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로 나눈 사랑의 노래

제5장 아름다운 암양 술람미, 어린양 15화

그런데 마음이 서로 통했던 것일까? 암양 술람미는 방목 시간의 틈을 타 아벨 곁을 지나가며 발밑으로 뭔가를 툭 떨어뜨렸다. 입으로 조심스럽게 찢어낸 책종이였다. 어디서 구한 것일까? 종이는 입 속에 간직되어 있었던 탓에 술람미의 냄새가 가득 배어있었다.

“나는 샤론의 꽃, 골짜기의 백합화.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은 삼림 속의 한 그루 사과나무. 나 그대 그늘에 앉아 즐기네. 그대 열매는 내 입에 달구나. 그가 나를 연회장으로 데리고 가네. 내 위에 펄럭이는 깃발 같은 그대 사랑. 사랑 때문에 병든 이 몸, 건포도로 기운을 북돋워 주세요. 사과로 새 힘을 주세요.”

아벨이 먼저 아가서로 사랑을 고백하자 술람미도 깜찍하게 아가서로 화답하는 기지를 보였다. 아가서는 특별히 청춘 숫양, 암양들이 즐겨 암송하는 성경이었다. 아벨과 술람미는 아가서의 아름다운 시들로 사랑을 나누었다. 솔로몬처럼, 그의 여인 술람미처럼. 아, 차라리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아벨은 노래했다.

“아, 내 사랑, 그대는 아름다워. 아,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대 두 눈은 비둘기 같소.”
그러나 술람미는 사랑도 사랑이지만, 벌써 신혼집까지 챙기려하는 야무진 또순이였다.
“아, 나의 사랑, 당신은 멋져. 오, 당신은 정말 멋져. 우리 집 안방은 푸른 풀밭이라네. 우리 집 들보는 백향목, 우리 집 서까래는 전나무라네.”

그런데, 이즈음 예루살렘에선 얄궂은 사건 하나가 발생하였다. 어떤 가난한 청년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갔는데, 배가 너무 고파 밀 이삭 몇개를 잘라 먹었다는 것이다. 그는 고작 밀 이삭 몇 개를 먹었을 뿐이었다. 안식일에도 뭔가를 먹긴 먹어야 될 테니까.

근데 이 장면을 본 누군가가 제사장에게 고발해버렸다. 사람들이 즉시 이 청년을 잡아왔는데, 죄목은? 탈무드에서 안식일에 금지한 39가지의 계명 중 추수 금지 조항을 어겼다는 것이다.
“모르고 한 짓이니 제발 용서해주세요.”

가난한 청년은 밀 이삭 몇 개를 잘라 먹은 것이 추수로까지 문제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싹싹 빌었다.

“용서는 해주겠지만 대신 속죄 제물을 바쳐야 해.”
제사장은 으름짱을 놓았다. 그는 이미 장사치들과 결탁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속죄 제물을 팔게 해주면 뇌물을 받을 수 있다는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청년은 꼼짝없이 제물을 구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돈이 없어 밀 이삭 몇 개를 잘라 먹어야 했던 처지에 어디서 갑자기 제물을 산단 말인가?

“무슨 짐승을 제물로 바쳐야 하나요?”
“암염소를 바쳐야 한다.”

제사장의 답변에 청년은 눈 앞이 캄캄했다. 레위기의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이나 족장이 아닌 평민이 자신도 모르는 중에 계명을 어기면 암염소를 속죄제물로 바치도록 되어 있었다.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 청년에게 제사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돈이 없어도 일만 해주면 제물을 주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소개해줄까?”
청년은 마다할 입장이 아니었다. 제물을 바치지 못하면 그는 죄인 딱지를 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제사장은 라반 주인을 소개시켜줬다. 라반은 늘 이런 식으로 일할 사람을 구해 노예처럼 착취를 일삼아왔다.

“이번엔 암염소가 제물로 죽게 된대.”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던가?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라반의 가축 우리에도 흘러들어갔다.
새로 들어온 암염소는 이 소문을 듣고는 거의 미치광이가 된 듯했다. 암염소가 별로 없는 이곳에서 자기가 제물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친 듯이 깔깔깔 웃다가는 갑자기 목을 놓아 꺼이꺼이 울기도 했다. 도대체가 제 정신이 아니었다.

매우 슬픈 일이었지만, 주위의 양, 염소들은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녀가 워낙 이웃을 못살게 굴었던 탓이다. 오죽하면 별명이‘염소 라반’이었을까?

라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를 찾아와 골똘히 암염소를 바라보았다. 암염소는 그 때를 행여 놓칠 세라 세상에서 제일 가련한 눈빛을 하고는 메~ 하며 불쌍한 울음을 우는 것이었다.
그 연기가 먹혀든 것일까? 마침내 라반은 몇 마리 없는 암염소대신 암양을 제물로 바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염소보단 값이 싼 양을 주는 게 내겐 더 낫지.’

라반은 그렇게 셈을 하며, 레위기에서 평민의 속죄제물로는 암염소 대신 암양을 바칠 수도 있다는 조항을 적용할 생각을 하였다.

이전 기사피지 블레싱 단기 선교를 다녀와서
다음 기사청사모 Break Through 집회
김이곤
연세대정외과 졸업, 코람데오 신대원 평신도지도자 과정 수료하고 네이버 블로그 소설 예배를 운영하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조건도 구원에 덧붙여져선 안된다는 메시지를 어른이 읽는 동화의 형식에 담아 연재해 나갈 예정이다.