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여정에 필요한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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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행 자체다”-어슐러K. 르귄
전 여행을 참 좋아합니다. 여행 계획을 하는 그 시간부터 이미 여행의 짜릿한 즐거움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여행을 해 볼수록 새로운 곳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것의 즐거움, 즉 여행지의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새로운 만남을 경험하는 그 즐거움 외에 어디를 가든 느끼는 여행 자체의 즐거움을 더욱더 만끽하게 됩니다. 바로 여정 자체의 즐거움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생활의 터전이며 매일 지나치는 지긋지긋한 출퇴근길이 여행자에게는 여유를 만끽하는 자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여행 중에 거쳐가는 길이나 여행의 과정, 즉 여정 자체가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회복의 여정에서도 증상의 완화나 완치와 같은‘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곳에 다다르기까지의 모든 과정 또한 의미있는 중요한 시간들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심한 우울함이나 지속적인 불안감, 환청이나 망상 등에서 오는 괴로움이 마냥 계속되도 괜찮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아픔과 어려움이 긴 여정을 통하여 그 당사자에게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힘과 능력이 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자신과 남에게 희망이 되는 바로 그런 원동력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일들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도 그 괴로운 여정의 한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면 이럴 때 필요한 것은‘사실’이 아니라‘공감’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그 괴로운 상태에 머물며 그 불편한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 그것에 대한 이유나 설명을 더하기 보다, 해법을 제시하고 재촉하기 보다, 그 사람을 위한 소망을 대신 품고 기다리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되는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럴때 마다 전도서 4장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장 11-12절 (개역한글)

회복의 여정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함께 갈 동반자입니다. 도착지를 멀찍이서 가르켜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도착지까지 걸어 갈 사람입니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내 친구나 가족이 이런 여정을 걷고 있다면 난 어떻게 좋은 동무가 되어 줄 수 있을까요?

첫째로 발을 맞추어 주세요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우리의 삶은 계속 앞으로 전진합니다. 그러하기에 아픈 내 가족이나 친구를 깊이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때로 우리는 그들이 내 삶의 속도에 맞추어 주기를 바랍니다. 빨리 회복해서 예전의 걸음처럼 걷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이런 우리의 모습은 좋은 의도와는 다르게 회복의 여정을 걷는 사람에게 큰 어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아픈 나 때문에 남이 피해를 본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또 속도를 맞출 수 없는 나를 보며 나아질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회복의 여정에 있는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추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천천히 원래의 속도를 찾아갈 때까지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주세요. 재촉하거나 야단치기보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고 격려해 주세요.

둘째로 손을 내밀어 주세요
손을 내민다는 것은 도움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준다는 뜻 입니다. 내 뜻대로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내가 원하는 길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넘어졌을 때 혹은 넘기 어려운 큰 벽이 있을 때 당겨주고 밀어주는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회복의 여정에 있는 그 사람이 힘들 때면 그것이 어떤 행동이나 감정으로 표현되는지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고 또 그럴때 어떤 도움이 가장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지 대화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이것이 ‘내가 짜증을 많이 내기 시작하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줘’가 될 수도 있고 또 어떤이에게는 ‘내가 점점 더 말수가 적어지고 사람들과도 만나지 않으려 하면 나를 데리고 함께 조용히 산책해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각자 가지는 ‘위험신호’가 다르고 그 때 필요로 하는 도움이 다 다를 수 있기에 언제 어떻게 손을 내밀어야 할지 자세히 이야기 나누고 써 보는 것도 동행의 첫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마음을 열어 주세요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아파할 때 그 사람의 고통이 빨리 멈추기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때로 그런 좋은 의도가 오히려 내 관점을 남에게 강요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울증으로 인해 부정적인 측면만 자꾸 보게되는 이에게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다그치거나 불안증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이에게 그런 결과가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를 자꾸 말해 주는 것은 때로 오히려 더 큰 아픔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 망상을 겪고 있는 이의 생각이 다 맞다고 동조하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느끼고 있는 생각과 감정이 아무리 비현실적이더라도 그 것이 지금 그 사람에게‘현실’이라는 것을 함께 공감하며 그로 인한 아픔이 ‘진짜’라는 것을 인정 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둘도 없는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후에는 내가 보고 느끼는 ‘현실’이 다름 또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행에 있어서 ‘어디로 가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격언입니다. 지금 내 사랑하는 사람이 걸어가는 그 회복의 여정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함께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항상 함께 하고 계시는 이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장 10절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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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람
오클랜드 의대졸업, 정신건강 의학과 전문의, 노스쇼어 한인교회장로, 와이테마타지역 보건부 모성정신건강팀 정신과 의사, 정신건강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며 의학적이며 또 성경적인 이해는 무엇일까에 대해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