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0
315

kim_bible_title1

본문
“이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6장9-10절)

의역 NIV 영역 성경을 우리말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본다.
“그렇다면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이름이 거룩해 지시며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고 하늘에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영어성경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t is in heaven.”(Matthew 6:9 -10, New International Version)

단어공부
Heaven: 천국, 천당, 하늘나라, 낙원, 하늘 Hallowed: 소중한, 신성한, 거룩한 Kingdom: 왕국, 나라, 제국

말씀의 나눔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라고 시작이 되는 NIV 영역성경은 이것을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이라 표현하며 주기도문은 ‘무엇을-What’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How’ 곧 기도하는 방법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만약에 이것이 ‘How’가 아닌 ‘What’이었다면 이 기도는 우리가 오로지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도가 될 뿐 아니라, 계속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헬라어 원문에 이 문장의 시제가 현재형으로 적혀 있다는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이 기도는 지금 예수의 산상설교를 듣고 있는 그 청중들이 이후 언젠가 해야 하는 기도가 아니라 지금, 그리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잘 말씀해 준다.

더 나아가 예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기도자는 자신의 것만을 짊어지고 가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즉 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안에 함께 지체된 무리들의 짐까지도 짊어지고 가는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기도한다는 것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또 하나의 큰 사역임을 알게 한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 즉 “Kingdom of God” 라고 하는 표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 또는 “아빠” 와 같이 표현하지 않았던 것처럼 역시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 또한 유대인들의 전통과 구약성경 가운데에도 단 한번도 사용된 일이 없는 신생어라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왕이시라는 표현이라든지 만왕의 왕으로서의 그분의 다스림에 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의 중심 사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 하심을 이렇게 “Kingdom of God-하나님의 나라” 라고 하는 특별한 표현으로 정형화 시킨 사례는 이전에는 단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자신의 산상설교를 듣고 있는 청중과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 라는 전혀 새로운 표현을 사용하시며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이 땅 가운데 임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 말씀하시며 또한 그것을 그들의 기도의 주된 목적으로 삼을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기에 예수는 자신의 설교를 듣는 청중들에게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표현으로 자신의 뜻을 알리고자 하신 것일까?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러한 유대인들도 그들이 늘 회당에서 설교가 끝나고 함께 낭송했던 “카디쉬(Kaddish)”라는 기도문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주기도문과 비슷한 내용이 그 안에 담겨져 있었던 것을 보게 된다.

“당신들의 생애와 그리고 당신들의 날들에 그리고 이스라엘 집안 전체의 생애에 그분의 나라-His Kingdom가 신속히 그리고 곧 세워지기를”. 하지만 이 카디쉬 기도문 가운데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그분의 나라-His Kingdom” 라는 단어와 주기도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하나님의 나라-Your Kingdom” 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먼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기도문에서 하나님을 3인칭 소유격으로 말하고 있는 반면 예수님께서는 2인칭 소유격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칭의 변화는 나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실질적 관계의 차이를 말한다. 따라서 3인칭 보다 2인칭으로 말할 때 나와 상대방인 그 사람과의 관계는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께서 하시고자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3인칭의 존재가 되시는 분이 아니라 더 가까운 2인칭의 관계로서 존재하고 계시는 분이며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라 부를 수 있으며 또한 “그분의 나라” 가 아니라 이제는 감히 “당신의 나라” 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곳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것이기에 이토록 우리가 절박하게 간구하여야만 한다는 것인가?

그 해답이 바로 탕자의 비유를 말하고 있는 누가복음 15장 24절과 32절 말씀에 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때 탕자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고 하는 말씀과 더불어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설명하고 있다.

왜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났다고 말하고 있을까? 그것은 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남으로 파괴되었던 부자지간의 관계가 다시 완전하게 회복되었음을 선포하는 히브리적 표현이다.

따라서 주기도문 가운데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의 임하심을 구하는 것은 우리가 다시금 하나님의 보호 아래 들어가 그분의 다스림을 받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회복을 의미한다.

아담의 타락 이후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삶을 살아 왔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가 수많은 잘못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스스로를 돌이킬 힘이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변화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그리고 왕으로 섬기며 다시금 그분의 통치 아래에서 그분과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가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와 또한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있는 모든 민족과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의 통치하심 아래 들어가 하나님의 다스림과 그분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이 주인이 되며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즉시 우리 가운데 오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가 땅에 뿌려져 오랜 시간에 걸쳐 자라고 결국 그 가운데 새들이 깃들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하는 것과 같은 기나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본문의 단어로 배워보는 영어 한마디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The United Kingdom put New Zealand under its colonial rule.
영국은 뉴질랜드를 식민 통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