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도전

첩보 부대원을 선발하는 막사 안에는 긴장이 감돈다. 끝 간데 없는 줄은 줄어 들 줄을 모른다. 지원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생사를 초월한 냉정함이 가득하다.

“북한괴뢰들에게 나라를 넘겨 줄 수가 없어요. 내가 죽음으로 꼭 지켜야 할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한번 죽지 두 번 죽는가. 나라가 있어야 가정도 있다. 국가의 부름이라면 목숨을 바칩니다. 우리 가족들이 적들에게 몽땅 사살당했어요. 원수를 갚으려고 지원했어요.”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지원이유는 적에 대한 미움과 증오심이다. 연전연패의 전선을 소생하게 하는 필승의 한판은 이렇게 시작된다.

1950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이다. 당시의 상륙작전의 성공 확률은 5,000분의 1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치인, 군사전문가, 언론까지 한통속이 되어서 가능성을 아예 0로 만든다. 조수 간만의 차이가 심하다. 많은 병력이 일시에 상륙하기는 어렵다. 자연적인 조건도 안된다.

이 거대한 상륙 작전을 성공적으로 만든 동력은 무엇일까. 어릴적에 인천상륙작전을 배울 때 사회 교과서에 실린 맥아더 장군의 사진은 결코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었다. 전투모를 삐닥하게 눌러 쓰고 파이프 담배를 문 모습은 세계의 전쟁 판을 호령했던 영웅의 면모가 가득하다.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한 호국의 은인이다. 저들의 붉은 역사는 1950년 6월을 의미 있는 해로 기록하고자 했다. 인천상륙작전은 붉은 군대의 전선행진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된다. 밀리던 전세는 역전이 된다. 전의를 상실한 국군은 용기백배 한다. 삽시간에 역사의 물줄기는 자유 대한민국으로 향한다.

훗날 역사가들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이렇게 기술한다. 맥아더 장군 한 사람의 신념과 판단력, 그리고 대한민국을 구하고자 했던 그의 인류애이다. 6.25 남침 전쟁으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거덜난다. 아군은 괴물 같은 적 전차에 무수히 얻어 터진다. 지휘관은 도망가고 여기저기 사상자는 넘친다. 아비규환이다. 지옥이 따로 없다.

부산을 제외한 전 지역이 북괴군의 수중에 넘어 간다. 자유민주주의는 산산 조각이 난다. 방화, 약탈, 살인, 강간, 재산몰수, 숙청, 인민재판이 시작된다. 적들은 살생부에 명시된 순서대로 피의 잔치를 한판 벌릴 것이다.

이때 장군의 머리에 스치던 한 장면이 있다. 죽어가는 한국소년병사가 총과 실탄을 달라던 그 처절한 모습이다. 북괴군에게 계속 얻어 터지고 밀리던 전선을 장군은 유심히 살핀다. 이때가 6월 29일이다. 그리고 계속 밀리던 전선을 되돌려 승리의 전선으로 재편하는 구상도 이때였다고 한다.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 오는 적의 허리를 분질러버리면 승리는 아군의 것이다.

변동 많은 세계의 역사는 리더들의 연출과 주연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역사의 창조는 리더의 직관과 투철한 사명감과 인류애를 요구한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국민교육헌장의 첫 구절이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물 설고 낯선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에 발 딛고 산지가 얼마인가. 의식주가 해결되었다. 자식들은 최고의 교육을 받고 건장한 사회인이 되었다. 교민공동체는 나날이 발전해 간다.

그런데 늘 한가지가 부족하여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나와 내 가정과 내나라 내 동포를 잘살게 해준 이 나라에 보답하는가. 옛말에 결초보은이 있다. 은혜를 입으면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다. 이 고민의 해답이 사랑의 쌀 나눔 운동이다.

운동을 제창하고 홍보하던 2012년만해도 귀담아 듣는 이가 별로 없었다. 장애인사역이나 제대로 해라. 뉴질랜드는 복지 천국이다. 국가가 얼마나 혜택을 주냐. 행정당국에서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 뉴질랜드에도 그렇게 어려운 사람이 있나. 교민경제가 얼마나 어려운데 모금이나 되겠어. 사면팔방이 비관이다. 부정적이다. 고개를 가로 젖는다. 요즈음 신세대가 쓰는 말로‘개 무시’ 한다.

시내 노숙자 무료급식소를 한동안 섬겼을 때다. 매주 토요일 점심때가 되면 여기저기서 모여 들던 노숙자들의 모습이다. 식사 한끼를 받아 들고 나가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서 격려 해주던 모습이다. 너희들이 최고이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여, 6.25 전쟁통에 적의 총부리에 죽어가던 내 고향의 삼촌, 고모, 선배들의 모습에서 자유가 무엇인지를 배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해마다 5월 보리고갯 때면 여기저기서 굶어 죽었던 송장들을 보았다면 배부른 소리들을 해댈까.

자유와 복지는 자유민주주의 체재의 양날과 같은 것이다. 자유가 없는 복지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사랑의 쌀나눔 운동은 먹는 자유가 제한된 이들에게 빵과 먹거리를 나누는 사랑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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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만
춘천교대와 단국대 사범대 졸업, 26년간 교사생활을 했고 예장(합동)에서 뉴질랜드 선교사로 파송받아 현재 밀알선교단 5대 단장으로 9년째 섬기며 뉴질랜드 사랑의 쌀 나눔 운동본부에서 정부의 보조와 지원이 닿지 않는 가정 및 작은 공동체에 후원의 손길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