 갈증에 잠이 깨어, 물 한 잔 크게 마시면서 창밖을 내다 봅니다. 창문 아래는 아오야이를 입은 미스 사이공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닙니다.

집 밖을 나갈 준비가 끝나면 홈스테이 동생이 종이와 연필 하나를 들고 따라옵니다. “오늘 너의 스케줄과 누구를 만나는지, 써줘’라고 합니다.

내 사생활을 왜 보고해야 하는가! 라며 불평하지만 “이웃들이 신고 할 수도 있어”라는 말에 결국 제 하루 계획을 써줍니다. 공산국가인 베트남에서는 외국인들의 생활을 감시하고 신고하는 일이 당연합니다.

불교 국가인 베트남은 주가 채식이고 한 달에 몇 일, 육식을 하지 않는 날이 정해져있습니다. 현지인처럼 살겠다라는 건 즉 내가 먹어오던 음식을 포기하겠다는 말이죠. 홈스테이를 하면서 현지 친구들이 먹는 음식을 똑같이 한달 쯤 먹었더니 계획에도 없던 다이어트가 됩니다.

나의 다음 번 인턴은 베트남 생활 한달 만에 영양실조로 병원에 실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현지 병원까지 경험한 친구, 별로 부럽진 않습니다.

힘든 베트남 생활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니, 바로 카페. 얼음물과 에어컨, 편한 의자와 빵에 고기가 있는 곳입니다. 제가 살던 홈스테이 집에서 카페가 몰려있는 곳까지는 버스 타고 40분이 걸립니다. 버스 타고 40분 걸리던 거리를 좀 단축시켜주는 방법이 생겼으니 바로 오토바이 택시!

이제는 내려야 하는 버스 정류장을 놓칠까봐 긴장하고 있을 일도 없고, 스톱 버튼이 없는 버스의 기사 아저씨 옆에서 여기서 내려달라고 쿡쿡 찌를 일도 없습니다. 대신에 오토바이 아저씨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가서 손짓 발짓을 하며 흥정을 합니다. 조금이나마 흥정에 성공하는 날은 괜히 기쁩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보면 버스 안의 사람도 길가의 사람도 저를 쳐다보는게 느껴집니다. 자신들과 애매하게 닮은 듯 다른 제 모습이 신기한가 봅니다.

첫 날에는 20킬로로 달리는 오토바이 뒤에서 고개도 못 들고 소리만 질렀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니 80~100킬로를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즐겁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처음 찾은 카페는 café de Saigon. 프랑스 식민지배 역사를 가진 나라답게 이곳 저곳에서 프랑스가 보입니다. 프랑스 친구가 매니저로 있는 카페라 카페에서는 프랑스어와 반가운 영어가 들려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라고 알려진 카페는 프랑스 파리에 있습니다. 1800년도 그 카페를 나폴레옹과 친구들이 들락날락하고, 프랑스 혁명의 시작되었습니다. 카페 문화가 세계화 되어 아일랜드의 한 카페에서 해리포터가 탄생되고 워싱턴의 한 카페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이 작성됩니다.

베트남의 카페에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주로 사진 작가와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노트북을 가진 친구들이 보입니다. 카페 밖의 더위와 조금 다른 모습에 부담스러운 관심을 받던 사람들이 카페에서는 자신만의 일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세상에 있다가 가끔 서로 눈이 마주칠 때에는 명함을 주고 받고 자기가 만드는 것들을 공유합니다. 그 대화 속에서 또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이야기가 다듬어져 카페 밖 세상으로 나가겠죠?

어느 날, 현지 친구들과 길가에 앉아서 프로젝트 회의를 하다가, 더위에 지쳐 “카페 가자” 라고 제안한 날이 있습니다.‘3불이면 커피에 얼음물에 공기도 깨끗하고 시원하고. 왜 길바닥에 쪼그려 앉아 땡볕 아래서 회의를 할까’ 했지만 저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달 넘도록 회의에서 투덜대니 한 친구가 조용히 와서 한마디 합니다. 3불의 커피값이 우린 10번의 끼니를 위한 돈이라고요.

아뿔싸. 그제서야 카페 밖의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2층 카페 창문 옆에 앉아서 밖을 내려다 봅니다. 그제서야 베트남의 빈부격차가 눈에 들어옵니다.

카페 안에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바라보다 문득 내 스마트폰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현지인들을 생각합니다.

내 스마트폰을 개통 시키는 법을 모른다며, 구글맵도 종이 지도도 없이 인턴들을 뺑 돌렸던 현지 친구들이 미웠었는데, 이제야 아는건 누군가에겐 일상인 스마트폰을 어느 누군가는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았다는 점. 나한테 당연한게 모두에게 당연한게 아니구나 하고 그제서야 압니다.

그렇게 카페 밖으로 나가서 길거리 커피도 마시고 과일 주스를 마시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카페 밖의 미스 사이공들의 화장기 없는 얼굴이, 길가에서 이 과일이 맛있다고 손짓 발짓 설명해주시는 아주머니들의 미소가 너무 예쁩니다.

오토바이 아저씨들이 오토바이를 타라며 뻗은 손에 하이파이브도 하게 되고, 오토바이 아저씨 뒷목의 주름살도 유심히 보게 됩니다, 버스 옆 좌석의 할머니가 손에 꼭 쥐고 전통 음식을 드시는걸 가만 쳐다봤더니 한 입 주십니다. 그제서야 현지인으로 산다는 건 그 땅에서 산다는게 아니라 그 사람들과 산다는 의미라고 깨닫습니다.

첫 두 달간 카페 창문 밖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나님, 집 가고 싶어요”하며 불평을 했던 내가 삼 개월째에는 그 사람의 일부로 살아가면서 전과는 다른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는 모든 땅 주님 예배하게 하소서 라고요.

가끔 일상에 다른 문화, 다른 나이, 다른 언어, 다른 가치관의 사람들을 만날 때에, 베트남 생활을 생각해보곤 합니다. 나와는 다른 것들을 하나님 눈으로 보게 해주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더 다가갈 수 있게 해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