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3일, 우리 부부가 형석이, 형은이 그리고 늦둥이 막내로 6개월을 갓 넘긴 형찬이와 함께 뉴질랜드에서 출발한 통가행 비행기 트랩을 내리면서 느꼈던 그 후덥지근함, 답답하고 생소하고 불안했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교사로 파송을 받으면서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를 힘차게 부르지만 막상 선교지에 도착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지금껏 살던 나라보다 못 살고, 더럽고 불편하고, 아이들 교육은 또 어떨지 걱정이 앞서게 된다.
보통 선교지에서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네’ 하며 불평하기 보다는, ‘이런 것도 있네’ 하면서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데, 통가가 꼭 그랬다.
이제 돌아보니, 주님께서 기후도 극복하게 해주셨고, 아이들도 열심히 공부하게 하셨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고, 앞으로도 채워주시리라는 믿음이 있다. 그만큼 성장했으니 감사할 뿐이다.
사역 초기에 통가 라디오방송국에서 아침시간에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통가인 친구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바카(Vaka)라는 이름의 젊고 믿음직한 기독교인 청년이었다.
통가인들에 대해 한가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생각나 그에게 질문하였다.
나: 내가 알기로는 통가사람들은 불행이 닥치면 그 원인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한다는데 사실인가요?
바카: 맞아요. 우리에게 불행한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지요.
나: 그렇다면 장애아동을 가진 크리스천 부모들도 죄의식을 가지고 있나요?
바카: 그들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이에게 벌을 주셨다고 생각하지요.
나: 그럼 죄의식과 수치스러움이 대단하겠군요.
바카: 일생을 죄인처럼 수치 속에서 살아가지요.
나: 장애의 원인은 사고나 바이러스의 침입 또는 의사의 부족 때문일 수도 있는데요?
바카: 그래도 그렇게 된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하여졌는데도 계속 죄의식을 가지고 삽니까?
바카: 우리가 계속 죄를 짓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징벌을 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교통사고든, 병에 걸려 죽든지, 불행을 겪는 모든 통가인들은 예외 없이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와의 대화는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였다.“예외 없이”라는 그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한말은 나의 기도 제목이 되었고, 우리가 함께 감당해야 할 사역의 목표가 되었다.
너무 또렷이 들려서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는 주님의 음성이 있다.
“내가 팔이 아프고 지쳤다. 누가 와서 나를 도와줄까?”
이 말은 내가 사역초기에 어느 장애인의 가정을 방문하고 그 비참함에 울면서 그 집을 나설 때 주님께서 내 마음에 들려주신 말씀이다.
그 가정은 우리의 방문요청을 여러차례 거절하였다. 마침내 겨우 허락을 받고 가정방문을 할 수 있었다. 그 집에는 연로하신 어머니가 장년의 두 장애인 아들들을 돌보며 살고 있었다. 가난한 나라 통가에는 이렇게 나이 든 장애인 자녀를 일생토록 침대에 눕혀놓고 돌보며 사는 나이 드신 부모님이 많다.
컴컴하고 냄새나는 움막 같은 방에 들어서니 오른 쪽에 하얀 분말로 뒤범벅된 더러운 매트리스 2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름이 깊게 패이고 야윈 얼굴의 노모는 휠체어에 앉힌 아들의 옷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도 못한 채 당황스런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 아들은 바지도 입고 있지 않았다. 두 아들은 무더운 날씨에 피부가 짓무르는 것을 막으려고 땀띠 분을 잔뜩 뒤집어 쓰고 있었다. 한 눈에 두 아들 모두 심한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큰 아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우리를 연신 쳐다보았고, 매트리스에 누워 있는 작은 아들은 뒤틀린 몸을 연신 흔들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파우더에 뒤범벅이 된 누워있는 작은 아들의 몸을 쓰다듬어 주며 기도하다가 갑자기 눈 앞이 흐려졌다.
수 십년 동안 이 방에서 이런 모습으로 살아왔을 이 장애인들과 평생 이들을 힘겹게 돌보아왔을 노모의 삶을 생각하니 그 가정의 비참함에 가슴이 메어졌다. 몸을 쓰다듬어주자 작은 아들이 비명을 멈추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그 눈을 마주 보다가 결국 더 있지 못하고 그 방을 나왔다.
그 방을 나와 밖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내 마음속에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인권아, 너는 저 노모의 모습 속에서 나를 발견하지 못했느냐? 내가 몇 십년 동안 저들을 돌보며 파리를 쫓는 일이 너무 힘들구나. 나는 팔이 아프고 지쳤다. 누가 와서 나를 위해 이 일을 해줄까….”
이 주님의 음성은 우리 사역의 목표를 가리키는 방향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