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뉴질랜드, 베트남 그리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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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하노이 공항의 커다란 창문을 통해 보이는 산이 반갑게 느껴졌다. 산과 들이 없이 빌딩숲과 열대림만 무성한 싱가포르에 살다 보니 산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가 되는 듯 했다.

‘하노이’는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왜냐하면 베트남에서 20여 년 이상 NGO 활동을 하고 있는 뉴질랜더 R이 사역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웰링턴에 살 때만 해도 몇 년에 한 번씩이라도 그녀를 만날 수 있었지만, 내가 뉴질랜드를 떠나 싱가포르로 이주하면서 10년이 넘도록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후원하고 있는 그녀의 사역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하노이’의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20여 년 전 웰링턴에서 현지 침례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을 때 베트남에 파송된 R의 사역 보고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유치원, 장애인, 농업, 축산업, 교육, 해외지원 확보 등 하노이의 지역공동체 발전을 위해 열심히 사역하고 있는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아련한 기억 속에 잊혀졌던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대해 새로운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내면 한구석에 묻어 두었던 감정들이 되살아 나서 마음이 울컥했었다.

초등학교 때 파월장병 아저씨께 라는 위문편지를 자주 썼던 기억과 베트남전을 계기로 한국이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 등에 대한 기억들이었다. 그러나 실은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던 미안함과 빚진 마음은 파월 장병으로 인한 수많은 한국계 사생아들 ‘라이 따이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관심과 무책임함이 한국인 크리스천의 일원으로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을 폐허로 만들었던 6.25 전쟁 이후 생겨난 많은 전쟁고아와 미국계 사생아들은 미국 크리스천들에 의해 수많은 미국가정에 입양된 것과 대비되는 현상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대비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이며 세계에서 큰 대형교회를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이 부분에 대해 베트남에 공식적인 사과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것이 더욱 부끄러웠다. 식민지와 내전을 겪었다는 역사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공통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종국에는 공산화가 되었다는 것을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곳에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빈민가에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R의 선교보고를 듣게 되면서 뭔가 내 마음 안에 실마리를 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직접 갈 수 없는 곳에 누군가가 가서 그들을 돕고 있다는 것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드디어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다. 시내로 들어가는 중간에 넓게 펼쳐진 평야가 인상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내에 우뚝 서 있는 하노이의 랜드마크는 바로 한국이 지은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으로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 기업과 공장들이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양국의 경제협력이 증대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대기업의 진출로 한국의 기술력과 자본 그리고 베트남의 젊은 인력들이 함께하여 이루어낸 발전상을 바라보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공식 출장 일정을 끝내고 마지막 날 선교사 R과 함께 사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녀가 안내한 곳은 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였다. 그들을 위해 새로운 보금자리로 기숙사 건물을 새로 지었다며 흐뭇해 한다. 그리고 장애자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대학진학을 돕고 있는 프로젝트의 현장을 볼 수 있었다. 뉴질랜드의 성도들이 보낸 후원금과 유럽의 몇 몇 나라의 자선단체에서 보내오는 자금으로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또 빈민가의 유아원을 방문하였다. 더운 바람만 나오는 선풍기 몇 대에 변변한 장난감도 없는 초라한 공간이지만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들이 잘 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일터에 나가있는 부모들은 그래도 유아원에 보모가 있어서 안심하며 일을 나갈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 다음 안내를 받은 곳은 돼지를 키우는 양돈 농가이다. 돼지의 배설물을 모아 메탄가스를 발생시켜 주방용 연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농가에 무료시설을 해주고 있었다.

또한 농가에 수익증대를 위해 농산물의 품종개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역들도 하고 있었다. 또한 정부기관의 관료들인 공산당원들과 대화와 소통이 탁월한 그녀의 능력이 한층 돋보였다. 이곳 저곳에 있는 사역현장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그녀는 이렇게 다양한 일들을 해낼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북섬의 마스터톤 출신인 그녀가 그곳에서 펼치고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녀가 뉴질랜드라는 나라에서 태어났고 성장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하면서 접했던 농업과 낙농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뉴질랜드라는 환경 속에서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었던 일이었으며, 창의적인 사고력과 다양한 프로젝트의 기획력과 협력의 기술은 뉴질랜드에서 받은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전세계의 복지기관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충분한 영어 소통능력 그리고 다문화사회인 뉴질랜드에서 쌓은 다양한 인간관계들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세계각국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지 환영받는 뉴질랜드의 여권이 말해주듯이 국가적으로 폭넓은 외교관계와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 또한 한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하노이 방문을 통해서 뉴질랜드의 한인 차세대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교민의 자녀들은 이제 세계를 향해서 나갈 때 그 나라가 선진국이던 개발도상국이던 또 어떠한 인종이 사는 나라이던 어떤 종교이던 관계없이 진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위에 열거한 뉴질랜드의 장점뿐만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가진 근면과 성실함과 열정, 그리고 어려움을 겪었던 나라들을 품을 수 있는 역사적 고난을 통한 훈련이 특히 어려움을 겪는 나라와의 공감대를 갖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앞선 과학기술과 무역 더불어 한류와 한국의 문화유산들은 세계인들에게 다가가기에 이 시대에 걸 맞는 적합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한국계 뉴질랜더들이 가진 블루오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함께 동행하던 베트남 청년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TV를 통해서 많은 한국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며 짧은 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에 대해 많은 부러움과 동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한국의 피가 섞인 혼혈아들을 우선으로 채용하는 한국기업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라이따이한’ 들이 한국을 ‘아버지의 나라’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가난과 배고픔과 질병으로 고통 받으며 살았던 한국의 반세기전 역사를 돌아보면 놀라운 한국의 발전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자녀들이 전세계 어디든지 가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