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모스크 앞에 세워진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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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지? 아무리 최저가 항공사라고 해도 이건 너무 하잖아. 헉! 나…지금… 시리아 상공을 날아가고 있는건가?’

맞다. 아무 의심의 여지없이 온라인으로 예약한 요르단 암만발 레바논 베이루트행 ‘Middle East Airline’(레바논 항공사) 비행기표 덕분에 나는 지금 지구촌 모든 나라를 통틀어 가장 비참하고도 잔인한 내전으로 신음하고 있는 전쟁의 땅, 시.리.아 상공에 떠있었다.

최대한 교통 비용을 절감해야하는 장기 배낭여행자로서 온라인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는 가장 저렴한 항공사를 이용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얼마전 시나이반도에서 테러를 당해 추락했다고 추정되는 이집트 에어, 엉망인 시설관리 덕분에 좌석이 뒤로 제껴지지도 않는 우크라이나 항공, 하늘에서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버렸다는 말레이시아 항공, 모두 다 가리지 않고 이용해오던 나였다. 왜? 싸니까! 그런데… 여행을 시작한지 200일을 코앞에 둔 오늘, 난 몹시 후회하고 있었다.

이 겁없는 비행기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로부터 80여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는 거리의 하늘 한복판 어딘가를 비행중임을 기내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었고 덕분에 나는 간절히 주님께 기도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저의 모든 여정을 안전하게 보우하사 머리털 하나 상치않게 지켜주신 주님.. 이 비행기를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 또한 믿습니다. 앞으로 제가 더 잘 할게요, 주님!”

신령과 진정으로 올려드린 기도 후에 눈을 뜨고 옆을 둘러보니 스튜어디스가 밝게 웃으면서 아침식사를 서빙중이었다. 그리고 아주 느긋한 표정의 아랍 각지역에서 온 여행자들이 신문을 보고 있거나, 요거트를 먹고 있거나, 곤히 자고있었다. 이들 중엔 시리안들도 분명히 있을테고…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Beirut) 공항 활주로에 비행기 바퀴가 닿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휴,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잘 할게요!”

중동의 파리라고도 불리우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이집트와 요르단에서 만난 선교사님들을 통해 수시로 들었던 레바논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중동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다, 아랍국가들 중 가장 개방적이다, 중동 지역에서 시리아와 더불어 음식이 가장 맛있는 편, 교육수준도 뛰어나 아랍지역에서 가장 콧대가 높은 사람들’ 등의 설명으로 과연 어떤 곳일지 호기심이 가는 땅이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시돈과 두로, 그리고 바알신 우상숭배의 헤드쿼터, 솔로몬왕의 성전 건축 당시 사용된 백향목의 근원지로 알려진 르브난 (현지식 발음), 이제 이곳을 직접 발로 뛰며 알아가보자 힘차게 다짐하고는 숙소로 향하는 택시에 올랐다.

일단 택시의 퀄리티부터가 이집트와 요르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안전성과 품격을 뽐낸다. 택시가 이렇게 고급지다니! 미터기가 제대로 작동하네! 교통법규를 지키네! 게다가 이렇게 깨끗할 수가.

샌들을 신고 껌을 씹으며 성의없이 운전하는 애굽의 거친 기사 형님들과는 달리 말끔한 하얀색 셔츠와 택시회사 로고가 새겨진 스웨터를 단정히 차려입은 은발의 레바논 택시기사 아저씨는 참으로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래, 물가가 좀 비싸면 어떤가. 택시기사와 매번 흥정으로 인한 침튀기는 신경전을 벌이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맘이 평온해졌다.

‘쿠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의 모든 신뢰를 얻었던 불어와 아랍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 믿음직스러운 기사 아저씨가 길가 코너에 낮게 세워진 쇠기둥을 보지 못한 채 들이받아버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주 좁은 골목길이라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 기사 아저씨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택시비를 다 받지 않고 할인해주었다. 숙소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고가 났기에 천만다행이었다.

시리아 상공을 넘어 날아왔더니 도착하자마자 차사고라니… 뭔가 좀 찜찜했지만 그래도 감사했다. 다치고 않고 멀쩡히 살아있지 않은가!

주변국 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광객들도 적고 잘 알려져있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배낭여행자 호스텔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내가 짐을 푼 숙소는 베이루트 시내에서도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패션, 카페, 바들이 몰려있는‘마 미카엘’이라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아랍국가들 중 가장 높은 기독교인 인구를 자랑하는 레바논 (국민의 40프로 가량), 수니파와 시아파 인구를 합친 무슬림 인구에는 못미치지만 오래전부터 기독교의 영향력이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매우 컸던 특이한 아랍국가라고 한다.

이슬람을 국교로 채택하지 않은 아랍 국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나라였기에 아직도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요즘 젊은이들은 영어도 유창하게 한다. 놀라울 정도로 세련된 시민들의 패션 감각, 특히 자유로운 여성들의 ‘No 히잡’ 패션은 과연 ‘중동의 파리’ 라는 표현을 실감케했다.

이 번화가에서 잠시 만나 대화를 나눈 레바논 한 대학생은 아랍어, 불어, 영어 3개국어를 구사하지만 불어는 웬만해선 쓰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프렌치해서 싫어”

몇 주 전 발생한 프랑스 파리 테러사건 이후 프랑스를 애도하는 세계인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졌고 심지어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이 프로필사진을 프랑스국기로 바꿀 수 있도록 배려까지 하였으나 불과 그 사건 하루 전에 발생했던 베이루트 자살 폭탄 테러사건에 대해서는 그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짧게 지나가는 몇십초의 보도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 미디어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식민지었던 이들이 상대적으로 소외감과 분노를 느꼈을 심정이 괜히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세상에 전쟁과 테러가 당연시 되는 땅은 없다
무슬림도, 유대인도, 불교인도, 힌두교인도, 기독교인도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사람들이고 그 어느 한 사람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부터 마땅히 제외되는 저주속에 살아가는 것은 당연치 않은 것이다.

베이루트 다운타운 한복판 큰 길가로 나오자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 나의 발걸음과 시선을 멈추게 했다. 큰 모스크 바로 앞에 세워진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

크리스마스트리를 감싸며 반짝거리는 아랍어 성탄메시지는 마치 바로 앞에 마주한 모스크에게 말을 걸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테러와 전쟁, 그리고 난민 대란으로 가장 큰 혼란을 겪고 있는 중동의 한복판에서 나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태어나심과, 다시 오실 주님의 그 날을 더욱, 더욱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