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위기가 찾아 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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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에 딱 들어맞는 단어가 ‘트라우마’ 이다. 트라우마(Trauma)는 과거의 어떤 심리적 충격이 켜켜이 쌓여 콤플렉스 덩어리로 응고되는 것을 말한다. ‘정신적 외상’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심리학에선 ‘영구적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일컫는다.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탓하거나 비난할 일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정신적 장애는 한두 가지씩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음식이나 특정 동식물에 대한 과민반응도 그와 같은 종류이다. 세상에 상처 하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각자 사연은 다르고 배경은 틀리지만 인간이 성장하는 동안 견디어내는 과정들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트라우마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런 어려움을 잘 극복하면 한층 성숙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트라우마를 겪고도 심리적으로 성숙해진 경우를 심리학자들은 ‘외상 후 성숙(Post-Traumatic Growth)’이라고 부른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우리 속담처럼 시련을 잘 견디어 내면 오히려 내면이 성숙하여진다. 나무로 치면 뿌리가 깊어지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의 폭이 깊어지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져서 삶을 더욱 풍성히 살게 한다.

반면 트라우마에 과도하게 반응하다 보면 그것이 개인의 콤플렉스가 된다. 이 상태가 되면 과거의 충격적 경험과 관련된 신호들을 만나면 무조건 위험으로 받아들여 조금만 공격이 와도 방어적 행동을 하게 되고 부정적인 리액션이 반복되는 위험성이 뒤따른다.

이런 방어적 심리를 갖게 되면 보호하고 다독여줄 수 있는 의존 대상을 더욱 필요로 하는 반면 역설적이게도 사람에 대한 불신이 강해서 주변의 극소수만을 의존하게 되고 그 범위도 점점 좁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가까이 마음을 나눌만한 사람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져서 스스로 섬처럼 고립이 된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각자에게도 나름의 트라우마가 한두 개씩은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박근혜대통령은 양친을 ‘흉탄’에 보냈다. 22살이던 1974년에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27살이던 1979년에 아버지 박정희대통령을 잃었다. 꽃다운 20대에 양친을 잃었던 것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절대 권력자 부친이었지만 아버지가 죽자 최측근들이 미련 없이 떠나가는 것도 지켜보았다.

당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대통령은 이를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혹 이때부터 ‘배신의 트라우마’ 에 시달리지는 않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최태민과 그의 가족들과의 만남은, 그의 말처럼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의 말에 빠져 들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지. 박 대통령의 이면에는 이런 비극적 개인사가 담겨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조국을 위해 기도가 많이 필요한 때이다. 그러기에 누군가 우리 주변에서 쓰라린 가슴을 안고 고통스러워할 때 묵묵히 곁에 있으면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복된 만남이라 하겠다.

영적 침체를 극복하는 길
이민 목회를 한 곳에서 10여년 이상 하다 보면 모든 것에 무기력해지고 지치는 순간이 온다. 늘어져 버린 고무줄처럼 탄력을 잃고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는 상태이다. 목회자에게 그런 순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안일하게 그러한 순간이 없기를 바라기 보다는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목회를 잠시 내려 놓을 수 있다면 숨 고르기라도 할 수 있으련만… 여력이 된다면 교환 목회라든지, 아니면 짧은 안식년이라도 교회의 허락을 받아 쉼을 갖는 시간이 절대 필요하다. 음악에도 쉼표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한국과 같은 대형교회 체제가 아닌 소규모가 대부분인 이민 교회에서 목회자가 목양지를 잠시 떠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목회자의 위기는 목회자가 목회를 감당하기 어렵거나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흔들리는 탈진 상태를 말한다.

목회 현장에는 목회를 그만두고 싶다는 위기도 있지만 목회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런 목회적 위기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를 맡기신 하나님께서 위기도 극복하게 해 주신다는 믿음이다.

개인적으로도 목회 위기라 생각될 때 그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견딜 힘을 주시고 피할 길을 주셨다. 그리고 그 때 얻은 교훈은 고비를 넘을 때마다 그 고비를 넘게 하시는 하나님의 길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5)

목회자의 거룩한 상흔
지금은 은퇴한 축구 선수 박지성의 발은 흉하게 일그러져 있다고 한다. 유도 선수나 레슬링 선수들은 귀가 흉하게 일그러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피나는 훈련의 결과 그렇게 된 것이다. 발이 뒤틀리고 귀가 일그러지는 것을 염려한다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

만일 목회자가 진리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고 애썼기 때문에 몸에 어떤 흔적이 생긴 것이라면 그 흔적은 소중한 것이다. 목회자의 일을 적당히 하면서 몸이 성하기 보다는 몸에 흔적이 남더라도 전력투구를 해야 옳다고 믿는다. 적어도 육신이 전부가 아니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믿고 살아야 할 것이다.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님의 율례를 배웠습니다.”(시편 119:71)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은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을 하다가 환도뼈가 어긋난 이후로 죽을 때까지 다리를 절어야 했다. 다리를 저는 상태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야곱에게 아주 큰 불편을 주었을 것이다. 위풍당당하게 살던 야곱이 그 밤 이후로는 초라하게 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절룩거리며 얍복강을 건너는 야곱에게 “해가 솟아 올라서 그를 비추었다”(창세기32:31)고 표현하고 있다. “해가 솟아올라서 그를 비추었다” 는 말은 야곱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뜻이다. 육신에는 장애가 생겼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던 것이다. 저는 다리로 인해 불편했으나 그로 인해 얻은 영적 축복을 생각하면 절로 감사가 터져 나오는 야곱으로 변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