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바누아투 산토섬에서 선교사역을 하셨던 선교사가 계셨다. 그 분은 그곳에서 7년을 사역하면서 아내를 풍토병으로 잃었고, 본인도 몹시 지치고 힘든 가운데 호주로 돌아가서 휴식을 했어야만 했다. 선교에서 은퇴를 해서 다른 일을 해도 충분한 헌신과 사역을 이미 끝낸 후였다.
그 선교사는 회복을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한국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국이란 동양의 작은 나라에 나병환자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을 위해서 헌신하며 복음을 전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분은 이 긴급한 요청을 마음에 새겼다.
건강이 회복된 후에 그는 다시 산토섬으로 돌아와서 1년 후에 바누아투 사람들에게 “Korea” 로 선교를 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해안 부족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 다른 그 어떤 나라를 가본 적도 없었다. 아니 바누아투의 그 많은 섬들을 배 타고 가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선교사의 말을 듣고 그분 모르게 조금씩 헌금을 모았다. 아마도 본인들에게 보여준 사랑과 헌신, 그리고 아내까지 잃은 선교사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꼈던 것이라 생각한다.
선교사가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 선교사가 세운 여러 교회에서 교인들이 와서 200파운드를 건네 주었다. 한국이란 들어 본적도 없고 가본적도 없는 나라로 선교하러 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하면서…
지금으로 계산하면 약 2, 500만원 정도이다. 호주 출신으로 산토섬과 한국에서 평생 복음을 전파한 이 선교사의 이름은 제임스 노블 매켄지이다.
산토에서 10년째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아직도 매켄지 선교사를 통해 칭찬을 받고 있다. 서해안에서 사람들은 노래를 만들었다.
“매켄지 선교사가 이곳에서 고생하고 한국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그 열매로 원선교사가 산토섬에 왔다.”
그들이 100년 넘게 들어왔던 Korea에서 선교사가 와서 그 마을을 방문했을 때, 분명 남 다른 느낌이 많았을 거다.
난 이런 모든 것을 모르고 서해안을 방문했고, 오히려 “왜 사람들이 이렇게 가는 곳곳마다 춤, 노래, 음식, 나를 보러 온 많은 사람들, 그리고 긴 연설로 환영을 하지?” 의심만 했다.
산토 부족 선교는 매켄지 선교사와 같은 분들이 1890년도에 산토섬에 와서 시작한 선교의 마지막 부분이다. 그 당시에는 나라 전체가 부족이었다. 개발된 지역이 없었다. 해안가 선교가 발달한 이유도 산속의 부족 사람들의 카니발리즘(사람을 잡아 먹는) 때문이었다. 안전을 위해 바닷가에 선교 본부가 세워졌고, 이 선교 시설로 사람들을 모았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고 지금은 그런 시대가 지났지만, 아직도 산속에는 그 당시의 문화와 같은 모습으로 사는 부족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은 나라의 공용어 보다는 부족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글이 없는 나라이어서 모든 역사, 문화, 가족, 전통을 기억할 수 있는 정도만큼 표현한다. 추장을 중심으로 자급 자족이 이루어지고 있다. 부족 선교는 조심스러운 것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cross-culture가 한번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많은 부분에서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여러 번 발생한다.
10년을 부족선교를 하면서도 가끔 “정말?” “그래요?” “와” 하면서 아직도 모르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산토부족 선교는 쓰여진 책자나, 정보, 기록, 신문, 영상의 자료가 없다. 그래서 직접 경험과 체험을 하지 않고서는 어디서 듣지도 못한다.
그리고 부족 선교에 대해서 조언을 해 주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있다면 바로 “추장”들이다. 부족 문화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 이 사람들의 도움이 부족 선교에 큰 영향을 미친다.
2017년에는 35명의 선교사들이 여러 다른 섬에서 와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지난주 일주일 동안 첫 번째 컨퍼런스를 시작으로 사역이 시작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수줍고 말도 잘 못하고 그저 조용한 시골의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일하시리란 기대가 된다.
올해에는 어떤 마을에서 복음의 열매들을 맺을까? 누가 제자가 될까? 세례식은 어디에서 일어날까? 교회개척은 언제쯤 이루어지나?
80개 마을에서 복음을 들고 산을 넘을 선교사들의 발은 비록 찢기도 다치고 때론 여러 가지 모양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 뒤에 복음의 열매를 거둔다고 생각하면 짜릿한 소망이 있음을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