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산, 해 같이 빛나는 지도자로 빚어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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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역사를 만든다.
이스라엘은 모세가 필요했고, 모세는 이스라엘이 필요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민족에서 국가로 이끌었고, 이스라엘은 모세를 위대한 지도자 되게 했다.

한 시대의 위대한 인물이 탄생할 때 결코 우연히 탄생된 적이 없다. 역사가 사람을 불러냈고, 사람이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한 사람의 위대한 인물이 탄생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이들의 헌신과 희생이 동반되었다.

하나님은 한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만들어 질 때까지 기다리신다. 또한 그런 지도자를 수용할 수 있는 백성들이 성숙될 때까지 기다리신다.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애굽에서 탈출 한지 3개월이 지났을 때, 그들은 시내 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언약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제사장나라가 되어, 세계 모든 민족을 구원하는 세계선교의 백성이 된다는 피로 맺은 언약이다.

그리고 그 언약의 조건으로 제시된 것은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을 지키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십계명은 어렵고 힘들고 딱딱한 법전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법이며, 동시에 인간이 지켜가야 할 최고의 법’ 이다.

출애굽기 21-23장에 언급된 인간 존중에 관한 구체적인 시행세칙을 보면, 깊은 감동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법은 ‘생명 존중’과 ‘약자 보호’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하나님 나라는 ‘생명을 존중하고,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책임지는 사회’이다.

이웃을 경멸하거나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약한 이웃을 보호하고 돌보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하나님 나라이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하나님 나라가 왜 지금도 이 땅 위에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생명을 존중하고, 약한 자를 돌보는 나라를 세우는 것’을 이상적인 나라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그런 좋은 나라를 왜 못 세우고 있는 것일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바로 존중 받고 보호 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권리, 메시아로서의 권리를 존중 받고 보호받는 일을 거절하시고, 인격이 무시당하고 생존권을 보호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달려가 온 몸으로 ‘생명존중, 약자보호’의 삶을 살아내셨다.

‘생명존중, 약자 보호’라는 법을 모세와 이스라엘이 최초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그런데 모세는 준비되었지만, 백성들은 그 법을 소화해 낼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으로 애굽을 탈출 한 후 3일이 지났을 때 마라에 도착했다. 마라에서 쓴 물을 만나자 백성들은 그 목마름의 갈증을 참지 못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다.

출애굽 한 달이 지나자 이번에는 애굽에서 준비해간 식량이 떨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도를 넘어 돌을 들어 모세를 칠 기세였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서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받는 일에 전념했다.

그런데 백성들은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낸 우리의 신이다’라고 외치며 먹고 마시고 춤을 추면서 금송아지를 섬겼다. 그들을 구원한 하나님을 경멸하는 행위를 했다.

산에서 내려와 그 모습을 확인한 모세는 하나님께 받은 두 돌 판을 던져 깨뜨리고 금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로 만들어 모든 백성들에게 마시게 한 후, 모세 편에 선 레위지파를 칼로 무장 시켜 3천명 가량을 처단하는 끔찍한 처벌을 시행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을 진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진노하심 앞에 엎드려‘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라는 영혼을 건 중보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회복의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모세의 영혼을 건 중보기도로 회복되기 시작했고, 모세는 처음의 것과 같은 두 돌 판을 준비하여 시내산에 다시 올라가 다시 40일간을 머물렀다.

다시 40일간의 공백이 생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오른 모세를 끝까지 잘 기다려냈다. 백성들의 기다림, 그것이 모세를 모세 되게 했다. 첫 번째 40일은 백성들이 모세를 기다리지 못해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민족 전체의 위기와 분란을 초래했다.

그런데 두 번째 40일간은 기다림에 승리했다. 40일간의 리더십 공백을 잘 소화해 냈고, 잘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는 해같이 빛나는 광채가 빛났다. 왜 첫 번째 40일간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왔을 때는 광채가 나지 않았을까?

지도자가 아무리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거룩한 뜻을 받았어도 백성들이 지도자를 기다려 주지 못하면, 지도자의 얼굴에서 빛이 날 수가 없다. 그러나 거룩한 뜻을 세운 지도자와 지도자를 기다려주는 백성들의 성숙함이 이루어질 때, 해같이 빛나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스라엘의 기다림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출애굽기 35장 이후부터는 갈등이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그대로 장막이 제작되었는데, 백성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재물을 바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재능을 바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막을 제작했다. 더디 내려오는 지도자를 기다려 줄 수 있는 성숙한 백성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출애굽기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 40: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로 끝을 맺는다.

모세는 성숙하지 못한 백성들을 사랑으로 품어냈고, 백성들은 더디 내려오는 모세를 기다려주는 성숙함이 이루어졌다. 한쪽만 준비된 것이 아니다. 지도자도, 백성도 모두 준비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해같이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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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관
크라이스트처치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이다. ‘오직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 모든 것들이 새롭게 살아나는 새로운 종교개혁을 꿈꾸며, 성경일독에 맞추어 ‘통성경 통설교’를 13회 동안 연재하면서 성경을 함께 읽으며, 같이 공감하고, 같이 깨닫고, 같이 울고 웃으며, 같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