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꾸는 꿈

“목사님,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세요?”

지난 한달 동안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바로 이 질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0년간 나름대로 조용히(?) 목회하느라 별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뜬금없는 사임이야기에 놀란 지인들이 세계(?) 여러나라에서 안부를 물어오는 통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10년 동안이나 함께 하던 공동체를 갑자기 떠난다는 것 자체가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아마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돌아보면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전혀 알지도 못했던 어떤 집사님의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설교 한편을 준비해서 주일 아침에 타카푸나의 한 건물 2층에 위치한 작은 회의실을 찾았다.

거기에는 처음 보는 낯선 얼굴들의 성도들이 약 20여명 정도 모여 있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뜨거움을 가지고 예배를 인도해 줄 것을 부탁했고 나는 그날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다. 그것이 지금의 교회를 개척하게 된 신비스런 첫 만남이었다.

그 당시 그들은 어떤 한 교회에서 목회자와의 오랜 갈등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다가 마음에 큰 상처들을 안고 공동체를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이들과 함께 교회공동체를 시작하겠다고 하자 많은 선배목사님들이 우려했다. 목회자와의 갈등을 안고 모인 성도들과 30대 중반의 젊은 목사가 어떻게 리더십을 갖고 공동체를 이끌 수 있겠는가 다들 의아해 하셨다.

사실 이런 불편한 만남이 아름답게 마무리지어지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래서 시작부터 내 맘속에서는 그들을 위로하고 함께 가기 위해서는 결국 목회자가 떠나고 그들이 남는 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결코 한국의 유명한 어떤 목사님을 흉내내려는 의도도 없었다. 다만 우리 성도들이 상처를 넘고 일어서서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 절실히 그 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돌아보면 대단한 목회철학이나 신학적 근거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 공동체에 그것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그래서 우리는 3년마다 정기적인 재신임투표와 또 10년 사역 후에 담임목사가 분리개척한다는 약속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흐를 줄은…그렇게 오지 않을 줄 알았던 10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2017년 올해가 벌써 그 자그마한 건물 2층에서 우리 성도들을 처음 만나 예배하기 시작했던 바로 그 10년째가 되는 해이다.

“목사님~”

평소에 말이 없으시던 한 조용한 여자집사님께서 수줍게 손을 들고 의견을 내신다.

“네 집사님 말씀하세요”

평소에 공식석상에서는 수줍음이 많으셔서 의견도 잘 못 내시는 분이라 무슨 말이 나올까 다들 궁금한 얼굴로 바라 보았다.

“그런데요…… 지금 우리 중에는 그 약속할 때 있었던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꼭 그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까?”

생각지도 못한 의견에 그 심각한 자리에서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런데 사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성도들과 모두 10년의 시간을 보낸 것은 분명 아니다. 그래서 최근에 우리 교회공동체에서 본인들이 가장 억울한 사람들이라 주장하는 분들이 생겨났다.

우리교회에 나온 지 오래 되지 않으신 분들이다. 그분들은 담임목사와 교회가 10년에 대한 약속을 할 당시 있지도 않았고 게다가 자신들이 온 시점으로 따지자면 아직 10년이 안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다.

아무리 짧은 기간이라도 함께 예배하며 교제를 하다 보면 누구나 정이 깊게 들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쉬운 마음에 이런 저런 핑계로 떼를 쓰시는 분들도 더러 있다. 사실 이런 분들의 마음이 눈에 밟힌다. 미안하고 죄송하고 아쉬운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다.

차라리 성도들과 갈등이 생기고 서로 미워하고 싸우다 지쳐서 서로 헤어지는 편이 낫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있는 성도들과는 너무 많은 좋은 추억들이 있다. 그래서 이 결정이 서로에게 너무 힘든지도 모르겠다.

“오~ 하나님! 지금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간인가요?”“하나님! 지금 우리 교회 상황에서 이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헤어짐을 준비하며 매일같이 이 질문들을 머릿속에 되새기고 힘든 고민의 시간들을 가져왔다. 어떤 날은 용기를 내어 “그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또 우리가정을 위해 놀라운 일을 계획하실 것이다” 라고 결심을 했다가도 또 어떤 날은 그냥 주저 앉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결정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기만 했다. 이렇게 시간에 떠밀려서 결정하기 보다 좀 더 나를 앞에서 끌어 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강하게 필요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속에 있는 작은 소원함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발견했다. 한가지는 그동안 어렵게 공부하고 정리해서 목회현장에 적용해 보려 애썼던 선교적 교회에 대한 소원이었고 또 한가지는 지난 모든 사역을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랑을 쏟아 부었던 다음 세대에 대한 소망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이 두가지가 하나의 소망이 되어 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선교적 공동체!!!”

뉴질랜드에서 신학을 시작하며 나의 첫 사역으로 돌보았던 친구들이 이제는 모두 청년기를 넘어서고 있다. 아이들을 낳고 가정을 꾸린 친구들도 많고 직장을 갖고 해외로 나간 친구들도 많다.

이들을 생각하면 늘 마음에 무거운 부담이 있다. 이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고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멋지게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지금의 교회를 10년간 목회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어쩌면 이 부담감은 26살의 나이에 가족을 떠나 혼자 이민을 왔던 내 자신에 대한 연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5세대와 2세대들이 이 땅에서 영적으로 준비되었는가? 에 대한 무거움이 아직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에게는 새삼스런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리고 삶의 현장을 선교지로 여기고 직장과 가정에서 복음의 칼을 들고 공격(?)적이고 영적인 삶을 사는 교회 공동체가 바로 선교적 공동체이다. 놀라운 것은 이 두 가지가 만나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꿈이 생긴 것이다. 마음이 뜨거워졌다.

지난 10년간 나도 모르게 내 삶을 하나님께 던지고 내 생활과 내 가족을 하나님께 맡기는 일들에 얼마나 게을리 했는가가 깊게 느껴졌다. 복음을 위해 살라고 성도들에게 그렇게 떠들어 댔는데 결국 나도 10년간 얼마나 주저앉아 있었는가가 분명해졌다. 그러니 이제는 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 꿈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목사님~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세요?”

“아! 네 집사님! 하나님께서 다시 꿈을 주셨어요! 여호수아처럼 다음 세대들을 이끌고 선교적 공동체를 세워나갈 큰 꿈을 주셨어요! 함께 기도해 주세요. 이제 곧 그 꿈이 시작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