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질랜드 아동들의 빈곤에 관한 우울한 보고서가 발표되었습니다.
뉴질랜드 내에서 155,000명의 아동들이 옷, 신, 음식, 난방기구 등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7가지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물적 빈곤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뉴질랜드 아동들의 14%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8%에 해당하는 85,000명의 아동들은 그보다 더 심각한 9가지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물적 빈곤을 겪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아동들 4명 중 1명은 저소득 가정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약 295,000명이며 이는 뉴질랜드 아동들의 28%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저소득이란 중산층의 소득 보다 60% 이상 적은 경우를 말합니다. 마오리나 퍼시픽 아일랜더의 경우 3명 중 1명이 저소득 가정이며 유러피언 백인들의 경우 6명 중 1명이 저소득 가정입니다.
80,000명의 아동들이 아주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습니다. 이들은 저소득 가정에서 자라면서 심각한 물적 빈곤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사실 뉴질랜드 가정 중에서 5%가 극심함 빈곤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1982년 저소득 가정은 18%였습니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28%로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수치적으로 경제가 성장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빈곤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린 시절 지나치게 심한 빈곤에 시달린 아이들은 자라면서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고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은 더 늘어나게 될 것이기에 사실은 그들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겪는 문제입니다.
이번 통계 발표를 두고 어린이 위원회 러셀 윌스는 “이것은 단지 정부에게 주어진 일만이 아니라 전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 이라면서 “어린이 빈곤 문제는 가정 우선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통계를 보면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부도, 어른들도, 부모들도 그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빈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결코 단순하게 다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하튼 우리는 어른으로서 또 부모로서 그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도록 지켜주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세월호’에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 생각이 났습니다. 2014년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수학여행을 가던 245명의 단원고 학생들이 끝내 구조되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 속에서 숨졌습니다.
세월호 침몰을 놓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습니다. 유가족들이나 살아남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많은 질문들과 상처들이 그들을 고통 속에서 살게합니다. 분명한 것은 어른들이 그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자신의 목숨을 대신해서라도 지켜야했던 어린 국민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침몰 후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을 놓고 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그분은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한 대통령이었습니다.
성탄절입니다. 우린 대통령이 아니니 나라를 지키지는 못하겠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따뜻하고 행복한 성탄절을 보낼 수 있도록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의 의미를 삶으로 살아내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